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저축과 근검절약의 아이콘 에디터B다. 6개월 전, SBS 라디오 <허지웅쇼>를 듣고 있을 때였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드러머 김간지와 허지웅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20세기 록에 관한 수다를 떨었는데, 대화 내용이 인상 깊었다. 각색하자면 대충 이런 내용이다.
“옛날에는 저항하는 메시지를 담아야 진정한 록이라고 생각하는 근본주의자들이 있었어요. 반대로 사랑 노래는 폄하하고.”
“지금 생각하면 웃긴 거죠. 솔직히 말해서 사랑 노래든 무슨 노래든 내가 좋아하면 장땡이잖아요.”
그렇다. 내가 좋아하면 장땡이다. 이 말은 취향을 대할 때 우리가 명심해야 할 중요한 한 마디다. 성적 취향이 옳고 그름의 대상이 아니듯, 취향 역시 그렇다. 취향을 선택할 때는 스스로의 만족감이 유일한 기준이 될 뿐이다. 아이돌 음악이든, 상업 영화든, 무명 화가의 그림이든 누가 뭘 좋아하든 우월을 가릴 일이 아니다. 자기만 좋으면 되 거니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폄하하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사람을 종종 발견한다. 안타깝다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의 ‘올해의 OO’을 뽑아보니 대세와 거리가 먼 것들이 많아 보였다. 실시간 검색 순위에는 절대 올라가지 않을 것들이랄까. 근데 뭐 어때. 내가 좋으니까 그만이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할 수 있다. <허지웅쇼>가 없었다면 지루했던 코시국을 견디기 어려웠을 거라고. 마스크를 끼고 홍제천을 거닐며 <허지웅쇼>를 매일 들었다. <지대넓얕> 종영 후 어떤 오디오 콘텐츠에도 정착하지 못했던 내가 애정을 가진 프로그램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 디에디트 콘텐츠를 네이버 포스트, 브런치 등에 발행하는 조금은 기계적인 업무를 한다. 매일 오전 11시에 방송되는 <허지웅쇼>는 딱 그 순간에 무료함을 달래준다. 과학, 역사, 맛집, 음악 등 폭넓은 주제를 다룬다는 점이 내 취향과 맞고, 직접 쓰는 오프닝 멘트 역시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3월 30일 첫 방을 했고, 최근에는 <SBS 연예대상>에서 라디오 DJ 신인상도 수상했다. 작가 허지웅이 오랫동안 DJ석을 지켜주면 좋겠다.
일본 브랜드 불매 운동이 있기 전에는 유니클로 바지만 입었다. 유니클로 바지는 무난해서 어떤 의상에도 잘 어울렸다. 기장을 무료로 수선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었다. 불매 운동 이후에는 한동안 바지 유목민 생활을 했다. 그 기간 동안 구매와 실패를 반복하며 뜻하지 않게 과소비를 하기도 했다. 다행히 지금은 제로(XERO) 조거 팬츠에 정착했다. 색깔별로 하나씩 구입해서 바꿔가며 입는다. 정확한 제품명은 릴렉스 조거 팬츠. 원단은 처음에는 빳빳하지만 몇 번 입으면 딱 맞게 부드러워진다. 그때부터는 이렇게 튼튼하고 편한 바지가 없다. 바지 밑단에 들어간 고무밴드의 압박력은 꽤 강한 편인데 리뷰를 보니 너무 강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더라. 나는 튼튼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올 한 해는 제로로 한 해를 낫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가격은 3만 5,000원이고, 4,000원을 추가하면 카고 바지처럼 양옆에 주머니를 달 수 있다. 평소 베이직한 패션을 좋아한다면 제로 팬츠를 추천한다.
나도 내가 서른세 살에 저고리를 입고 다닐 줄은 몰랐다. 무릇에서 만든 리버서블 솜저고리는 와디즈에서 펀딩해서 받은 제품이다. 가격은 8만 3,400원으로 유니크한 제품치고는 합리적이다. 사무실에서 입는 편한 동복으로는 보통 플리스를 많이 떠올리는데, 솜저고리가 플리스보다 나은 점은 단 하나. 편하다는 거다. 일단 소매가 넓기 때문에 팔이 답답하지 않다. 옷의 전체적인 맵시는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몸통을 조이지도 않는다. 유일한 단점은 다른 이들의 시선이다. 타인의 관심이 부담스럽다면 이 옷을 입을 수는 없을 거다. 나는 유튜브에 출연할 때마다 이 저고리를 입었는데 매번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질문을 받는다. 아쉽게도 정식 판매는 끝난 듯하고 일부 사이즈의 재고만 조금 남았다는 말을 들었다. 혹시 관심 있으면 인스타그램에 문의를 하자.
