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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림 Aug 15. 2021

0. 엄마, 또 나야

엄마를 이용할 작정인 딸의 변명

엄마의 딸, 내가 또 이렇게 찾아왔어.


내가 “브런치에 엄마한테 쓰는 편지 형식으로 글을 연재해볼까 해.”라고 말하자, 

엄마는 익숙한 그 표정으로 아주 질색하며 나를 쳐다봤지. 

“아니, 무슨 애가 글에서도 이렇게 치대.”      


...치대다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상처받았지만 금방 잊어버리는 나는 엄마에게 기획 의도를 꿋꿋이 설명했지.

“지난번에 만든 책에서는 ‘나’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뤘잖아. 그때의 내가 써야만 하는 글이었지만, 앞으로는 계속 내 이야기만 쓰는 것보다는 좀 더 주제를 확장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 그래서 이번에는 나의 이야기와 더불어 여러 주제에 대해 엄마에게 이야기해보는 형식을 써보는 거야. 

그러니까 음, 엄마는 이용당하는 거지.”     


주변에 친구가 없으니까 맨날 엄마 이야기만 쓰는 게 아니냐, 이렇게 말하던 엄마는 자기를 이용하겠다는 말에 또 나를 기가 막히다는 듯이 째려봤지. 나는 당당하게 이 정도는 이용당해줘도 되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고. 결국 금방 우리 둘 다 “흥흥” 이러면서 이 실속 없는 대화는 끝이 났지만 말이야.      


물론 허공에 대고 독백을 해도 되지만, 엄마를 이 시리즈의 수신자로 고른 건 나름의 이유가 있어.     


어렸을 적 기억이 정말로 내 기억인지는 확실치 않다.
머릿속에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어머니의 숨결이 곳곳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 애니타 다이아먼트, <여자들에 관한 마지막 진실>


나는 이 구절이 굉장히 인상 깊었어. 무려 고등학생 때 읽은 문장인데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니까. 나의 기억 속에도 엄마는 곳곳에 등장하는 존재거든. 동시에 현재의 나라는 사람을 설명할 때 엄마를 빼놓을 수 없기도 하고. 그런 엄마에게 지금의 내 생각과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이미 집안 곳곳을 따라다니며 조잘거리는 나의 일상 이야기를 매일 듣고 있겠지만, 

우리가 평소에는 잘 거론하지 않는 이야기까지 써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     

 

저번에도 말했듯, 엄마는 내가 모든 걸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제일 많은 것을 말하는 사람이니까.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더라도,

아예 덮어놓기보다는, 그래도 이야기해봐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자주 이번 생은 망했다며 절망하는 사람이지만,

또 자주 이왕 태어난 거, 어제보다는 조금씩 나아진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배우고 생각하는 것을 멈춰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내가 쓰는 게 모두 정답이라는 말이 아니야. 

함께 생각하자는 거지.     


“왜 그런 걸 생각해?” 이렇게 말하며 연속극에서 눈을 떼지 않는 엄마의 모습이 이미 눈에 보이는 듯하지만, 나는 계속 말하기를 멈추지 않을래.     


언제나 귀찮게 구는 딸이 내가 맡은 역할이니까.

엄마도 귀찮은 껌딱지를 툴툴거리면서도 계속 받아줘.     


그럼, 좋은 저녁!     



엄마 말대로 치대는데 일가견이 있는 딸 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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