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에디트 Nov 26. 2020

밖에서 보면 더 귀여운 것들이 있다

안녕, 밖에서 놀다 온 이야기를 나눌 객원 필자 조서형이다. 첫 글이니까 빠르고 간단하게 이력 썰을 풀어보겠다. 아웃도어 패션 매거진 <고아웃> 코리아에서 일하며 집 밖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이를 집 안의 아빠들에게도 공유하고 싶어 <볼드저널>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일로써 아웃도어를 시작했지만 금세 빠져들었다. 이직하고도 ‘나 같은 게 대체 뭘 할 수 있겠어?’ 싶을 때면 캠핑을 다녀왔다. 하나부터 열까지 빠짐없이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걸 보면, ‘아 난 뭐든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나에게 아웃도어 활동은 ‘집도 밥도 지을 줄 아는 기특한 나’ 체험이다. 요즘엔 누가 캠핑 간다고 하면 군말 없이 따라나선다. 오토, 모토, 바이크 캠핑도 하고 백패킹도 한다.

매주 장비를 쌌다가 풀었다 하는 나에게 캠핑의 묘미는 아이템을 고르는 데 있다. 따뜻하고 편안한 집에서 나와 사서 고생을 할 친구를 찾는 일은 신중해진다. 더워서 죽고 또 추워서 죽겠는 아웃도어 활동에 도움을 줄 기능적인 제품을 추천하는 게 옳은 흐름 같지만, 요새 꽂힌 아이템을 먼저 추천해보려 한다.


아웃도어 활동에는 묘하게 빈티지 아이템이 잘 어울린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색들이 사용되어 그렇다고는 들었는데, 사실 나는 그저 50년 전 히피 같기도, 오리지널 힙스터 같기도 한 사진을 남길 수 있어서 좋다. 사진이 잘 나온다는 것은 눈으로 볼 때도 귀엽다는 것이며 그건 결국 사용하기 좋다는 말과도 같다.


[1]
외부 프레임백
by 클라우프(CLOUFF)

프레임백은 지게와 같은 원리로 어깨부터 등, 골반, 엉덩이까지 짐의 무게를 분산해 편안한 이동을 돕는다. 사진처럼 알루미늄 프레임이 외부로 노출된 형태의 가방은 <와일드>나 <로스트 인 파리> 등 여행을 주제로 한 영화에 지금까지도 종종 등장하곤 하는데, 사실 1860년대부터 이미 사용되던 아이템이다. 외부 프레임백은 잔 스포츠(Jansport)나 켈티(Kelty)와 같은 브랜드에서 만들어지고 있으며, 국내 브랜드 중에서는 클라우프가 유일하게 생산 및 판매를 하고 있다.

‘히치하이커’라는 이름을 가진 이 백팩의 공식 용량은 62L. 외부 프레임에 텐트와 침낭을 비롯한 짐을 끈으로 결속할 수 있기에 실제로는 더 많은 짐을 담을 수 있다. 동계 2박 3일 백패킹에도 거뜬한 정도.

아무리 그래도 백패킹에 최적화한 고급 배낭이 브랜드별로 쏟아져 나오는 오늘날, 이 클래식한 외부 프레임백이 괜찮을까? 조금 무겁고, 조금 커서 유난스러워 보이는데도? 이런 형태의 백팩은 프레임 내장형 가방보다 하중이 높은 곳에 전달되기 때문에 부피가 큰 짐을 더 편하게 운반할 수 있다. 또 등과 짐 사이 공기가 순환이 잘 되어 쾌적하다. 사실 성능을 세세하게 따질 만큼 대단한 아웃도어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기에 내게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이 가방을 메고 자연을 걷는 순간, 사진 속 나는 100년 전 여행자들의 빛바랜 무드를 공유할 수 있거든(아련). 클라우프의 히치하이커는 브랜드 홈페이지에서 33만 5,000원에 살 수 있다. 눈에 띄는 오렌지 컬러 레인 커버 포함 가격이다.


[2]
부티(텐트 슈즈)
by 레이(REI)

1번의 외부 프레임백이 빈티지 아이템을 복각해 만든 새 제품이라면, 텐트에서 신는 이 포동포동한 신발은 진짜 빈티지다. 색이 바랜듯한 빨간색 몸체, 짙은 네이비 바닥, 그리고 경쾌한 노란색 끈의 조합이 아주 사랑스럽다.

우리의 발은 심장에서 가장 멀리 있어 혈액이 늦게 도착한다. 남들보다 다리가 짧은 내게도 이 사실은 마찬가지다. 찬 바람이 불기 무섭게 내 손과 발은 꽁꽁 얼어붙는다. 작년 겨울엔 퇴사하고 집에만 있었는데도 동창(찬 기운에 노출됐을 때 염증이 생기는 질환)에 걸렸다. 밖에서 일하냐고 묻는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어느 정도 그렇습니다’라 애매하게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겨우내 대야에 뜨거운 물을 받아 매일 30분씩 족욕을 해야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내게 이 텐트 슈즈, 부티(Booties)가 왔다. 그는 겨울철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처음엔 밖에서 신을 따뜻한 부츠나 도톰한 양말을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부티를 사기에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차는 사이즈의 내 텐트는 작았다. 걷거나 돌아다닐 일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부티가 굳이 필요할까? 응. 필요하다. 아침에 두 발로 걸을 수 있으려면.

