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깔나는 취향으로 가득한 삶을 시작하고 싶다면
대학생이 된 이후 밀려오는 자유와 시간이 버거웠습니다. 전 취향도 취미도 딱히 없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주변에서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난 딱히 취미가 없어.'라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우린 어쩌다 이렇게 된걸까요.
낭만의 단계를 건너 뛰었기 때문입니다.
교육학자 화이트헤드 (Alfred North Whitehead)는 인간이 세 단계를 거쳐 학습한다고 말합니다.
축구를 예로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낭만의 단계: 재미, 흥미를 발견하는 '첫 사랑에 빠지는' 단계
7살 아이가 아빠와 축구를 하게 됩니다. 골이라는 것을 배웠고 아빠는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주변에 있던 또래 아이들과 축구공을 가지고 놀면서 골을 넣을 때마다 신나합니다. 그렇게 축구와 첫 사랑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는 축구를 통해 친구들과 친해집니다. 골을 넣는 것은 여전히 재미있습니다. 축구에 대한 좋은 기억, 즐거움은 아이가 더욱 축구에 빠지게 만듭니다. 성공적인 낭만의 단계를 지난 것이죠.
정밀의 단계: 규칙, 기능을 익히고 연습하는 단계
점심시간마다 축구를 하는 아이는 더 잘 하고 싶어집니다. 축구선수들의 화려한 발재간에 열광하고 그들처럼 되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어 연습합니다. 축구경기를 보며 전술에 감탄하고 반 대항 경기를 준비할 때 적용해보기도 합니다. 기능을 연마하고 훈련하는 정밀의 단계는 고된 과정이지만 이 아이에게는 '재미'라는 누구보다 강한 동기가 있습니다.
일반화의 단계: 충분한 이해/기술/능력을 바탕으로 삶에 자유롭게 적용하는 단계
대학교에 진학한 아이에게 이제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 이상의 의미입니다. 축구선수로서 직업을 꿈꿀 수도 있고 사람들과 친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며, 인생을 축구에 멋드러지게 비유하기도 합니다. 축구를 삶 곳곳에 적용하는 일반화의 단계에 접어든 것이죠.
전 축구에 있어 낭만의 단계를 거치지 못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축구를 접해본 횟수 자체가 적었고 초등학교에 가서는 할 줄을 모르니 하지 않았습니다. 만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 축구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중학교부터는 축구를 할 줄 모르니 낄 수조차 없었습니다. 학업에 전념해야 하는 상황에서 축구를 배우러 갈 수도 없었습니다. 나의 삶을 다채롭게 해줄 취향, 취미가 가로막히는 가슴 아픈 순간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이런 상황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더더욱.
대한민국의 학교는 농구공을 던져 몇 번을 넣는지를 평가하지 클린 슛을 넣을 때의 쾌감에 박수쳐주지 않습니다. 인상주의 화가는 누가 있는지 외웠지만 그들이 사용한 색이 얼마나 예쁜지 보고 느끼는 경험은 뒷전입니다. 낭만의 단계를 거치지 못한 우리는 당연히 더 잘 알 수 없고 잘 할 수 없습니다. '잘 모르고 못하는 것'에서 오는 무기력함이나 거부감은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재미'가 이렇게나 중요합니다.
지금이라도 낭만의 단계를 시작할 순 없을까?
'뭘 모르면 두려움이 없다'고 하죠. 두려움이 적은 유년기는 망설임 없이 경험하고 흡수하는 마법같은 시기입니다. 그 시기를 지난 우리는 조금 더 섬세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내가 좋아하고 재미있어야 합니다. 가볍게 '괜찮아보이는데?' 정도도 좋습니다.
1+1=2 수준이 아니라 1에 대해 배우는 정도로 쉬워야 합니다. 시간과 돈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된다면 더욱 좋습니다. '쉽다'의 기준이 개인마다 활동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 부분은 제 취미에 대한 글에서 구체적으로 남길 예정입니다.
아무리 쉬운 목표를 잡아도 관심만 갖다가 몇 달씩 지나가곤 합니다. 자책하지 마세요. 당연한 과정입니다. 오래 걸려도 좋으니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면 시작해보세요. 혹은 더 쉬운 목표를 잡아봐도 좋습니다.
시작만 하고 꾸준히 못해도 괜찮습니다. 시작만 6번째라구요? 그것도 괜찮습니다. 잘 모르고 못하는 것을 시도하는건 당연히 그렇습니다. 조금만 더 반복해보세요. 시작만 반복한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진전과 다양한 재미를 느끼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됩니다.
적다보니 어렵게도 설명했구나 싶습니다. 낭만의 단계는 결국 쉽고 재미있게 시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막상 적용하려면 쉽지가 않습니다. 훨씬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하구요. (쉽고 재미있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교육학적으로 거의 정점에 가까운 스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매거진을 통해 제가 겪은/겪고 있는 낭만의 단계들을 기록하면서 구체적인 방법과 과정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글쓰기/읽기, 미술, 사진, 코딩 등 다양한 현재 진행형 취미 일기장이 될 듯 합니다.
쉽고 재미있는 것이 유치하지 않은 세상, 오히려 멋진 시작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로맨스가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