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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석 소장 Aug 09. 2020

나의 감정이 전하는 메시지

답은 이미 내 안에 있다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


“요즘도 많이 바쁘냐? 얼굴 까먹겠다.”


얼마 전 정말 오래간만에 중학교 동창 녀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사춘기 시절을 함께 보내며 자랐고, 남들에게는 쉽게 말할 수 없는 세세한 가정사까지도 서로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였다. 이제는 일 년에 기껏해야 한두 번 정도나 술 약속을 잡을 정도로 술 마시는 데 쓰는 시간을 아깝게 생각하지만, 그 친구와 함께라면 얼마든지 예외로 할 수 있었다.


“가끔 페이스북에 소식 올라오는 거 봤다. 어렸을 때도 뭐든 그렇게 열심히 하더니, 넌 어떻게 세월이 갈수록 더 바빠지냐?”

“그래? 난 잘 모르겠는데. 바쁘게 살면 좋지 뭘, 흐흐”


나의 대답이 장난스럽게 느껴졌는지, 녀석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넌 언제쯤에나 좀 편안하게 살 것 같아?”


내게는 그 질문이 무척 엉뚱하게 느껴졌지만, 어떤 관점에서는 밤낮없이 다른 사람들의 고민을 함께 고민하는 모습이 힘들어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평탄하지 않았던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을 기억하는 친구이기에 더욱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진지하게 대답했다.


“앞으로 더 바빠졌으면 좋겠어. 지금 하는 일이 나에게는 일이 아닌 놀이니까 말이야.”


내 말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그의 표정을 보면서 비록 겉으로는 지금과 비슷했지만, 내적인 면에서는 완전히 달랐던 예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예전의 나는 지인들로부터 ‘정말 특이하다’라는 말을 듣는 것에 익숙했다. 한 우물을 파도 모자란 마당에, 미술, 음악, 영어, 건축, 목공 등등 서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분야의 직업을 마치 오늘의 점심 메뉴를 고르듯 수시로 바꿔왔기 때문이었다. 그런 특이한 이력을 가지게 된 데에는 어린 시절부터 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불안감의 영향이 컸다.


나의 아버지는 예전 부모님 세대에게 속칭 ‘엘리트 코스’로 불리던 ‘경복중-경복고-서울대’를 거쳐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의 역대 최연소 상무이사까지 지낸, 그야말로 대한민국에서는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수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서울대 아니면 전부 똥통이니 갈 생각도 하지 마라!”라는 말을 마치 가훈처럼 여기던 아버지는 칭찬에 무척이나 인색했다. 하루가 멀게 날아오는 아버지의 손찌검과 거침없는 발길질에 ‘오늘은 제발 맞지 않고 지나갔으면’하고 빌던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지옥과도 같았다.


중학생이 되든 해, 부모님의 이혼을 계기로 나는 드디어 아버지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지 몸만 벗어났을 뿐, 마음은 조금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미 아버지에게 길들어 ‘인정받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라는 생각에 단단히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신병에 가까운 강박 증세로 세월이 지날수록 나의 진짜 모습은 더욱더 가려져갔다.


결과와 인정에 대한 강한 욕구, 그리고 그것을 채우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은 나를 항상 채찍질했고 만족감이라는 단어는 마치 내 인생의 사전에서 지워진 것만 같았다. 덕분에 남들보다 빠르게 어느 수준 이상의 성과를 얻을 때도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듣게 되는 다른 사람들의 칭찬은 힘이 되기보다 오히려 더 큰 부담으로 느껴지기 일쑤였다. 그러다 결국에는 늘 그런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진짜 제대로 할 수 있는’ 또 다른 새로운 일을 찾아 도망치곤 했다. 언제나 열심히 살았지만, 결국 그렇게, 끝까지 해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깨달음


서른을 눈앞에 두고 있던 그때, 나는 언제나처럼 어느 날 갑자기, 잘 다니던 영어 학원 강사 일을 그만두고 건축 일을 배우기 위해 지방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도 나의 완벽주의 성향은 여지없이 발동했다. 틈만 나면 일에 매달렸고, 큰 프로젝트가 걸리는 날엔 무려 두 달 이상 평균 수면 시간을 두 시간 이하로 유지하면서 일에 빠져있곤 했다. 한 번은 함께 일하던 형이 그런 나를 징그럽다는 듯 쳐다보며 이런 말을 한 적도 있었다.


“야, 정말 너 정도 일하면 최소한 빌 게이츠 정도는 벌어야 하는 거 아니냐?”


그 말이 한 편으로는 ‘그만큼 벌지도 못할 거면서 뭘 그리 죽으라 열심히 하냐?’라는 핀잔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언젠가는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그런 빛나는 날이 올 거야!’라는 막연한 기대는 나를 계속해서 앞만 보며 달리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지인으로부터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평소 존경하던 분이 얼마 전에 갑작스럽게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사인은 자살이었다.


그는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히는 대기업의 지사장을 지내며 수천 명의 부하 직원들을 거느리던 그 지역의 성공한 기업인이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그만큼 승승장구하며 남부럽지 않은 부와 명예를 자기 것으로 만드신 분. 그분은 내게 있어 그야말로 완벽하게 성공한 인생의 표본과도 같은 존재였다. 남은 인생을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 정도 이루었으면 대체 얼마나 스스로 자랑스럽고 행복할까?’라며 내심 부러워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그의 부고 소식은 내게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틈만 나면 멍하니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허무한 죽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뒤, 그를 알고 지내던 또 다른 지인분을 만나 그의 사망 전 근황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퇴직한 뒤로 날마다 일없이 그저 동네만 휘휘 다니다가 그렇게 간 거야. 평생을 정신없이 살다가 사람이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지면 그렇게 돼.”