발을 쏙 넣으면 겉에서 본 통통함이 안에서도 느껴진다. 잘 채워진 충전재가 기분 좋게 발을 감싼다. 습기에 강한 합성 충전재 폴라가드(Polaguard fibre)로 만들어져 바깥의 습기는 물론 내부의 습기도 일절 머금지 않는다. 눈 속을 걸어도, 발가락에서 습기가 나와도 괜찮다는 것이다. 어쨌든 텐트 안에서 부티를 신고 자면 아침까지 발이 시려 깰 일이 없다.

부티를 신고 스머프처럼 커진 발로 앉아 있으면 그렇게 마음이 든든하고 기분이 좋다. 요즘엔 집에서도 꼭 신고 있다. 미국 최대 아웃도어 장비 판매점 ‘레이(REI)’의 자체 제작 상품이며 이베이에서 샀다.


[3]
침낭
by 걸 스카우트

단복을 맞춰 입은 언니들이 부러워 엄마를 졸랐던 흑역사를 떠올려 본다. 결국 새 베이지색 단복에 각종 용품까지 산 나는 ‘준비!’를 외치며 걸스카우트에 입단했다. 그 다음은 별로 기억이 없다. 학교 근처를 긴 집게로 쓰레기를 주우며 돌아다니던 기억 정도가 전부다. 어쨌든 이 귀여운 보라색 걸스카우트 침낭은 당근마켓에서 만 원에 샀다.

이 제품은 버클형 원터치 잠금 방식으로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지퍼를 다 열면 이불처럼 덮거나 매트처럼 바닥에 깔 수도 있다. 다 펼치면 길이는 173, 폭은 78cm쯤이다. 겉감은 나일론이고 안감은 압축 솜으로 제작된 보온재다.

봄, 여름, 가을에 활용하기를 권장하는 3계절 침낭이다. 보온력이 떨어진다고 해서 가볍거나 부피가 작지는 않다. 애초에 새 제품도 3만 원 대의 저렴한 가격이라 별 불만은 없다.

자전거로 캠핑을 할 때는 앞 바구니에 끼우고, 백패킹을 할 때는 백팩 아래에 결속한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기 위해 텐트 안에 매트처럼 까는 용도로 겨울에도 들고 다닌다. 가방 안에 깊숙이 넣을 일은 없다. 빈티지한 보라색이 매혹적이라 가지고 다닐 뿐인 녀석이라서 보여주는 역할이 거의 전부다. 나처럼 엄마를 조르는 아이들이 요즘도 있는지, 당근마켓에 새 제품이 종종 나와 있다.


[4]
티 코스터
by 펜들턴(Pendleton)

티 코스터는 습기나 마찰로부터 가구를 보호한다. 애초에 다쳐선 안 될 가구가 없는 아웃도어 활동에선 티 코스터는 어떤 역할을 할까? 당연히 없다. 약간의 미끄럼을 방지하는 것 말고는 그저 보기에 좋을 뿐이다.

현대인의 아웃도어 활동은 생존의 문제가 아닌 취미의 영역이다. 차를 타고 도시 밖으로 떠나는 날이면 그저 소풍처럼 아이템도 느슨해진다. 필수 아이템이 아니더라도 그냥 좋아서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국의 포틀랜드에는 파타고니아, 폴러스터프, 대너와 같은 세계적인 아웃도어 브랜드가 많다. 이 지역의 유서 깊은 패브릭 회사인 펜들턴은 1863년, 울 담요를 팔던 것을 시작으로 무려 6대에 걸쳐 사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특유의 따뜻한 감성과 인디언 문양이 특징으로 인테리어와 패션 모두에서 활약한다.

펜들턴에서도 인기가 많은 제품군은 자연에서 볼 수 있는 빨강, 자주, 갈색 등을 섞어 만든 러그. 겨울에 바닥에 깔거나 벽에 걸어 로맨틱한 분위기를 내는 데 도움을 준다. 캠핑장에서도 물론 분위기를 내는 소품으로 활약한다. 이 제품은 러그의 형태를 그대로 축소해 ‘코스터 러그’라는 별칭을 가졌다. 또한 1920년에 만들어져 가장 오랫동안 인기 있는 대자연과 화살을 표현한 패턴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한다.

결국, 이 코스터는 아웃도어의 성지인 포틀랜드에서 시작한 브랜드, 펜들턴의 가장 인기 있는 패턴과  형태를 축소한 것으로 의미가 없진 않은 것이 아닐까? 아, 물론 집에서도 쓸 수 있다.

기사 제보 및 제휴 문의 / hello@the-edit.co.k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