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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Aug 02. 2024

앞마당이 참 좋던 '카페 무에'

계동길과 북촌로길이 만나는 길모퉁이 꼬마 건물 1층엔 ‘카페 무에’가 있다. 건물의 동쪽 앞으로 난 작은 앞마당은 보기에도 참 좋은 장소여서 길을 지나치던 누구라도 멈칫해 괜히 기웃거리다가 머무르고 싶어 질 만한 곳이었다. 마당을 향한 벤치가 통유리창 벽에 설치되어 있고, 코너에는 단풍나무가 있는 곳. 원래부터 이랬던 건 아니고, 우리가 이 동네에 이사 오고 반년은 주인 없이 방치된 공간으로 임대 광고만 붙어 있었다. 바로 옆 건물 1층도 공실이어서 코로나로 상권이 죽었나 보다 했는데, 실은 2018년 이후로 쭉 비어 있었다는 사실을 인터넷 지도로 동네 과거 여행을 하다가 알았다.


건물 1층은 두 길로 난 벽면이 전면 유리다. 시야간섭이 심해 사무실이나 작업실로 쓰기엔 애매하다. (동네에 중앙탕이라는 공중목욕탕도 있던) 십여 년 전 이곳은 농축산물 직판장이었다. 2013년 떡볶이집이 들어왔다가, 2015년 뉴욕스테이크집이 들어왔다가 2018년부터는 쭉 공실이었다. 1층 전용 실내부 구조는 정사각에 가까운 직사각형이고, 조리공간을 빼면 4인탁자 몇 개 놓기도 쉽지 않을 7평 남짓한 크기다. 번갈아 자리 잡았던 두 번의 식음료점은 야외 공간에 나무 데크를 만들어 좌석을 최대로 늘려 손님을 받았다. 그래도 오래 못 버틴 걸까? 주변에 다른 음식점도 많았으니. 그 사이 건물주가 한 번 바뀌었고, 2018년 이후로 쭉 비어 있었다. ‘하긴 떡볶이집이 계속됐다면 내 귀갓길이 뚱땡이 로드나 되고 말았겠지….’ 공간의 이력을 보고 괜히 혼자 아쉬워하다가, 뭐가 들어오면 오래갈까 공상도 했다가, 결정적으로 3년째 공실이라는 현실에 실망도 하고 뭐 그랬었다.


