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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셀로나 Jul 12. 2024

스페인에 와서 알게 된 것들

결국, 완벽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숨이 막혔다. 안양에서 여의도까지 꽉 막힌 지하철에서 출퇴근으로 매일 3시간씩 허비했다. 아침의 지하철 안에서는 아저씨들이 아침에 무엇을 드셨는지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빽빽하게 들어찬 사람들 사이에서 낑겨있다가 내릴 역이 되면 사람들을 밀쳐내고서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첫 해에 얻은 연차는 7.5일. 연차 일수를 보면서 '아 직장인들은 아플 수도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다녔던 회사들은 워라밸이 존중되는 분위기여서 그나마 오래 다닐 수 있었다. 주위의 친구들 중에는 새벽 1시까지 일하다 길에서 쓰러진 친구들도 있었고, 오랜만에 만나니 흰머리가 잔뜩늘어버린 친구들도 있었다. 


회사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친구로 만날정도로 가깝고 즐겁게 일했던 동료들을 만났고, 직장생활을 통해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나에게 알수없는 기싸움을 선사하는 동료들도 있었고, '훈련' 이라는 이름을 달고 직원들에게 매일같이 소리치는 상사도 많았다. 이런 일에 쓸데없는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제일 큰 이유는 이 회사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의 전문성을 갖기가 힘들다는 점이었다. 회사에서는 디자인의 중요성에 큰 관심이 없었고 배울 팀도 사람도 없었다. UX와 UI를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미국은 싫어서 유럽의 학교들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그즈음 지원했던 학교에서 장학금을 준다고 했고, 그 학교가 마침 바르셀로나에 있어서 회사를 정리하고 야심찬 마음으로 스페인으로 떠나왔다. 


바르셀로나에서 처음 살게 되면서 무척 행복했다. 꿈꾸던 유럽에서의 삶, 내가 정말 공부하고 싶었던 수업, 전세계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바르셀로나 곳곳을 탐방할 수 있다니. 사람들도 너무 친절하고 날씨는 좋고 눈에 닿는 모든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멋진 교수님과 다국적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내 꿈에 한발짝 가까워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바르셀로나의 단점이 피부에 와닿기 시작했다. 6개월 연장하는 비자에 3개월이 넘어도 나오지 않는 행정처리, 아파도 당장 병원에 갈 수 없는 시스템, 한 달이 넘어도 오지 않는 택배, 1시간은 가뿐하게 지각하는 문화... 모든게 다 한국인인 나를 못살게 군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바르셀로나에는 소매치기가 엄청 많다. 나름 소매치기 방지에는 전문가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바르셀로나에서 산지 1년이 좀 지났을 무렵 잠시 버스에 탔다가 지갑을 털렸다. 경찰서에 갔더니 잡을 확률 없으니까 그냥 양식이나 작성하고, 나중에 비자 신청할 때 신분증 잃어버렸다는걸 증명하는 서류 몇장을 떼어주고 말았다. 스페인어를 잘 하지 못하니 경찰서에 가도 할 수 있는게 많이 없었다.


해외에서 산다는건 외로움을 친구처럼 데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외국에서 산다는 건 발이 땅에 닿지 않는것 처럼 붕 떠있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 생겨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 가족들과 친구들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유학생으로 살다보니 고정 수입이 없어 매달 월세를 어떻게 낼지 걱정해야 했다. 프리랜서 기회와 장학금 기회를 미친듯이 찾아 한 달을 버티고, 또 두 달을 버텼다. 한국에서 불평했던 내 작고 소중한 월급, 정확한 날짜에 고정 수입이 들어오던 시절이 그리웠다.


그렇게 꿈꾸던 해외 유학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단점들이 피부에 와닿으며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 세상에 완벽한 곳은 없구나, 결국 어떤 곳이든 장점과 단점이 존재하는구나. 스페인까지 와서 내가 불평만 하고 단점만 보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는 결국 똑같은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 내가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따라 내가 사는곳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인생은 내 선택에 책임지고, 없는 것을 쫓으며 불평하기 보다 내가 사는 이곳에,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사는것이 나에게 이득이라는 결론을 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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