감염병 수집가. 마치 유희왕 카드를 모으듯 다채롭게 감염병을 자신의 몸 안에 수집하는 사람이다. 이 자의 병력 차트를 보면 해당 시기 전 세계를 달군 감염병의 역사를 알 수 있다.
(본 단어는 표준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을 따르지 않음)
감염병 콜렉터일까?
지나가는 감염병을 절대 지나치지 못하는 나의 몸뚱이. 잠깐 잊고 있었다. 아폴로 눈병, 신종 인플루엔자, 어쩌구 등 여러 가지 감염병을 겪었다. 여러 사람들이 걸린다고 뉴스에 나오면 그중 하나가 꼭 내가 됐다. 이번에 내가 수집한 감염병은 코로나19(Coronavirus disease-2019). 무려 두 번 수집했다.
2019년부터 왕성하게 활동한 이 바이러스를 처음 만난 건 2022년 3월이었다. 하루에도 40만 명 웃도는 확진자가 발생하던 그 무렵까지도 나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 그때쯤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 이제 면역력이 좀 있나 보네. 어지간해서 안 걸리는구먼.'
혹시 마음을 놓았던 게 아니냐고? 그건 아니었다. 회사에서는 꼭 마스크를 한 채 시간을 보냈다. 봄 냄새를 맡고 싶어서 종종 사람 없는 길거리에서 마스크 아래를 살짝 열고 닫은 적은 있다. 그것 빼곤 혐의(?)가 없었다.
혐의가 하나 더 있었다면,
코로나 걸리기 딱 일주일 전의 일인데. 엘리베이터 타면서 동료에게 그런 말을 했다.
'우리 차라리 코로나 걸리는 게 낫지 않아요? 쉴 수 있을 것 같은데 큭큭큭... 하하'
그렇다. 우리는 쉼 없이 주말에 일한 지 두세 달이 됐고, 코로나라도 걸려서 '꼭 쉬어야만 하는 휴가'를 얻고 싶었던 것이다. 하늘은 애처로운 노동자의 작은 마음에 한 번쯤은 응답해야겠다고 생각했을까.
가족 중에서 누구도 걸리지 않았고, 가까운 회사 동료들 중에서도 확진자가 없던 시점에 동동 뜬 섬처럼 코로나에 걸렸다. 나름 쉽지 않은 코로나를 보냈다고 생각했다. 배도 아프고, 열도 나고, 근육통, 두통, 식욕 떨어지고 잠 오고, 가끔 가슴통증 등등..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8개월 전 나는 꽤 약한 코로나 바이러스를 만났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코로나의 여파가 2주일 간 지속되고 있다. 지난번에 겪었던 모든 증상을 빠짐없이 모두, 더 심한 강도로 겪었다. 지난번에는 겪지 않았던 미각과 후각의 말소가 아주 압권이다. 인간에게 미각이 있는 이유는 짐작보다 꽤 치밀하게 생존과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나의 생체실험에 따르면...).
비건 만두와 깻잎, 견과류와 올리브유의 전면적인 화합 다시 한 반 맛보고 싶다
코로나에 걸린 지 이틀째 됐을 때부터 밥이 진짜 맛없었다. 하루는 나의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감사한 엄마한테 음식에 물 너무 많이 넣은 것 같다고... 말한 적도 있다. 맛이 거의 안 나고 식감만 있어서 엄청 느끼하거나, 맛이 없었다. 그게 미각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겪는 일인 줄 몰랐다. 그냥 음식이 맛없는 줄.....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틀 정도가 지나고 이것저것 먹다 보니 하나 같이 맛이 없고, 냄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일괄적으로 그랬다. 유일하게 느낄 수 있는 맛은 매운맛뿐이었다. 왜냐, 통각이니까. 매운맛은 통각이니까.
이 떡볶이가 그냥 맵기만 했다면.. 참을 수 있으십니까?
다이어트를 하려고 식욕억제제를 먹는 사람들의 욕구에 논리가 아예 없는 건 아닐 수도..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한 5일 만에 3kg이 쏙 사라지더니 그 이후에도 뭐가 잘 먹고 싶지 않았다.
미각이 사라진다는 게 어떤 느낌이냐면
생각해 보면 그렇다. 음식을 입에 넣으면 서서히 하나씩 맛이 난다. 맛은 뭔가 진행되는 것처럼 하나씩 느껴지고, 그러다가 함께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미각이 없으면 입에 뭐가 넣었는데도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는다. 뭔가 갈 길이 뚝 끊긴 것처럼. 절벽을 만난 것처럼. 뜬금없이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느낌이 난다. 그 무의 감각은 정말 생소하고 놀랍고 재밌는데, 그렇다고 기대되진 않는 것이다. 무의 감각 흥미롭지만 너무 재미없다. 그래서? 안 먹게 되는 것이다. 그럼 5일 만에 3kg가 없어진다.
데체코 아라비아따 소스 참 맛있는데.. 그냥 맵기만 하다
격리 해제 후 4일이 지났다. 너무 안 먹다가 가끔 폭식하기를 반복하며 1kg을 회복했지만 미각과 후각을 회복하지 못했다. 샤워를 해도 샴푸 향이 안 나고, 빵을 오븐에 넣고 구워도 냄새가 안 나서 언제 익었는지 모른다. 최근에 먹은 김치찌개에서 맛이 약간 진행됐다. 매웠고, 김치의 맛이 살짝 났다. 그러다가 금방 또 절벽을 만났지만 서서히 회복하는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