미슐랭 가이드를 그리 신뢰하지는 않지만, 별점의 의미는 좋아한다. 별 하나는 요리가 훌륭한 식당, 별 두 개는 요리가 훌륭하여 멀리 찾아갈 만한 식당, 별 세 개는 요리를 맛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도 아깝지 않은 식당. 내게 을지로 ‘스탠딩바 전기’는 별 세 개짜리 식당이다. 마라도에 있다면 이곳에 가기 위해 기꺼이 배를 탈 용의가 있다. 일식과 이탈리아 음식이 주 메뉴이며 세비체 같은 남미 음식도 맛볼 수 있다. 나는 을지로에서 친구를 만나면 꼭 전기에 데려가는데 매번 친구들의 찬사를 듣는다. 일단 선술집 분위기에 한번 취하고, 음식을 먹고 또 한 번 취한다. 특히 어란, 수란, 명란을 넣은 비빔면 ‘삼란소면’은 꼭 먹어보길 바란다. “헐..! 다 아는 맛인데 섞어서 먹으니까 처음 먹어보는 맛이에요!” 먹자마자 친구들은 땡그래진 눈으로 기립박수를 친다(스탠딩바에서 박수치면 자동 기립박수). 안심하고 다녀올 날이 다시 오면 좋겠다.
연희동의 랜드마크 ‘사러가 마트’ 근처 3분 거리에 있는 베이글 가게다. 예전에는 연희동 끝자락에 있었는데 지금은 조금 더 접근성이 좋은 곳으로 이사했다. 그 덕분에 갈 때마다 대기 줄이 길게 이어져 있다. 맛은 전과 다름없이 맛있다. 뉴욕에서 나고 자란 주인장이 뉴욕 정통 베이글을 선보이는 가게다. 사실 뉴욕 스타일 베이글이 뭔지 몰랐는데, 쫀득한 스타일을 뉴욕 스타일이라고 한다더라. 베이글 종류는 플레인, 어니언, 통밀, 호밀 등이 있고 크림치즈는 블루베리, 플레인, 메이플 월넛 그리고 스캘리온이 있다. 스캘리온은 쪽파가 들어가는 크림치즈라고 설명해줬는데, 알싸한 맛이 나서 굉장히 독특하다. 웬만하면 괜찮은 크림치즈 세 개 정도는 추천해주고 싶지만, 갈 때마다 새로운 맛에 도전해야지 다짐하다가 결국 쪽파를 먹어서 다른 맛은 잘 모르겠다. 그냥 쪽파를 먹자.
가장 훌륭한 영화는 청룡영화제에서 뽑을 테니, 나는 저평가 받은 영화를 뽑겠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하 지푸라기)은 불쌍하게도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는 시점과 겹쳐 흥행에 실패한 웰메이드 범죄 스릴러 영화다. 차라리 여름쯤에 개봉했다면 입소문을 타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만큼은 흥행했을 텐데 아쉽다. <지푸라기>는 관객 수 62만 명,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435만 명을 동원했다. 영화는 세 중심인물이 돈 가방을 손에 넣고 잃게 되는 과정을 그리는데, 세 인물의 시간대는 각각 다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1시- 5시- 9시- 2시- 6시- 10시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는 말이다. 이야기 구조가 복잡한데 김용훈 감독은 이를 설득력 있게 끌고 가서 1차 놀랐고, 그가 신인 감독이라서 2차 놀랐다. 엉켜버린 이어폰 줄을 풀려다가 더 꼬여버리는 인간 군상을 잘 연출했다. 게다가 전도연, 윤여정, 정우성, 진경 등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를 한 영화에서 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 포인트. 올해 봤던 영화 중에는 <지푸라기>뿐만 아니라 외에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소리도 없이>도 좋았다. 하지만 코로나 초기에 개봉한 탓에 이 영화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사람이 있더라. 그래서 굳이 소개했다. 혹시 나의 추천이 믿음직하지 않다면,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100%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참고하길 바란다. 로튼토마토가 전부는 아니지만.
