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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채로운 윤슬 Feb 23. 2024

대학원까지 나와서 학습지 선생을 한다고?

정말 오랜만에 쓰는 글이다.

정말 오랜만에, 여유가 생겨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10년 간 공부하고 준비했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솟아올라왔지만

글로 남길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그 감정들을 남기고 싶어 지난 시간을 복기해본다.






교육 첫날.

그간 온라인 교육을 혼자서 받다가

교육장에 모여 책을 받고 신입 선생님들과 담소를 나누니 조금 새로운 기분이었다.



예전처럼, 강한 열정도 투지도 없었다.

많은 돈을 벌어야겠다는 마음 가짐 조차도 없었다.

그냥,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적당한 일을 하기 위해 고심 끝에 들어온 곳이었다.



내가 선택한 일은 바로 가정 방문 학습지 선생님.

초등학교도 없어지는 이 시국에 학습지 선생님이라니,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이 회사에 뼈를 묻을 것도 아니고, 엄청난 비전과 사명감으로 들어온 것도 아니다.


체력이 좋지 않아

주 4일 근무를 간절히 원하던 나에게

주 3일만 일해도 된다는 것은 꽤나 강한 유혹거리였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인터넷 검색과 유튜브 검색을 통해 이 직업의 정보를 수집했다.

어떤 일을 하는지부터 시작해서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든지까지..


정보를 모으면 모을수록, 희망보다는 헛헛함이 밀려들었지만

집 바닥에 누워서 휴대폰으로 쇼츠나 넘기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무엇이라도 시작해서 배우는 것이 좋을 거란 생각에 용기를 내서 이력서를 썼다.



오랜만에 열어본 내 이력서.

'오버 스펙'이 도움되지 않는다는 말이 기억났다.

대학원 수료를 보면서 학력란에 한 줄을 지웠다.

대학원을 다닌 것이 학습지 선생님을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대학원 졸업하고 싶었는데, 논문이 발목을 잡았다.

지도 교수님은 전화도 받지 않으시고 여전히 내 카톡을 읽지 않으신다.

그렇다고 애살있게 교수님을 뵈러 학교에서 진을 치고 싶은 생각 또한 없다. 그럴 열정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어진지 한참이다.

혹시나 교수님 상황을 전해들을 수 있지 않을까싶어 대학원 선배한테 카톡을 보냈는데 또 읽씹 당했다.


'이제 볼일 없다고 무시하는 건가..?'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왔지만, '바빠서 그런거겠지', '그럴 사정이 있겠지'라고 애써 외면했다.



경력란을 보고 6개월 미만의 근무처는 지웠다.

몇 줄 남지 않았다.

이렇게도 끈기 없이 살았나, 회의감이 몰려왔다.


빼곡히 적힌 자기소개서를 지우고, 컴퓨터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을 정리해서 후루룩 썼다.

전에는 입사 지원할 때 몇날 몇일이고 머리를 싸매며 자기소개서를 고쳐썼는데, 이렇게 쉽게 써도 되나 생각이 들었다.


입사 마감 시간에 맞춰 제출했다.

다음 날, 면접을 보자는 연락을 받아 1차 면접을 보러갔고, 면접에서 자기소개를 성의있게 썼다며 칭찬을 받았다.


면접에서 나에 대한 질문은 간략했고, 회사에 대한 소개와 비전에 대해 듣고 나왔다.

몇일 후 2차 면접까지 보고 나왔지만, 여기를 다니는 게 맞을까 심란한 마음은 여전했다.




1주간의 교육이 끝나고 사무실에 출근을 했다.


"아, 안녕하세요..."

나는 멋쩍어서 조그마한 소리로 꾸벅 인사를 했는데


"안녕하세요~!!!" 라며 선생님들이 입을 모아 합창하듯 힘찬 인사가 돌아왔다.

그간 내가 다녔던 회사에는 서로 인사도 잘 주고받지 않는 분위기였는데, 어색했지만 느낌이 좋았다.

나도 여기에 있다보면 점차 예전의 밝은 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이 생겼다.


미팅을 시작하기 전에 꼭 회사 사명을 읽고 시작했다.

내가 만날 아이들이 단순한 회원이 아닌, 세상을 이끌어갈 인재들이겠다는 생각에

내게 주어진 10분, 20분을 의미있게 채워줘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계약서를 작성하기 전까진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미팅 시간 외에는 수학 학습지를 열심히 풀었다.

중학생 때 수학 문제 풀었던 게 생각이 나면서, 오랜만에 머리가 돌아가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점심 시간에는 선생님들과 함께 밥 먹으며 분위기에 적응해나갔다.


점심 먹고는 다른 경력직 선생님들을 따라 수업에 참관하면서 어떻게 수업해야하는지 살펴봤다.



수업 사이에 잠깐의 시간이 나서

선배 선생님과 같이 편의점에 들렸려서 붕어빵을 샀다.


선배 선생님이 물어왔다.

"사무직이면 어떤 일 하신 거예요?"


"아 디자인 쪽으로 했어요. 웹도 하고 모바일도 하고..."

"그럼 혹시 UI UX? 그쪽으로 관심 있었는데"

"네! 맞아요. 그 일했는데.... 하루종일 컴퓨터 모니터 보고 앉아있는 것도 답답하고, 게다가 AI때문에 승산 없을 것 같아서 앞으로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해야겠더라구요. 그래서 경험 쌓는다 생각하고 시작하게 됐어요"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선생님들이 대다수였는데 나보다 어린 또래 선생님과 감대 형성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동행 수업을 하면 졸리다는 소리를 듣고는 볼펜과 수첩을 챙겨가서 보이는 것, 들리는 것을 빼곡하게 써내려갔다.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고참 선생님들이 참 대단해보였다.



과연, 나도 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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