빨간색 특대형 “임대” 문구에도 둔해지고 점점 관심에서 멀어지던 어느 날 이 자리에서 마침내, 새로운 주인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그분이 막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자 하루가 달리 뭔가 채워지는 게 보였다. 외부 한켠 너저분하게 쌓였던 건축 자재가 치워지고, 관리 없이 흙이 덮여 마치 탈모 부분 같던 마당 구석 바닥엔 자갈돌이 깔리고, 실내에는 벽을 활용한 수납장과 바 테이블, 벤치형 의자에 이어 이동 가능한 몇 개의 작은 탁자가 들어왔다. 조리대 가까이엔 응접용 바를 놓고 공간 중앙은 오히려 비워 뒀다.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탈모 치료를 받은 마당엔 새 자리가 생겼다. 자갈을 깔아 둔 코너에 조경이 이루어지고, 예쁘다 생각한 벽돌바닥은 그대로 둔 채 건물과 만나는 마당 가장자리에 벤치를 두른 것이다. 원래 그 모습이었던 것처럼 어울렸다. 곧 실내조명이 켜지고 커피콩이 볶아지고, 생화가 담긴 꽃병이 응접대에 하나 실내 벤치 등받이에 하나 놓이고, 출입문 근처엔 새로운 화분이 놓였다. 사람이, 식물이, 이런저런 물건이 들어와 배치되고 3년 만에 생산 활동이 재가동되자 아무것도 없음 같던 길모퉁이 건물 1층은 무엇이든 있을 수 있는 장소로 급변하더니 향기도 솔솔 새어 나왔다.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비 오는 어느 날 카페 유리창 바 테이블 자리에 앉았다. 슈퍼에 다녀오다 충동적으로 들어간 날, 밖은 쌀쌀하고 커피는 따뜻했다. 교회 앞 무궁화나무가 비를 마시고 흔들리는 모습을 실컷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너무 덥거나 춥지 않으면 야외 벤치 단풍나무 옆에 앉아만 있어도 좋았다. 카페 공간은 영업할수록 계속 더 나아졌다. 벽 수납장은 오픈형이었다가 문 달린 가구로 바뀌고, 야외 벤치는 엉덩이를 대는 면의 코팅이 들뜨는 문제로 더 무겁고 단단한 (비쌀 것 같은) 소재로 대수선되어 더 이상 들뜨지 않았다. 화병의 꽃은 계절의 변화를 알렸고, 겨울엔 빈 중앙 공간에 놓인 기름 난로가 놓였다. 마당에서 팝업 가게도 열리고, 전처럼 작은 전시도 생겼다. 카페 무에에 이런저런 사람이 오가고, 개도 들락날락하는 그런 생기 있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1년 2년이 지나는 동안 카페의 생기와 온기는 사유지의 영업 공간 너머로 확장됐다. 다들 예상하겠지만 야외, 마당, 벤치는 얼마나 잘 어울리는 조합인가! ‘카페 손님 외 이용 금지’라는 말이 따로 없는 이 의자 이용객이 (아마 사장님도 눈치챘을 거 같은데) 동네에 없지 않았다.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이 앉아 조용조용 담소를 즐기는 귀여운 장면 같은 걸 종종 볼 수 있고, 나도 동거인이랑 가끔 머물렀다. 맥주 한 캔 ‘촤악-’ 하면, 떠나온 동네도 생각나고 이 카페가 있는 게 너무 좋았다. (망원동엔 야외 평상을 둔 카페 ‘우아하게'가 있었고, 그 평상은 할머니들의 밤마실 장소가 되곤 했었다.) 글로 쓰며 돌이켜보니 영업 종료 시간에도 실내조명 하나둘 쯤은 켜 두던 사장님의 여유가 밤에도 그 자리로 사람을 모은 게 분명하다. 사장님이 맞은편 교회나 (심지어 카페) 상점분,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음식 접시를 나누는 장면을 본 적이 몇 번 있다. 좀 놀랐었다. 서로 가까이에서 커피를 판다고 꼭 경쟁자만 되는 건 아니구나, 3년째 동네를 뻔질나게 돌고만 있는 나는 대체 뭔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카페 무에의 공간이 전용 공간 너머로 이어지는 시간들을 보면서 공간의 운명이란 ‘골조’가 아니라 ‘운영자’에 달려 있다고 새삼 느꼈다.


최근 들어 이 카페가, 운영자가 뜻밖에 수난에 시달리고 있다. 건물주가 임대차 계약에도 반하는 행패를 부린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계약 1년이 지나고부터 월세를 45% 올려 받겠다는 요구에 카페 주인이 동의하지 않자, 건물주는 공사 현장에서 사용하는 가림벽을 앞마당이 있던 동쪽 벽에 쳤고 교회 무궁화나무 쪽 벽에는 비계를 설치했다. 물론 임대차계약서상에 특약 사항으로 야외공간 사용이 명기되어 있고, 계약 갱신은 이미 작년 3월과 올해 3월에 이루어졌다. 그녀가 중장비를 대동하고 나타났던 한 달 전 그날이 얼마나 소란스럽고 폭력적이었던지, 방송국으로 주민 제보가 들어가는 통에 그날 소란의 맥락과 카페가 건물주와 맺은 계약 내용이 모두 영상 기록(‘갑(甲) 질 아니 내가 을(乙) 질 당했다 건물주의 호소?’ SBS ⟨궁금한 Y⟩ 689회)으로 남았다. 전 세입자가 카페 무에와 같은 상황에 처해 가게를 접은 이야기까지 담겼다.


나도 그날 기괴한 소란의 목격자였기에 일부를 글로 옮긴다. 건물주 임모 씨는 세입자인 카페 주인과 상의도 없이 갑자기 중장비 기사를 데리고 영업 중인 카페 앞에 나타났고, 공사를 하겠다고 행패를 부렸다. 중장비를 싣고 온 대형 트럭은 우리 빌라 주차장에 제멋대로 대놨다. 경찰이 신고를 받고 카페 앞으로 출동했다. 상황 파악을 한 경찰이 이런 공사는 세입자와 상의하에 하시라는 상식적인 말을 했지만 안 통했다. 막무가내 그 자체인 그녀의 난리를 재연하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ㅇ ㅑ, ㅇ ㅑ, ㅇ ㅑ아!!!” “야 꺼-져 꺼-져 꺼-져!! 내가 25년 임대업 하는 동안 너 같은 세입자는 처음 본다! 이 ㅅ ㅐ끼야아!” 샤우팅, 반말, 욕이 전부다. 그리고 제 분수를 넘어가는 소리까지. "억울하면 네가 50억 주고 이 건물 ㅅ ㅏ아아!!"


