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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Oct 28. 2020

위기에 빠졌을 때 읽는 책 5

인생의 낙이 없어...나만 그래..?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게 된 객원 필자 기명균이다. 평일엔 퍼블리를 위해 남이 쓴 글을 읽고, 주말엔 디에디트를 위해 내가 읽은 것에 대해 쓰고 있다.


이번 달에는 다양한 좋은 것들에 대해 다룬 책들을 골랐다. 뛰어난 관리자는 팀원에게 좋고, 훌륭한 조직문화는 팀에 좋고, SF 신드롬은 더 새로운 이야기에 지친 독자들에게 좋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기쁨은 나에게 좋고, 괜찮다는 거짓말은 남에게만 좋다. 좋아 보이는 책 한 권, 골라잡아 보시기를.


<팀장의 탄생>

“팀을 운영하는 게 어려운 이유는 결국 사람을 관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단 용어 정리부터. 이 책의 한글 제목은 <팀장의 탄생>이지만, 원제는 ‘The Making of a Manager’다. 아마도 한국에서 ‘매니저’는 주로 ‘연예인의 스케줄 소화를 돕는 사람’을 지칭하기 때문에 ‘팀장’으로 번역한 듯하다. 책에서 매니저의 뜻은 ‘팀 혹은 팀원을 관리(manage)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원래 뜻과 가까운 ‘관리자’라는 표현을 사용하겠다.


나는 올해로 직장생활 7년 차지만, 그동안은 항상 내 실무만 신경 쓰면 되는 실무자였다. 그러다 올해 초 팀 내에서 관리자 역할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래 봐야 1~2명 정도를 관리하는 역할이었기에 어쩌면 좀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같이 일할 몇 명 더 생기는 거지 뭐, 별거 있겠어?’ 그런데 실제로 관리자와 실무자의 차이는 컸다.


실무자의 평가 기준은 본인의 성과다. 내 앞가림만 잘하면 된다. 반면 관리자는 본인이 관리하는 실무자(or 팀)의 성과로 평가받는다. 일단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하고, 부족한 점은 함께 개선해 나가야 하고, 뛰어난 점은 더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줘야 하고, 여러 명의 팀원을 관리할 경우 그들 사이의 감정 문제도 체크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해내려면 자기관리 또한 소홀해서는 안 된다.


저자 줄리 주오는 2006년 인턴으로 페이스북에 처음 입사했다. 3년쯤 일하다 매니저 제안을 받았고, 그는 현재 페이스북의 디자인 부문 부사장을 맡고 있다. 책에는 그가 처음 매니저가 될 당시의 고민과 극복 과정들이 담겨 있다. 이제 막 관리자로서 첫걸음을 뗀 나로서는 이 문장 하나만 믿고 가는 수밖에. “매니저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매니저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팀장의 탄생> 줄리 주오 | 더퀘스트 | 1만 6,800원


<SF,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

“사람들은 SF를 좋아한다. 다만 그게 SF라는 사실을 모를 뿐.”

김초엽 작가의 SF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하 우빛속)>은 지난해 여름 출간된 후로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내려올 줄 모른다. 보건교사가 젤리 모양의 악귀(?)를 무찌른다는 내용의 정세랑 작가 작품 <보건교사 안은영(이하 안은영)>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제작되어, 공개되자마자 올해 최고의 화제작이 될 기세다. 말 그대로 SF 좋은 걸 이제야 아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나도 그중 하나다.


그동안 난 ‘현실이 투영된 픽션’을 보고 싶다는 이유로 SF를 멀리해왔다. <우빛속>을 읽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당연한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우주 공간에서, 익숙한 것들이 사라지고 낯선 것들이 생겨난 1,000년 후 세계에서 인간이 마주하게 될 모습들은 2020년 이곳의 현실을 더욱 실감하게 했다.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이 정도로 삶에 대해, 인간에 대해 고민했던 적이 있었나?’ <우빛속>의 신선한 충격은 또 한 명의 국내 SF 작가가 쓴 이 책마저 집어들게 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사람들이 SF 좋은 줄 모를 때부터 오랫동안 좋아해온 저자의 덕질 돌아보기, 2)아직도 SF 좋은 줄 모르는 사람들의 편견 깨기, 3)이제 막 입문하는 예비 독자들을 위한 SF 소백과 사전. <우빛속>과 <안은영>을 보면서 편견이 이미 깨진 상태라 2)는 그리 새롭지 않았으나, 이제 막 이 세계에 발을 들인 나에게 1)과 3)은 한동안 SF 여행의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SF,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 이경희 | 구픽 | 1만 2,000원


<규칙 없음>

“교향곡은 당신이 지향해야 할 목표가 아니다. 그보다는 재즈 밴드를 결성하라.”

똑같은 감독이 연출한 드라마라도, 기존 작품들과 비슷한 무드의 영화라도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란 이름이 붙으면 ‘간지’가 한 겹 더 추가된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전날 밤 10시에 본 공중파 드라마 대신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얘기를 한다. <킹덤> 다음 시즌에는 누가 나온다더라, <보건교사 안은영>은 이런 점이 소설과 다르다더라… 그래서 이젠 드라마를 볼 때 ‘뚜둥~’ 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넷플릭스 로고만 봐도 반갑고, 기대되고, 구매 버튼을 누르게 되고…(?) 그렇게 몇 달 사이 ‘넷플릭스 2부작’을 모두 읽었다.


몇 달 전 디에디트에서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라는 책을 먼저 소개했다. 창립자 마크 랜돌프가 DVD 대여 서비스 ‘넷플릭스’를 처음 시작한 후 리드 헤이스팅스에게 넘기기까지의 이야기다. 마크는 멋진 사람이었지만, 책이 끝날 때까지 우리가 아는 넷플릭스는 등장도 안 했다. 콘텐츠 기업 넷플릭스가 전 세계 기업 가치 1위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하다면, 지금 소개할 책 <규칙 없음>을 읽어야 한다.


