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ddie Feb 02. 2023

세계여행 5개월 차, 파키스탄으로 간 이유

상상으로 잘 그려지지 않는 미지의 세상에 떨어지고 싶었다.


PCR 확인서가 있어야 해요

 약 4개월을 유럽연합의 *쉥겐조약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지낸 우리에겐 상상도 못 한 통보였다. 아직까지도 마스크를 쓰는 나라에서 온 주제에 감히 코로나를 잊고 지냈다니. 이거 봐, 우린 또 '여행'에 익숙해져 버렸다니까.

*쉥겐조약 : 유럽연합(EU) 회원국 간 무비자 통행을 규정한 국경 개방 조약으로, 솅겐조약 가입국은 같은 출입국 관리정책을 사용하기 때문에 국가 간 제약 없이 이동할 수 있다.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생각의 환기를 찾으려 했던 여행이었는데, 그 여행에서의 삶에 다시 익숙해지고 안일해져 버리는 아이러니. 그렇게 우린 70만 원짜리 파키스탄행 비행기를 놓쳤다. 아주 깔끔하게, 눈앞에서.


다시 생각해 보니 적절한 시기에 놓인 주사였다. 많이 따끔하긴 했지만, 제대로 긴장을 차렸으니 말이다.

비행기를 날려보낸 직후, 공항에서


아무튼 우린, 세계여행 5개월째

 유럽과 약간의 아프리카 대륙을 넘나들며 총 17개국을 여행했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5개월의 대부분을 유럽에 머물렀다 보니, 처음엔 경이로워 보이던 이들의 문화양식이 점점 더 궁금해지지 않았다.


아무리 큰 자극이어도 그게 일상이 되면 '그냥 좋지 뭐..'가 되듯 말이다.






미지의 세상에 떨어지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한 그것이 제3세계였으면 했다.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시선을 길러주는 책 <팩트풀니스>에 따르면 세상은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같은 이분법이 아니라 개개인의 소득 수준에 따른 4단계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잘 사는 나라, 못 사는 나라로 나누는 건 4단계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편협한 시선이라는 거다.

책 <팩트풀니스> 중에서

1단계 : 맨발로 다니며, 오염된 식수를 길러와야 하는 수준 (10억 인구)

2단계 : 자전거를 타고 멀리 나가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지만 전기가 충분하지 않은 수준 (30억 인구)

3단계 : 오토바이와 전기가 있어 좋은 일자리도 구하고 깨끗한 음식도 먹을 수 있는 수준 (20억 인구)

4단계 : 자동차가 있고 비행기로 여행을 다니며, 깨끗한 물과 잠자리에서 생활하는 수준 (10억 인구)


 특정 나라의 일부 모습만을 보고 개도국이나 선진국으로 나누지 말고 1,2,3단계를 하나로 묶어 '극빈층'이라는 말로 치부하지도 말자고 말하는 책의 저자 '한스 로슬링'은 놀랍게도 스웨덴 사람이다. 유럽에서 4단계 아래의 경험이 어려웠을 그는 인도에서 의학을 유학하고, 아프리카 농촌에서 질병을 연구하며 많은 편견들을 깼다고 전한다.


 개발도상국은 불행하고 선진국이 행복하지는 않듯, 1~4단계 수준에 따른 사람들의 행복 수준도 그와 비례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난 이 삶들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한스 로슬링과 같은 위대한 연구자는 아닐지라도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4단계의 삶은 잠시 떠나보는 것이 앞으로의 내 인생을 위대하게 만드는 데는 더 도움될 것 같았다.



남미? 아프리카?

 여행을 떠날 때만 해도 우리의 목적지는 유럽과 미국 대륙이었다. 여행의 시간이 길어지고, 다양한 세계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남미보다도 더 화끈한 아프리카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여행의 끝이 다가오니 현실적인 문제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부터 해오던 일들과, 부모님에게 이젠 우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의 존재감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내가 서른이 되는 동안, 부모님은 그 곱절의 세월을 향해 빠르게 가고 계셨으니까. 꽤 어린 시절부터 집 바깥에서 지내온 내겐 그들과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리웠고.


