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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미 Jan 30. 2023

새해 인사의 쓸모

새해 복은 핑계고

새해는 좋은 구실이다.


2019년부터였을 것 같다. 그해에는 유독 미안한 사람들이 많았다. 미안하면 고마운 감정이 따라온다. 미안할 짓을 했는데도 내 곁에 있어주고 나를 살려줘서 얼마나 고맙던지. 그 마음을 전하려고 가깝진 않았지만 미안하고 고마운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었다.


새해면 얼마나 많은 연락을 받겠어. 그 연락 사이에 나의 미안한 마음을 하나 끼워 넣는 거다. 별 거 아닌 이야기처럼 별 것을 이야기하는 방법이다. 새해에 유독 용기를 얻는(혹은 낯짝이 두꺼워지는) 나처럼, 사람들은 새해에 유독 너그러워질 수도 있다고 믿으며... 고민하다가 전.. 전송!!



올해에도 친하지 않지만 고맙고 미안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많이 했다(물론 친한 사람들한테도 연락을 한다. 근데 친한 사람들한테 새해 인사를 하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니까). 전 회사에서 인연이 닿은 감독님, 나에게 지지대가 되어준 작가님, 부장님, 전에 인턴을 하면서 만난 감사한 선배들, 나에게 기회를 준 사람들, 각박한 회사 생활에서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출연자들, 올해 우연히 연락이 닿은 과거 취재원 등. 다음 해에는 학부 때 도움을 주신 감사한 교수님들께도 한 번 연락을 해봐야겠다. 돌이켜보면 자신이 아는 것을 아주 기꺼이, 신나는 마음으로 나눠준 어른들은 교수님들이 거의 마지막이었다. 요즘 생각나는 분들이 있다.


나의 메모장 일부


새해 인사를 전할 사람들의 리스트는 가을부터 만들어진다. 겨울이 슬금슬금 다가오면서 두꺼운 옷을 꺼내 입을 때 즈음 뇌에서 올 한 해를 돌아보는 시스템이 작동한다. 올 한 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었는데... 하다 보면 내 곁을 스쳐간 사람들의 얼굴이 자꾸 생각난다.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고 안녕하길 바라고, 부디 맑은 하루를 통과했으면 좋겠고. 아주 나쁜 인연만 아니면 대체로 그렇다.


그 많은 사람들의 얼굴 중에서 새해가 아니면 딱히 연락할 일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이름을 메모장에 적는다. 어떤 용건이 있을 때 연락을 해야 오히려 자연스러울 것 같은 사람들이 있지 않나.


소심한 인간은

"갑자기 얘가 왜 연락했지?"

라는 혐의를 벗기 위해 새해까지 기다렸다가 안부를 묻는다.



올해에는 유독 수확이 있었다. 고민 끝에 보낸 톡에 어떤 한 분께서 정말 긴 답장을 해주셨다. 연락하고 싶었다는 말로 시작하는 그 긴 답장을 조금 공유하고 싶다. 따뜻함은 전염되잖아요?


"새로 시작한 일은 여전히 재미있고 도전할 만한가요? 새로 만난 사람들에게 배울 점도 많고요? 좋은 직장 동료는 생겼나요? 무엇이든 00 씨가 바라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기를 바라요. 혹 그렇지 않더라도, 00 씨가 원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 방향으로 잘 걸어가고 있기를 바라요."


대답과 별개로 나의 안녕을 바라며 이어지는 몇 개의 질문을 읽을 땐 마음이 퐁하고 터지는 줄 알았다. 우리는 봄에 만나자는 확실한 약속을 했다. 내가 여행을 다녀오는 일정을 달력에 적어두신다고 했다. 그 무렵 꼭 연락을 달라고, 꼭 보자고 말씀해주셨다. 제가 바라던 바예요!! 전 직장 동료와 따뜻한 연대를 이어갈 수 있는 행운이 있다니. 내가 행운아였다니!!


이 분을 포함해 특히 전전 회사에서 참 감사한 분들이 많았다. 모든 분들께 인사를 하고, 여전히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전하는 일이 정말 중요했다. 마음속에 오래 남는 좋은 마음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표현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좋은 마음들을 보답하지 않으면 마음이 가려워지는 것 같다. 긁어야 하는데 못 긁고 있을 때의 조급함, 찝찝함, 답답함 같은 것들이 있다. 자꾸 생각나고, 잡아야 할 인연을 놓치는 감각을 느낀다.


'어떻게 지내시나요? 잘 지내고 계셨으면 좋겠어요. 새해를 핑계로 연락드려요. 새해에 꼭 연락드리고 싶었어요. 제가 지난해에 감사한 게 있어서 자꾸 당신이 생각났습니다.'라는 요지의 글을 쓰면서 지난해 메울 수 없다고 생각한 마음속 구멍 몇 개를 메웠다. 내 삶에 고마운 일을 만들어준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나의 2022년을 가치 있게 만들었다.


Copyright @s.park.film


내가 당신의 삶에서 이젠 별 다른 공간을 차지하지 않지만 런 나도 당신을 기억할 만큼 당신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전하는 과정이 언젠가 나도 그런 연락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길 상상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이런 연락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지. 새해 인사는 좋은 인연을 가늘게 유지하고, 나도 좋은 사람이 되어보자고 다짐하는 새해 의식인 셈이다.


올해도 많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지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과 만나게 될지 기대해 보기로 하는, 설연휴를 멀리 떠나보내는 1월 말.


이중섭의 은지화,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 이중섭>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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