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스웨덴의 부모님 세대는 우리와 어떻게 다를까?
아니타와 우린 꽤 닮았을지도?
은퇴 전 저널리스트였던 아니타는 호기심이 많다. (정말 귀엽다)
밤늦게까지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 건지 궁금해하던 아니타. "우리는 온라인 커머스 플랫폼 회사에서 일을 했었어요. 그래서 온라인으로 상품을 파는 사람들에게 컨설팅을 해주기도 하고, 더 잘 팔릴 수 있도록 상품 상세페이지 제작이나 마케팅을 해줍니다." 그러자 어떤 툴로 그 일을 하는지, 어떤 모습인지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질문을 했다. 일러스트와 포토샵, 프리미어 등 어도비 프로그램을 사용한다고 대답했더니 자신도 그 툴을 사용할 줄 안다며 공통점을 발견하곤 반가워했다.
나는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이 흥미로웠다. 첫째는 상대방에 대한 진지한 호기심으로부터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그녀의 모습이었고, 둘째는 아니타가 어도비 디자인 툴을 만진다는 사실이었다. 다섯 명의 자식을 둔 아니타의 막내딸이 남편(34세)과 동갑 생으로, 그녀는 우리의 부모님 보다도 조금 더 삶을 산 어른이다.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디자인 툴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고 아이폰을 쓰며, 매주 독서모임을 나가는 그녀. 부모님 보다도, 어쩌면 우리와 더 닮은 듯한 그녀였다.
스웨덴 사람들의 냅킨 사랑
아니타가 내어준 빵과 커피로 피카 타임을 가지던 어느 날. 피카 빵을 비워내고 나니 예쁘장한 종이 한 장이 살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누군가 아니타의 주방에 놓인 식재료들을 보고 그린듯한 그림이 그려진 냅킨이었다. 냅킨 자체가 그리 신기한 물건인 건 아니지만 누군가의 집에, 그것도 부모님 연세의 노부부가 사는 집 식탁에 자연스레 올려져 있는 이 광경이 조금 신기했다.
하지 않아도 될 무언가를 '굳이' 한다면 그게 그 사람의 스타일이라고 한다. 매슬로의 욕구 5단계 이론에 따르면, 기본적인 욕구들이 다 충족되고 나야 마지막에 나올 수 있는 것이 자아실현의 욕구인데 이 욕구를 해소하는 과정이 바로 '굳이'를 행하는 것이지 않을까. 한국은 세계의 그 어떤 나라보다도 빠른 속도로 욕구의 단계를 넘어서 왔고 지금은 자아실현의 욕구를 더 다채롭고 견고하게 해소하고 있는 중에 있다.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너도나도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외치며 나만의 것을 찾아 나선다. 나 역시 여행을 떠난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나만의 '굳이'를 더 명확히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떠나온 스웨덴에서 마주친 이곳의 '굳이'는 상당히 상향 평준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웨덴 사람들의 취향이 더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젊은 세대에 국한된 자아실현의 과정이 부모님 세대에서부터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고, 세대를 거쳐 내려온 '굳이'가 얼마나 깊은 향기를 낼 수 있는지 어렴풋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삶을 떠올리며
스스로의 만족감에 대해 고민할 시간과 여유가 충분히 주어지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시간을 가꾸며 살아가는 이들을 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부모님과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이. 그리고 이 생각이 떠올려질 때면 늘 마음이 뜨겁게 아려온다. 대부분의 한국 부모님들은 혼란스럽고 힘든 시절을 이겨내며 본인의 자아실현 따위는 생각해볼 여유도 없이 젊은 시절을 보내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실제로 민주화 운동에 나서기도 하고, IMF도 정면으로 맞았던 엄마와 아빠. 내 부모님은 자신이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이 본인에게 만족감을 주는지 고민할 수 있는 젊음이 부재했다. 하지만 '자신'을 배제한 채 '자식'만을 생각했음에도 대단한 도전과 성과를 이루어내기도 하셨다.
내가 유치원생일 시절이었다. IMF를 직격으로 맞은 이후 차렸던 짜장면집이 잘되지 않으셨다고 한다. 짜장면집을 정리한 후, 아동 영재학원과 레고 학원을 창업하셨다. 아니, 그 어렵던 시절에 짜장면집 다음으로 영재학원을? 다시 생각해봐도 너무나 신기한 아이템이지 않은가? 지금의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 해볼 일이다. 하지만 내 부모님에게 일이라는 건 '자식을 교육시킬 수 있게 하는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에 용기 낼 수 있으셨을 거다. 적성에 꼭 맞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 덕에 우리를 교육시킬 수 있었던 지난 젊음을 후회하지 않는 엄마와 아빠. 모든 부모님이 그렇듯, 더 잘해주지 못했음에 오히려 미안해하시곤 한다.
이러한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는 주어진 시간을 가꾸고, 무엇이 나를 만족하게 하는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됐다. 일을 선택하는 기준과 목적이 너무나 달랐던 지금과 그때를 비교하며 내게 주어진 이 여유를 더 의미 있게 흘려보내고, 보다 더 현명하게 행복해져야겠다는 책임감 비슷한 것이 생긴다. 그 행복 속에서 부모님과 함께 웃고 있는 우리를 그리며 오늘도 온 힘을 다해 행복한 하루를 보내본다.
아니타는 자신의 부모님도 우리의 부모님과 같은 힘든 세월을 보내셨다고 말했다. 이런 부분에선 스웨덴과 한국의 삶에는 딱 한 세대 정도의 차이가 있는 듯 보였다.
우린 아직 아이에 대한 계획은 없지만, 언젠가는 부모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 만약 아이를 낳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상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곤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굳이'들이 켜켜이 쌓여 내려간, 다음 세대의 삶이 무척이나 기대된다. 우리는 어떤 부모님, 어떤 윗 세대가 되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