적당히 물 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몰랐다. 능숙한 친구를 만났다면 평화롭게 광합성 하며 배부르게 살았을 텐데… 한동안 식물을 키워보자는 생각을 하지 않다가 스밈 화분을 보고 마지막으로 딱 한 번 더 시도를 했다. 스밈 화분은 겉화분과 속화분이 따로 있는 화분인데, 겉화분에 물을 채워두면 속화분을 통해 아주 천천히 물이 공급되는 시스템이다. 스밈 화분을 만드는 트리플래닛에 따르면 고객들의 반려식물 98%가 생존했다고 한다. 한 달에 한 번만 물을 주면 되니 몇 주 동안 출장을 가도 걱정 없다. 화분과 식물을 패키지로 구입할 수 있고, 종류는 올리브 나무, 율마, 동백나무 등 다양하다. 나 빼고 다 고양이와 강아지가 있는 세상이다. 세상의 중심에서 나는 율마를 키운다고 당당히 외치고 싶다.
‘이건 못할 짓이다…’ 매일 아침 이런 생각을 한다. 정신이 몽롱한 아침에 차갑고 날카로운 칼을 얼굴에 들이대다니. 하지만 정신을 차려야 한다. 방심하다간 살이 베일 테니까. 2020년에는 질레트 히티드 레이저 덕분에 삶의 질이 조금 상승했다. 질레트 히티드 레이저는 열이 나는 신기한 면도기다. 면도날 밑에 온열 바가 있는데 덕분에 면도를 할 때 마치 뜨거운 물에 데운 것처럼 뜨끈함을 느낄 수 있다. 가격은 20만 원대 중반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격은 아니지만 충분히 값어치를 하는 제품이다. 리뷰하면서 꽤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아버지에게도 선물하고 싶은 정도였다. 비록 아버지는 전기면도기만 쓴다며 거절하셨지만(우리 부모님은 내가 추천하는 대부분의 물건을 싫어하신다).
오랫동안 크롬 브라우저만 쓰다가 최근에는 웨일 브라우저로 갈아탔다. 습관이 되어버린 소프트웨어를 바꾼다는 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일에는 드라마틱한 기능들이 있기 때문에 행동에 옮길 수 있었다. 일단 브라우저 전체에 다크모드를 지원하기 때문에 글을 읽거나 글을 쓸 때 눈이 편하다(지금도 웨일 브라우저에서 글을 쓰는 중이다). 두 번째는 탭 관련 기능이다. 나는 창을 많이 열어놓고 일하는 스타일인데 가끔(아니 자주) 어느 창에서 소리가 나오는지 못 찾을 때가 있었다. 웨일에서는 현재 소리 재생 중인 창이 표시가 되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제스처, 모바일 모드 등 크롬과 비교되는 편리한 점이 많은데 혹시 안 읽어봤다면 리뷰를 읽어보면 좋겠다.
나는 한 노래에 꽂히면 그것만 하루 종일 듣는다. 반복재생을 해놓고 지겨워질 때까지 듣는 스타일이다. 올해만 해도 조광일의 ‘곡예사’, 스테이씨의 ‘So Bad’, 오반의 ‘행복’, 애스파의 ‘블랙맘바’를 며칠 동안 계속 들었다. 그중 올해의 반복재생을 꼽으라면 단연코 ‘VVS’다. 이 곡은 <쇼미더머니9> 예선곡으로 래퍼 머쉬베놈, 미란이가 함께 부른 곡이다. 머쉬베놈의 랩이나 기획력도 훌륭했지만 내가 가장 좋았던 던 미란이의 파트였다. 랩도 잘했지만 탈락 위기에서 무대까지 올라온 굳세어라 미란이의 성장드라마가 더 마음에 끌렸다. 엠넷이 좋아하는 인간극장 스토리 + 실력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유튜브 조회수는 1,000만을 돌파했다. 미란이가 지금보다 더 유명해져서 노래를 계속 만들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