 한국에 가까워져야 했다. 우리의 마음도 고국으로 기울고 있었다. 여행의 삶도 행복하지만, 여행 이후의 우리 삶을 가꾸는 일이 더 기대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세상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시간보다는,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한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보다는 '고귀함'이 더 잘 어울리겠다. 그 고귀함에는 우리의 전통과 일상, 가족들이 있다.

파키스탄 전통복을 입은 아저씨들


가자, 파키스탄으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목 초입에 있으나, 남미나 아프리카보다도 더 멀게 느껴지던 파키스탄은 우리에겐 최적의 선택이었다. 1단계까지는 어렵더라도, 2단계에서부터 4단계까지의 삶을 고루 만나볼 수 있는 나라이기도했다. 인도나 파키스탄에 대한 자극적인 콘텐츠들에 많이 노출되었었지만, 그런 류의 자극이 나의 생각으로 쌓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에, 직접 경험하고 스스로 해석하고 싶었다. (물론 아직까지도 인도 여행에 대한 두려움은 큰 상태다. 약 한달 뒤 제대로 파헤쳐 보겠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만난 한 부부에게서 들은 말도 그 선택에 큰 몫을 했다.

"세계여행자의 3대 성지 중 한 곳이 파키스탄에 있대"
세상에 남은 마지막 천국이라 불리는 파키스탄 '훈자'



비행, 여행의 시작

 공항과 비행기,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이곳에 가는 순간 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게이트를 넘어서는 사람들의 모습과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행동, 비행이 끝난 후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곳의 문화를 예측해보기도 한다.


 우린 2차 시도만에 파키스탄행 비행기 탑승에 성공했다. 공항을 떠나 비행기 안으로 들어오니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까무잡잡하고 이목구비 주장이 강한 사람들이 온통이다. 공항만 해도 여전히 서양과 동양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로 뒤섞여 있었는데 말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이 비행기에 올라탄 사람도 목적지가 어떤 곳인지 가늠이 될 정도였다. 관광이 크게 발달되어있지는 않은 파키스탄이라 더더욱 그러했다. 다른 외모를 가진 승객은 우리뿐이었으니. (많은 파키스탄 사람들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사우디를 경유한 우리의 비행기를 탄 대부분이 파키스탄 사람이었다.)


 티켓 좌석을 확인해 보니 통로를 사이에 두고 떨어진 자리였다. 옆에 앉은 파키스탄 사람에게 자리를 바꿔줄 수 있는지 조심스레 양해를 구했고 아주 흔쾌히 바꾸어주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우리가 이 친구 사이를 갈라놓은 것이었다! 대략 아래와 같은 민망한 배치가 완성됐다. ‘아니,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고민하는 내색 한 번 없이 자리를 내어줬지?‘


 그렇게 비행기는 출발했고 소소한 소통이 시작됐다. 대화는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 웃음꽃이 사라지진 않았다. 서로의 여권을 바꾸어 보고, 헤드셋을 건네주며 좋아하는 노래를 들려주기도 했다. 우리의 여행사진과 이 친구의 아들 사진을 맞바꾸어 보기도 했고.


서로에 대한 애정과 관심만이 오갔고 그 사이에 언어는 필요하지 않았다.


 조금의 고민이나 애매한 내색도 없이 기분 좋게 자리를 내어주던 이 사람들이 처음엔 그저 놀라웠다. 우리는 파키스탄에 약 3주를 머물렀고, 이제는 이들을 제대로 바라보는 눈이 생겼다.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천사 같은 사람들이었다.











앞으로

파키스탄 여행 이야기와

다시 유럽

그리고 또 다시 여러 나라들을 넘나들며

흐름에 구애받지 않는 이야기를 쓸 예정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웨덴과 한국 부모님의 다른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