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다보니 살고 싶어지게 된 이유
처음에 바르셀로나에 산다고 하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많이 물어보십니다. 보통 디자인 유학하면 다들 미국을 생각하는데 어쩌다 저는 스페인에 와서 디자인을 하게 되었을까요?
처음 유럽 여행을 간건 대학생 때 였습니다. 대학생때 남들이 그렇게 돈 모아서 유럽여행을 가길래, 저도 유럽 여행을 해보고 싶어서 한 학기를 휴학하고 일을 하면서 돈을 모아 유럽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유럽 여행과 사랑에 빠진 저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차곡차곡 휴가와 돈을 모아서 종종 유럽여행을 가곤 했습니다.
그렇게 20대 내내 3번의 유럽 여행을 통해 영국, 프랑스, 스페인, 오스트리아, 체코, 핀란드 등 여러 나라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럽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어딜가나 휠체어를 타신 분들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처음 영국에서 버스를 타는데 휠체어를 타신 분들이 일상처럼 버스를 이용하시는 모습이 낯설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영국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스페인에서도 장애인 분들이 버스를 타더라도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다들 일상처럼 당연하게 기다리는 문화인듯 보였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전시회를 보러갔을 때도 나이가 지긋하신, 휠체어 타신 여성분이 그림을 한참 감상하시더라구요. 그 장면이 꽤 생소하게 느껴져서 한참동안 제 기억속에 남았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한국에서 살면서 이렇게 장애인 분들을 많이 본적이 있나? 라고 물었습니다.
두번째 친구와 오스트리아 여행을 할 때였습니다. 벨베데레 궁전에 클림트의 '키스'라는 작품은 아마 많은 분이 아실텐데요, 실제로 작품을 마주하니까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빛에 반사된 금빛의 색들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여러 각도에서 볼때마다 작품의 색이 달라 보였습니다. 사랑에 빠진 황홀한 순간이 색으로 이렇게 보여질 수 있구나 싶어 여행을 하면서 보던 중에 이 작품이 단연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 밑에 흰색 조각상이 놓여있었습니다. 네, 시각장애인 분들을 위해 키스 작품을 석고로 조각해서 만질수 있게 해두었던 겁니다. 전 여기서 2차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눈으로 당연히 보고있는 이 그림을 누군가는 볼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한번도 없었거든요.
마지막은 친구와 함께 카페에서 디저트를 먹던 때였습니다. 비엔나의 한 카페에서 초콜릿 케익을 시켰는데 커다란 접시 위에 케익이 나오더라구요. 그런데 접시 가운데에 큰 금이 쩍 하고 가있었습니다. 깨진 접시를 고쳐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게 그 접시가 왜 그렇게 인상 깊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이었다면 이 접시는 당연히 버려야 할 것으로 여겨졌을텐데, 이 곳에서는 왠지 '망가져도 괜찮아' 하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조금 부족해도, 망가져도 고쳐 쓰면 되지. 하는 사람들의 여유가 부러웠고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디자인으로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을 때였고, 그렇게 NGO에서 일을 하던 때라 사람을 향한 디테일들이 아마도 조금 더 잘 보였던 것 같습니다. 모든 것들이 '부족해도 괜찮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하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이유였지만 이곳에라면 내가 조금 더 불편하더라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5년이 다 된 지금에서야 유럽의 단점이나 불편함들이 피부에 엄청 와닿지만 그때는 왜 그렇게 이 느리고 불편한 가치들이 왜 그렇게 멋있어 보였을까요. 미국에서는 성공할 수 있는 디자인은 배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람을 위하는 디자인은 배우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덜 성공하더라도 함께 행복하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유럽에서 UX/UI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