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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미 Mar 27. 2023

하고 싶은 것을 해봐야 하는 이유

사리아로 가는 길에 내게 쓴 편지


언젠가 꼭 순례길을 걸어보고 싶었어. 유럽 여행의 시작도 순례길이었어. 여행보다 순례길을 먼저 계획했으니까. 간 김에 스페인과 포르투갈, 프랑스를 들렀다가 와야겠다는 계획이 선 건 나중이었어.


마드리드에서 찍은 사진

나의 순례길 첫 번째 출발지는 스페인 북부에 사리아라는 곳이야. 지금은 마드리드에서 출발해 사리아로 가고 있어. 예매한 렌페(스페인 기차)가 한 시간 넘게 지연되더니, 이번에는 렌페를 타고 한참 가다가 갑자기 버스로 갈아타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어. 아무래도 무슨 문제가 있어서 렌페로 더는 이동이 불가한가 봐. 같이 타는 승객 모두가 별말 없이 버스를 탔어. 사리아 가는 길을 기차로도 보고, 버스로도 보니까 난 오히려 좋아.



이동 시간은 어느덧 다섯 시간에 다다르고 있어. 몸은 지치는데 이상하게 눈에서 힘이 느껴져. 잠에 스륵 들었다가도 창밖에 궁금해서 눈을 떠. 그러다가 잡생각이 들어서 또 뭔가를 엄청 써. 계속 이런 식이야. 덕분에 이동하면서 눈에 담는 풍경이 많아지고 있어.



쉽게 감동을 받고 호들갑 떠는 내 성격이 좋아. 여행을 다닐 때 제격이야. 온 신경을 열어둔 덕분에 쉽게 사랑에 빠져. 별 거 아닌 순간도 영화 같은 장면으로 기억할 수 있어. 지금은 창밖으로 펼쳐지는 스페인 흙밭을 구경하고 있어. 드문드문 옛날 집이 나타나고 소나 말이 보이기도 해. 가끔 언덕이 있는 초원이 나오기도 하는데 텔레토비가 걸어 다닐 것 같이 반질반질해. 귀여워.



이상해.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늘 손에 잘 닿지 않았는데 난 지금 오랫동안 그린 순례길에 오르기 직전이야. 무사히 도착만 하면 순례길을 걷게 돼.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돼.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용기? 노력? 시간? 다 맞을 거야. 하지만 마음을 먹는다고 누구나 다 용기를 내고, 노력하고, 시간을 들일 수 있을까. 당장 발 딛고 서있기도 벅차서 용기를 낼 여유도, 노력할 힘도, 시간을 낼 틈도 없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 그 마음을 알고 있어.


지금 이 순간 내가 순례길에 오르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이고 기회고 때론 특권인지 잘 알아. 가고 싶은 나라를 고르고, 마음먹은 시점에 비행기에 오르는 건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보여도 절대 평범한 일이 아니야. 나 역시 금전적, 물리적, 시간적인 여유를 내기 위해 아주 애써야 했잖아.



유럽 여행처럼 큰 일 말고 작은 일은 어떨까. 정말 하고 싶은 일 중에 작은 일. 이런 생각이 들어. '언젠가' 꼭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들을 하나씩 '현재'로 가져와야겠다.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해봐야겠다. 지금까진 주로 먼 미래에 던져뒀는데 이젠 해봐야겠어. 나 자신에게 '할 수 있어', '해낼 수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 같거든. 나를 응원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는데 그 일은 늘 어렵고, 아무리 말해도 나 자신이 알아듣지 못하기도 하니까.


대단한 게 아니어도 좋겠어. 현대 무용을 배우는 것(좀 대단한가?), 프랑스어랑 스페인어를 제대로 배우는 것, 영어로 아주 유창하게 말하는 것, 작사해 보기, @@ 쓰기(비밀!)... 이런 것들이 떠올라. 그중에서도 최대한 작은 용기, 노력, 시간으로 할 수 있는 것들부터 쪼개보자. 한국에 돌아갈 게 벌써 기대가 돼.


하나씩 해보자




2023년 2월 15일, 사리아로 가면서 잡생각이 꼬리를 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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