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중요한 사건은 다른 유능한 변호사님들에게 맡기고...
<내 법대로 산다> - 일 편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작년말 아내와 결혼식을 올렸다. 코로나 속에서 결혼식을 치르느라 참 고생했다. 심지어 결혼식 며칠 앞두고 갑자기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1.5단계에서 2단계로 바뀌어서 수용인원이 100명으로 줄어들었다. 계약상 보증인원(정해진 인원보다 적게 와도 식대비용을 내야 하는 인원)은 200명인데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코로나 속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 자체가 죄송하면서도 또 어려운 발걸음 해주셔서 우리의 결혼을 축복해주신 하객분들께 너무나 감사했다.
그러나 한편 코로나 때문에 아무리 영업이 어렵긴 하겠지만 예식장 측에서는 코로나로 결혼식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기존 계약대로의 결혼식을 강요하며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려는 태도에 매우 실망스러웠다. 다행히 나는 웨딩홀 측에 변호사임을 밝히고 강력히 법적 입장으로 대응하여 유리한 쪽으로 협상을 얻어냈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은 법적인 내용을 잘 몰라 예식장의 일방적인 태도에 끌려다니는 경우를 보게 되었다. 내 결혼식은 무사히 끝났지만, 내가 처했던 코로나 결혼식이라는 실생활 문제에 대한 복잡한 생각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었다.
그래서 코로나 상황에서 결혼식을 치렀던 나의 경험과 법적 지식으로 신혼부부 동지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블로그에 관련 법률정보 글을 정성스럽게 작성해서 사람들과 공유했다. 기본적으로 코로나 사태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그로 인한 위험을 신혼부부에게 모두 전가하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되었다. 정부의 조치가 있기는 하나 실질적인 도움은 되지 않아, 신혼부부들이 법적인 내용을 알아 스스로 권리를 지키길 바랐다. 내 글이 검색순위 상단에 오르며 많은 예비신혼부부들에게 연락이 왔고 변호사 상담은 원칙적으로 유료이지만 사람들의 안타까운 문의에 무료로 상담을 해주기도 했다. 결국 이런 활동으로 별다른 수익을 올리진 못했지만, 내 글을 읽고 도움이 되었다는 사람들, 예식장과 잘 해결되어 무사히 결혼식을 치렀다는 연락을 받으며 돈보다도 값진 보람을 느꼈다.
변호사의 기본적인 역할은 바로 문제를 해결해주는 해결사라고 생각한다. 그 문제의 규모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그 문제를 처한 당사자에게는 다 같이 중요한 일이다. 로스쿨 때 법을 배우면서 친구 동생이 휴대폰대리점에서 핸드폰을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사는 소위 호갱을 당했는데 대리점에서는 개통한 후에는 청약철회가 안 된다고 해서 할부거래법을 근거로 문제를 해결해주었던 일 등 주위 친구들의 소소한 문제들의 해결을 자처해왔다.
큰 기업들 간의 M&A나 몇백억대 소송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평범한 사람들에게 실생활에서 흔히 일어나는 작은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도 내가 사회에 기여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크고 복잡한 사건들은 일류 변호사들에게 맡기고 나는 소소하고 시시하지만 이런 작은 사건들을 처리해보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작은 사건 해결을 지향하는 변호사가 되기로 했다.
코로나 결혼식 문제 상담을 한참 하고 나니 앞으로 무슨 사건을 담당해야하지 란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의 업무는 다른 사람의 고민을 떠안는 일이기 때문에 사안에 기본적인 흥미나 열정이 없다면 진정으로 열심히 수행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업무영역도 이혼, 상속, 부동산, 민사소송, 기업일반, 형사소송 등등 각기 다양하기 때문에 모든 사건을 주어지는 대로 다 할 수는 없고 주로 하는 전문분야를 구축해야 했다.
먼저 내가 변호사로서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일까 생각을 해봤다. 로펌다닐 때 잘 나가는 에이스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소가 몇백원대 민사소송 이런 것보다는 형사사건, 그 중에서도 남들이 잘 하지 않으려고 하는, 흔히 로펌에서 ‘잡사건’이라고 부르며 폄하되는 개인고객 형사사건들을 꽤 많이 했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사건들이 결과적으로 나한테는 잘 맞았었고 내가 잘 아는 사건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추리소설 덕후였기 때문에 형사사건이 나에게는 좀더 친숙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과거 사건경험을 토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형사사건부터 하면서 방향을 찾아나가기로 했다. 사기, 성범죄, 명예훼손, 모욕, 폭행, 협박 등 여러 종류의 사건들, 수사단계, 재판단계 피의자 변호에서 고소대리까지, 아니면 부분적으로 서면 작성이나 조사 참여 등 다양한 사건들을 처리했다. 많은 사건들을 혼자 처리하면서 형사사건에 대한 나름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형사사건 경험이 많아지면서 명예훼손, 모욕 분야에 특히 관심이 갔다. 법률상담플랫폼 온라인상담 게시판을 보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질문하는 분야가 명예훼손, 모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호사들의 답변이 많지 않고 기피하는 분야이기도 한데 그건 의뢰인들 연령대가 어리고 소위 돈이 되지 않는 사건이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초등학생이 롤하다가 다른 사람과 욕하며 싸운 경우 등). 그런데 반골기질을 가진 나는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이런 사소하고 작은 문제에 이상하게 관심이 갔다.