리드 헤이스팅스가 직접 밝히는 성공비결은 조직문화다. 그는 넷플릭스를 외부 환경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여 끊임없이 혁신하는 조직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를 위해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1)인재 밀도를 높인다. 역량을 갖춘 인재들을, 아니 역량을 갖춘 인재만을 영입하는 것이다. 이게 전제가 되어야 두 번째 원칙이 의미가 있다. 2)솔직히 말하는 문화를 만들어라. 그래야 애써 모은 인재들을 100% 활용할 수 있다.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소용없으니. 3)통제를 제거하라. 그래야 회사의 방침, 원칙, 룰에 얽매이지 않고 사업을 주도할 수 있다. 솔직하게 소통하며 최선의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인재들이 사업을 주도하는 조직의 미래는? 최소 넷플릭스다.


<규칙 없음> 리드 헤이스팅스, 에린 마이어 | 알에이치코리아 | 2만 5,000원


<괜찮다는 거짓말>

“우리는 ‘부정적인 사고’만큼이나 ‘긍정적인 사고’라는 감옥에도 쉽게 갇힌다.”

우리 회사(퍼블리)에 입사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드라이버 검사’라는 걸 한다.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를 알아보는 간단한 테스트다. 유형은 다섯 가지. 1)타인의 즐거움 추구, 2)열심히 하는 것 추구, 3)서두르는 것 추구, 4)완벽 추구, 5)강한 것 추구. 검사 결과, 나는 4)가 가장 높게 나왔다. ‘내가 완벽주의자?’ 그때만 해도 의아했었는데, 이 책의 부제를 보고 검사 결과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부제는 ‘우울증을 가리는 완벽주의 깨뜨리기’다.

2018년 여름이었다. 이직과 새 회사 적응, 책 출간 등의 일이 몰려 있던 당시에 나는 종종 네이버에서 ‘우울증 증상’을 검색했다. 내가 우울증일 리 없다, 나는 우울증이 아니다, 라는 걸 확인받고 싶었던 것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가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조금만 더 참으면 금방 괜찮아질 거라 믿고 버텼다. 요즘 잘 지내냐, 새 회사는 어떠냐, 힘든 건 없냐는 질문에 ‘괜찮아요’라고 대답하면서.


그때 난 괜찮지 않았다. 베개에 머리만 닿아도 잠들던 사람이 아침까지 잠을 못 잤고, 짜증이 늘었다. 당연히 회사 업무도 엉망이었다. 여러 가지 일을 벌여놓고 무엇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내가 싫어서 또 잠을 못 잤다. 결국 회사에 ‘괜찮지 않음’을 솔직히 얘기하고, 한 달을 쉬며 몰린 일들을 정리했다. 최근 몇 년간 내가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다.


‘드라이버 검사’의 또 다른 목적은 ‘내가 어떨 때 가장 못 견디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즉, 나는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할 때 특히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이 스트레스가 무서운 게,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책에서는 이를 ‘완벽하게 숨겨진 우울’이라 표현한다. ‘괜찮다는 거짓말’에 익숙해져 버린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완벽하게 숨겨진 우울’을 극복하려면, 일단 이 우울을 이해해야 한다.


<괜찮다는 거짓말> 마거릿 로빈슨 러더퍼드 | 북하우스 | 1만 7,000원


<두 번째 산>

“첫 번째 산에서 굴러 떨어지는 일은 어떤 연령대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당신들이 지금 오르고 있는 그 산이 아니다. 이 산을 올라야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조언하는 책들이 불편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저마다 각자의 산을 오르내리는 것이 인생일 텐데, 이런 책의 저자들은 본인의 주장을 설득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후려친다. 반면 <두 번째 산>은 각자의 인생을 깎아내리지 않으면서도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첫 번째 산에 오른 후 내려오고 있는 당신. 당신의 산행은 끝나지 않았다. 여기, 당신의 삶을 고양시킬 두 번째 산이 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대부분 ‘나의 성공 or 행복’을 인생의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아 성공한 사람, 그리고 이 성공을 기반으로 개인적인 행복을 누리는 사람은 첫 번째 산에 오른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 산에 오르려면 타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버려야 한다. 오히려 자신을 버림으로써, 첫 번째 산에서 느낀 행복과는 차원이 다른 기쁨을 느낀다.


여기까지 읽고 따져 묻는 독자들도 있겠다. 타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버리는 일은 예수, 석가모니에게나 가능한 일이라고. 나는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그렇지 않다. 우리는 생각보다 이타적이다. 평범한 사람들이야말로 자식을 위해, 부모를 위해, 가족을 위해, 연인을 위해, 동료를 위해, 약자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버린다. 그리고 거기에서 기쁨을 느낀다. ‘혼자 내려 마시는 커피의 여유로움’, ‘재테크로 벌어들인 돈의 맛’과는 분명 종류가 다르다.


다음 달 결혼을 앞둔 나에겐 이 책이 더욱 특별하다.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두 번째 산’ 중 하나가 결혼이다. 챕터 하나가 통째로 ‘결혼’ 얘기인 것도 그래서다. “결혼은 자기가 안 하면 아내가 하리란 걸 알면서도 굳이 시간을 내 잠자리를 정돈하는 것이다.” 앞으로 내 안의 개인주의가 고개를 들 때마다 성경처럼, 불경처럼, 코란처럼 이 책을 꺼내 읽어야겠다.


<두 번째 산> 데이비드 브룩스 | 부키 | 2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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