“아니, 소일거리라도 하면 되잖아요. 아니면 취미 생활을 하던지요.”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산 거지. 그 나이가 될 때까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평생을 반짝반짝 빛나게 살았어도 결국 톱니바퀴 인생이었다면, 언젠가 무리에서 빠져나와 혼자가 되는 순간 삶의 의미마저 잃게 된다니! 그제야 그의 죽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듯했다. 그에게 부족한 건 돈도, 명예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온전한 자기 자신에 관한 이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어떤 목표를 향해 이를 악물고 열심히만 살면 언젠가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성공의 기준은 당연히 누구나 인정할 수 있을 만큼의 돈과 명예였고, 그렇게 성공을 이루고 나면 행복은 저절로 따라올 거로 믿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나에게 ‘성공이 절대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라는 깨달음을 일깨워 주었고, 내 인생 일대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나를 찾는 여행의 시작


그날 이후, 일과를 마치고 난 뒤 짬짬이 즐기던 게임, TV 시청 등의 소확행이 더는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저 소모적이고 허무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평소 철학자보다는 현실주의자 쪽에 훨씬 더 가까운 나였지만,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은 당시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시급한 문제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랍비 같은 현인이라도 찾아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런 사람을 찾을 방법 따윈 없었다. 대신 그간 거의 담을 쌓고 살았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인생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이라면 정말 뭐든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읽게 된 어떤 책에서 다음과 같은 글귀를 발견했다.


‘모든 사람의 안에는 자신의 인생을 행복으로 넘치게 하는 어떤 근원이 있다.’


당시 생각을 거듭할수록 좀처럼 답이 보이지 않아 답답함을 느끼던 나는, ‘내 안에 있는 근원’이라는 게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내가 가지고 있지만 나조차도 모르는 것...


오랜 고민 끝에,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다름 아닌 ‘기억이었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지고 있지만 내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 그 무엇이라는 단서에 가장 적합한 듯 보였다. 그리고 곧장 마치 나 자신의 역사책을 집필하듯, 기억을 하나씩 더듬어가며 그간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일들을 노트에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여 동안, 틈만 나면 나의 기억을 적어나가는 일에 몰두했다. 처음에는 희미했던 기억들도, 나중에는 마치 그때 그곳으로 다시 가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펼쳐졌다. 기뻤던 일에 관한 기억을 적을 때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거나 소리 내어 웃다가도, 슬픈 기억을 적을 때는 도저히 계속 적어 가는 게 힘들 정도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기억들은 저마다 그렇게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오랜 기억들이 이토록 생생하게 남아있다니…’


그리고 곧 온몸에 소름이 돋는 전율과 함께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기쁜 감정들은 마치 내게 ‘그래, 잘하고 있어. 그렇게 그대로 가면 돼’라고 말하는 듯했고, 슬픔의 감정들은 ‘잘 봐. 그게 너에게 필요했던 거야. 잊지 말고 꼭 챙겨 가’라고 말하는 듯했다.


모든 감정은 마치 연을 날리는 사람의 섬세한 손끝처럼 나를 톡톡 건드리며 하나의 공통된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이게 너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름의 생각과 판단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을 정하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선택과 경험의 과정에서 나의 감정은 이미 내가 온전한 나로 살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길을 알려주고 있었다. 여러 가지 상황과 외부적 요인에 이끌려 어쩌다 어른이 되고 어쩌다 여기까지 혼자 오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단지 내가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뿐, 내 안에는 언제나 나를 가장 잘 아는 나의 전용 내비게이션이 함께였던 것이었다.


이런 깨달음 이후 나는 내가 가진 기억과 그 기억이 담고 있는 감정을 해석하는 방법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마음속 깊은 곳의 미세한 감정의 변화까지도 알아차리게 된 나는 내가 집중해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 빠르게 판단하고, 무엇부터 채워나가야 하는지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삶은 그전과는 180도 달라졌다.


자신의 힘으로 자기 삶의 방향을 정하고 그것을 확신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나를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스스로 인정할 수 있게 했고, 어린 시절부터 줄곧 땅바닥 위를 전전하던 나의 자존감을 온전히 회복하게 했다. 내면의 중심이 잡히자 더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크고 작은 외적 요인들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휘둘리지 않고 나다움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부어도 차오르지 않던 내 마음의 밑 빠진 은 그렇게 단단히 매워져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가득 차올랐다. 그리고 그렇게 차고 넘치는 부분을 예전의 나와 같은 모습으로 고통받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져갔다. 이후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나의 지난 경험과 그간의 연구 내용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감정을 해석하고 정체성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을 천직으로 삼고 있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고민을 나누는 일은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이 일을 계속하고픈 이유는 그들의 눈빛이 바뀌고 내면이 단단해져 감을 느끼는 매 순간이 내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감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언제쯤이나 편안해질 것 같냐는 친구의 걱정 어린 질문에 오히려 반대로 더욱 바빠졌으면 좋겠다고 기꺼이 답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혹시, 매주 주말이 오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거나 월요일만 되면 월요병에 시달리는가? 아니면, 먼 훗날 언젠가 잭팟을 터뜨릴 행복한 그 날을 기다리며 벌써 몇 년째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중인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노트를 꺼내 당신의 머릿속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기억들을 적어보길 바란다. 그리고 그 기억에 담겨 있는 감정이 당신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느껴보라. 그것이 어떠한 감정이든, 당신이 온전한 당신 본연의 모습으로, 당장 지금부터 행복해질 수 있도록 인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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