건물주는 신체 접촉도 마다하지 않는 분이었다. 카페 사장을 밀치고, 경찰은 말리고, 중장비 기사는 일하러 불려 갔다가 황당해하는 상황이었다. 건물주의 계약 위반이나 업무 방해로 인한 손해 배상 청구는 일이 다 벌어지고 민사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문제다. 세상에 법도 상식도 통하지 않는 사람은 그녀뿐이 아니고, 그날 경찰이 임대인을 현행범으로 체포할 거리는 없었던 거 같다. 경찰이 돌아가고 건물주는 가게 영업시간에 합의 안 된 공사를 결국 진행했다. 벤치 앞에 가림벽을 치고, 나머지 유리창 앞에 비계를 설치하는 공사. 퇴근하는 밤에 그 흉물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혹여나 이 건물이 무너질 위험이 있다는 진단을 받은 건 아닐 거다. 갑자기 창문에 비계가 삐죽 튀어나온 2층과 3층에도 세입자가 거주 중이니까. 아울러 며칠간 카페 앞으로 출근 도장을 찍던 건물주는 미처 못 가렸던 단풍나무와 그 앞의 작은 벤치도 가벽 설치 공사를 해서 막는 것으로 제 건물 못생기게 만들기 프로젝트를 일단락한 것 같다.


앞마당은 닫혔지만 카페 무에는 운영 중이다. (7월 21부로 가림막 일부가 철거됐으나 건물주의 행패는 계속되고 있다.) 가림막 때문에 자연광은 많이 차단됐으나 사장님이 언제나 신경 쓰던 조명 덕에 실내엔 여전히 무드가 있다. 가림막을 등진 자리에서 이 글을 쓰면서 본 새로운 풍경도 나쁘지 않았다. 건물주가 무지막지하게 설치한 비계에 누가 작은 식물들을 대롱대롱 매달아 놓았고, 그 앞의 바 자리에서 두 명의 손님이 코바느질을 하며 너무 크지 않은 소리로 대화 중이었다. 식물은 대롱대롱, 비계 너머 활짝 핀 무궁화, 비 오는 창문 앞, 두 여성의 모습이 귀여웠다. 사람들은 여전히 이 공간을 찾고, 응접 바 한 켠엔 응원의 문구가 적힌 쪽지들이 바구니에 담겨 있다. 수난 중에도 카페 무에는 나름 순항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그랬으면 좋겠다.


최근에 구청 건축과 주무관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또 건물 민원을 제기했다. 그러면 공무원만 귀찮을 뿐 달라질 게 없다는 공무원 친구의 말이 있었어서, 최대한 친절히 이야기했다. 동네에서 민원이 많이 들어온 건물인데, 건물주에게 시정 조치를 요구해도 외국에 살고 있어서 반응이 없다고 했다. 건축법상 위법 요소가 없는지 확인해 달라고도 또 가능한 친절한 말투로 요청했다. 용적률을 채워 지었을 건물 야외에 가벽에 문까지 달아서 창고를 만든 건 혹시 불법 증축으로 볼 소지가 있을지도 모른다. 확인해 보겠다는 답은 들었다.


피해자일수록 주먹과 생활고는 가깝고, 법은 멀다. 건물주가 휘두르는 주먹에 당하는 피해는 매일매일 구체적으로 벌어지는데, 세입자가 당한 ‘피해'는 ‘어느 정도'라도 ‘언제쯤'이면 보상되고 회복될 수 있을지 늘 구체적으로 알기가 어렵다. 건물주의 업무 방해가 생기면 월세 의무가 덜어지는 대항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과 같은 매출을 유지하기 괜찮을까? 걱정이 된다. 카페 무에의 공간이 혹시 다른 자리를 찾아 떠나는 날이 온다면, 임모 씨의 빈 곳을 채워주는 세입자가 다신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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