명예훼손, 모욕은 어떻게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다른 범죄가 달리 발언자의 표현의 자유와 당하는 자의 프라이버시 내지 인격권이 대립, 충돌되는 복잡미묘한 범죄이다. 어느 한쪽만을 탓하고 어느 한쪽만을 내세울 수는 없다. 인간의 언어 발달 이론 중에는 인간이 뒷담화를 하기 위해 언어가 발달되었다는 ‘뒷담화 이론’(실제 이론의 이름이다)이 있는 만큼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에 대해 뒷담화나 험담을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일 수도 있다. 카페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 얘기를 한번 귀기울여 보라. 십중팔구 거의 다 뒷담화일 것이다. 그렇지만 양쪽 어딘가 중간에 기준을 세워야 하겠지만 판례를 봐도 각각의 케이스마다 기준이 애매하고 보는 사람들마다 시각이 달라 판단이 쉽지 않다. 그래서 각각의 상황에서 어느 한쪽의 억울함이 없도록 변호하고 대리하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과정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그 분야에 대한 공부와 연구를 병행하면서 온라인상담, 전화상담 경험을 쌓아나갔고 앞서 말한 선순환의 원리대로 신기하게도 내 바람대로 관련 사건들이 여럿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분은 연구원분이셨는데 인터넷기사에 무심코 쓴 기억도 나지 않는 댓글 때문에 고소를 당하여 온 사건이었다. 그 기사는 어떤 판결에 대해 소개하는 기사였는데 기사의 논조도 판결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의뢰인도 판결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적었다가 판결의 당사자가 우연히 그러한 댓글들을 보고 모조리 자신에 대한 명예훼손 및 모욕으로 집단고소한 것이었다. 그러나 기사에는 당연히 판결의 당사자 정보도 없고 사건번호도 없어서 의뢰인은 판결 당사자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했고 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나는 의뢰인과 조사를 동행하고 서면에서 이런 점을 잘 주장해서 의뢰인은 결국 경찰단계에서 불송치결정(올해부터 검경수사관 조정에 의해 새로 생긴 제도로 경찰단계에서 혐의가 없다고 판단되면 검찰에 송치하지 않는 결정)을 받아냈다. 어떤 사안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게 되면 당연히 관련된 당사자는 꺼려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다 명예훼손이나 모욕으로 고소를 하고 처벌된다면 그 사회는 아무도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침묵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이러한 경우까지 명예훼손이나 모욕죄가 적용되어서는 안 되는 사안이었다. 의뢰인은 무심코 쓴 댓글로 인해 나를 선임한 비용, 시간을 빗대 농담삼아 내 인생 최고의 원고료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또 한번은 인터넷 모 유명카페에서 N번방 가해자로 의심되는 사람을 저격하는 글이 올라왔는데 이를 보고 무심코 욕설을 하였다가 당사자로부터 모욕죄로 고소되어 연루된 여러 분이 나한테 찾아온 적이 있었다. 나중에 그 글의 당사자는 N번방과는 관련이 없는 걸로 드러났고 의뢰인들이 물론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악플을 단 것은 잘못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그 자료를 보더라도 사실상 확인을 할 수도 없을 뿐더러 N번방과 관련되었다고 생각했다면 국민 누구라도 욕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 같았다. 악플을 단 것은 잘못했지만 이런 걸로 처벌되기에는 조금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조사를 동행하고 이런 정상관계를 잘 주장해서 결국 다행히도 기소유예로 막을 수 있었다. 의뢰인들은 본업으로 돌아갔고 다시는 함부로 댓글을 달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명예훼손, 모욕 분야에서 여러 사건들을 맡고 성공사례를 만들어가며 나는 명예훼손, 모욕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나갈 기회를 얻게 되었다. 참 감사한 일이었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그 덕에 사람들이 인터넷상에서 개인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되면서 어떤 중앙적인 매체를 통하지 않고도 인터넷상에서 자신의 채널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펼치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 즉 인플루언서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흐름은 회사로부터의 독립과 1인기업 등 트렌드와 맞물려 계속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인플루언서들은 포털사이트 댓글 등을 통한 간접적인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채널 댓글란 등을 통해 사람들로부터 직접적으로 피드백을 받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악플로 명예훼손이나 모욕 등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런 인플루언서들은 신문사나 방송사 등 중간에서 필터가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대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기 때문에 도리어 인플루언서에 의해 다른 사람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모욕이 손쉽게 일어날 가능성도 높다.
그리고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야 명예훼손이 되어봤자 동네에서 문제됐겠지만 이제는 인터넷의 발달로 파급력이 심해져 명예훼손이나 모욕의 피해도 막대해졌다. 디지털 평판이 굉장히 중요해진 시대가 아닌가.
따라서 블로그,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 채널을 가리지 않고 인플루언서와 관련한 명예훼손, 모욕 사건들은 급증하고 있으며 나 또한 실제로 이런 건들 상담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이런 사건들은 명예훼손, 모욕의 기존 법리를 잘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적으로 해당 SNS를 경험하면서 각 채널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러한 특성에 법리를 어떻게 적용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나 또한 브런치를 운영하는 초보 인플루언서이자 인플루언서 시장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이렇게 새롭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에서 명예훼손, 모욕 등의 문제가 발생하여 성장을 더디게 하지 않도록, 각 채널의 특성에 맞게 명예훼손, 모욕의 기준을 정립하고 해결될 수 있도록 관련 분야를 개척해나가고 싶다. 나는 궁극적으로 그러한 전문분야를 개척하기 위해 열심히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