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전시를 쉽고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는 3가지 방법
전시가 익숙하지 않은 친구와 미술관에 가면 관람 내내 '와 어렵다'를 연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시를 보려면 미술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하고, 무언가를 해석해 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경우도 많고요. 문과였던 제가 이과 친구의 물리 공식을 보고 '음.. 엄청 어려워 보이고 난 절대 풀 수 없겠네. 관심 없으.'라고 느꼈던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근데 물리 공식과 다르게 미술관은 별거 없습니다. 쉽고 재미있게 관람하는 방법만 알고 있다면 말이죠. 저희 어머니는 미술관을 어렵게 느끼던 초등학교 6학년 아들에게 3가지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 그대로 24살 지금까지도 미술관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걸로도 충분히 재밌거든요. 소개해볼까 합니다.
국립 현대 미술관, 환기 미술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두 곳입니다. 건물 자체가 예쁘고 근처에 맛있는 빵집과 맛집이 많습니다. 멋진 건물에 들어간다는 색다른 즐거움부터 관람 전후로 즐기는 식사가 주는 행복은 정말 큽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인스타에 올리고 있노라면 내가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기부니가 조크등요.
미술관을 간다는 사실 자체로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한껏 즐기고 맛집에 가고 인스타도 마구마구 하세요. 남 시선은 신경 쓰지 말고 미술관을 가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즐겨봐요. 재밌는 게 무조건 1순위.
잠시 눈을 돌려 액자만 하나하나 살펴볼까요? 그림마다, 전시마다 다른 색과 모양의 액자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차린 스스로가 너무 대견하고 멋지게 느껴질 거예요. (이거 진짜 해본 사람만 알아요!) 그리고 현대 미술과 고전 서양화 전시의 액자가 다르다는 것까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재미는 더욱 커질 겁니다.
액자 감상을 마쳤다면 큐레이션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조명은 어떻게 되어 있지?', '여긴 벽지 색을 이렇게 해뒀네', '이 문을 나섰을 때 큰 공간이 갑자기 나오니까 엄청 멋있네' 등등. 우리가 무심코 지나갔던 사소한 부분들은 사실 미술에 조예가 으마무시하게 깊은 분들의 의도가 담긴 결과물입니다. 그냥 관심을 가져보는 것만으로 꽤 신선하게 미술관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이제 슬슬 그림에 눈길을 줘볼까요? 나름 미술관인데 그림도 한 번 봐줘야죠. 아니, 두 번 보도록 합시다.
멀리서 혹은 일반적인 거리에서 그림을 바라보세요. 그냥 그림이 보일 겁니다. 전 보통 '그냥 그림이구나' 이 정도 감상이 전부입니다.
이제 가까이, 정말 가까이서 볼 차례입니다. 화가의 붓 터치, 캔버스의 무늬가 보일 정도로 말이죠. (물론 절대 만지지 않아야 하고 다른 사람의 관람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요!) 멀리서 볼 때 그냥 사실적이라고 생각했던 그림이 가까이서 보면 생각보다 조악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진처럼 입체적으로 느껴졌던 광택이 가까이서 보면 정말 흰색 선 몇 개 그어져 있는 것임을 확인하는 게 전 그렇게 재밌습니다. 화가가 그었던 자잘한 자국들과 그림이 올라간 종이, 캔버스의 재질도 볼수록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고 나면 이제 멀리서 한 번 더 보고 싶어 지기 마련입니다. 계속 왔다 갔다 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는 것도 금방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보다 보면 가끔 미대생이냐는 질문도 들어볼 수 있습니다!)
'해석하려 하지 마라', '네가 느끼는 그대로가 맞다' 등 너무 뻔한 이야기들은 뺐습니다. 알면서도 우린 뭔가 해석하며 지적인 호기심을 채우고 싶기 마련이니까요. 매우 쉬워 보이는 이 방법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자산이 되기도 합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볼까요?
1번 방법은 우리의 취향을 다져줍니다. 좋아하는 미술관이 생기고 자주 가는 식당이 생기죠. 친구를 데려갈 때 지도를 보지 않고 미술관으로 휘적휘적 가기도 하고요. 미술관이 우리의 일상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입니다. 동네 앞 편의점처럼 미술관이 익숙해질 때 우린 힙스터가 됩니다.
2번 방법은 지루함을 덜어줍니다. 아주 확실하게 미술관에서 볼거리를 늘려주죠. 간혹 이해가 하나도 되지 않고 별 감흥이 없는 전시가 있곤 합니다. 그럴 때 액자 모양, 조명, 공간, 벽 등을 보고 있노라면 뭔가 색다른 것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분명히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들을 왜 이렇게 해뒀을까'라는 생각을 하다 보면 다시 작품에 눈이 가고 감상을 이어가게 되기도 합니다.
3번 방법은 자연스레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입니다. 가까이서 작품을 보다 보면 작품 캡션에 적힌 '캔버스에 유채'라는 글에 눈이 가는 순간이 옵니다. 이게 왜 이런 질감인지 궁금하니까요. 전에는 무심코 지나갔지만 이제 우린 '캔버스에 유채'일지 '종이에 아크릴'일지가 궁금한 '볼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죠.
그리고 그 질감과 색이, 선들이 멀리서 보았을 때 어떻게 보이는지 보다 보면 색감과 구도에 대한 궁금함이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그 시점에는 오디오 가이드를 추천드려요. 흘려듣던 내용들이 귀에 쏙쏙 박히며 재미있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24살인 지금까지 이 세 가지 감상법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늘 효과 만점이죠. 쉽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미술관과 전시에 폭 빠지게 해 준 어머니께 이 감사를 전합니다. 이 글을 통해 미술관을, 전시를 조금 더 쉽고 재미있게 보게 되는 분들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메리 어버이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