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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딴 Dec 10. 2023

겨울 걸음은 나릿나릿 평평하게

서울 매봉산에서 문화비축기지까지 



"지금을 어느 계절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늘은 파랗고, 옷은 두껍고, 밤은 넓고, 나무는 초록부터 노랑까지... 

사전이 제대로 이름 붙이지 않아서 가을과 겨울 사이라고만 하는 때가 되면

이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다가온다.    

시린 것은 손발만이 아니고, 넘길 달력이 없어지고, 불쑥 누군가가 떠오르기도 한다. 

당장 새롭거나 놀라운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미뤄 두었던 것 중 만만한 것 몇 가지를 꺼내어 본다.

그래서 걷고 쓰기로 했다. (걷긴 걸었는데 쓰기로 이어지지 않았다;;) 

걷기 좋은 날은 지났지만 그 걸음의 유통기한이 그리 짧지만은 않아 보여서

(더불어 이번에 안 쓰면 계속 안 쓸 거 같아서)

성긴 그때의 걸음을 소심하게 전한다. 앞으로도...               




각각의 계절은 그 계절다워야 한다고 말하곤 하는데, 

막상 12월이 존재감을 드러내니 괜히 모질게 느껴진다.  

영하의 날씨가 지속되면서 긴 겨울의 추위를 어떻게 버틸까 싶고 겨울잠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겨울에도 운동을 하고 누군가를 만나고 맑은 공기도 쐬야 하기에... 

이런 곳 하나 알아 두면 괜찮겠다. 


_hint

산이다. 

대중교통 이용이 편하고 유료 주차 가능하다.

퇴근 후에 가도 괜찮고, 한밤중에도 걸을 수 있다.   

등산화도 스틱도 필요 없고 평상복 차림으로 가도 된다.  

나어린 아이도 다리가 불편한 어르신도 몸이 무거운 멍멍이도 동행 가능하다.        


아무튼 지도에 나오는 산 



서울 상암동 '매봉산'은, 

서울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3번 출구로 나오면 닿을 수 있다. 

월드컵경기장에 가 본 사람은 혹시 하늘공원 말하는 거냐고, 근처에 산이 어디에 있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잘 보이지 않지만 산이 있다. 역을 등지고 경기장을 왼편에 두고 앞으로 가면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매봉산 어떻게 얼마나 걸으면 좋을지 대략 가늠하고 싶다면 '매봉산자락길2'를 확인해 보면 되고, 

그 길이 아쉽게 느껴진다면 매봉산을 안고 있는 '마포걷고싶은길10코스'를 걸어도 괜찮겠다.  




나무 올려다보며 걷기, 무장애숲길이라 가능한  


93.9m 

매봉산의 높이다. 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우리나라에서 제일 낮은 산이 해발 2.9m인 울진의 굴미봉이라니 매봉산은 어엿한 산이라 할 수 있겠다. 

모르고 걸으면 살짝 높이가 있는 공원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길이 완만하다.

촘촘한 나무숲 사이로 데크가 꽤 길게 이어져 있어서 숨이 가쁠 일이 없다.

평평하고 넓은 데크 덕분에 앞사람과 부딪칠 일도 바닥을 살피며 걸을 필요도 없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게 데크가 펼쳐져 있으니 이름 그대로 '무장애길'이다.  




정상은 비정상, 걸음을 부르는 길


걸어도 걸어도 길의 끝이 안 보이고, 올라도 올라도 정상이 저만치 멀어 보이는 산도 있지만, 

매봉산은 사람들을 배려하는 건지 몸을 낮추는 건지 정상을 쉬이 내어 주었다. 

천천히 걸었는데도, 걷기 시작한 지 40분 남짓만에 정상으로 보이는 곳에 닿았다. 

그곳이 정상인지 모르겠는 게, 여느 산처럼 비석이나 표지판, 전망대 같은 게 없어서이다.      

경사진 길 옆으로 자그마한 벤치가 두 개 놓여 있고, 조금 아래에 운동 기구들이 펼쳐져 있는 게 다였다.

열심히 기구에 집중하고 계신 아저씨 옆으로, 맨발의 아주머니가 느릿느릿 지나갔다.  

땀도 콧물도 없이 여유로이 산 정상에 올랐지만, 등산한 사람의 기분을 훔치듯 누렸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등산인의 마음은 포기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우선 빠른 걸음으로는 30분도 안 되서 정상에 닿을 수 있을 정도니 등산 코스로 무척 아쉬울 수 있겠다.

그리고 매봉산 몇몇 전망대 풍경... 보이는 건 건물과 도로고, 산보다 높은 아파트도 눈에 띈다;;      

나는 시작한 대로 느리게 걷는 산책자를 이어가기로 했다.

산책자에게 매봉산은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과분할 정도다.  

걷기 좋은 길은 모자람 없이 건네 주고, 나무들 그득하고 붐비지 않고 소음에도 비껴나 있다. 

올라오는 길이 친절했던 것만큼 내려가는 길도 꽤나 상냥하다. 

그저 옆에 함께 걷는 사람에게 집중하든지, 걸으며 떠오르는 것들에 온전히 빠지든지.  




트인 눈 아래로 동그란 탱크가 하나, 둘, 셋...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곳에서 5분 정도 걷다 보면 뜨인 곳이 펼쳐진다. 다가가서 보면...

월드컵경기장과 하늘공원이 보이고, 그 사이로 빛나는 것도 보인다. 바로 햇볕에 반사된 강물의 반짝임.

한강은 언제 봐도 좋다. 흐름이 어렴풋하게 보일 정도로, 오늘 날씨는 맑음!

그리고 시선을 가까운 아래쪽으로 향해 보면 동그란 대형 통이 몇 개 보인다. 

바로 문화비축기지다. 얼핏 세어 보니 네 개인데, 총 6개의 탱크가 있다고 한다. 

석유를 보관하던 탱크를 문화탱크로 바꿨단다. 기존 5개의 탱크는 열린 문화 공간으로, 해체된 탱크의 철판을 활용해 만든 곳인 T6는 시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이 되었단다.    


자세한 내용은 문화비축기지를 소개하는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참고하면 될 듯하다. 

특히 블로그에서는 시기별로 기획하고 운영하는 문화 프로그램에 대한 소식들을 접할 수 있다. 

'서울의 공원' 홈페이지 https://parks.seoul.go.kr/template/sub/culturetank.do

'문화비축기지' 공식 블로그 https://blog.naver.com/culturetank

'문화비축기지 컬처 매거진 <비축생활> 

https://m.post.naver.com/my.nhn?memberNo=38948769


걸음을 멈추지 않고 이어진 길을 따라 가면 문화비축기지에 닿을 수 있다.그렇게 걸어온 길을 선으로 잇고 펼쳐서 보면 다음과 같다. 

(출처: 네이버 지도)



문화는 덤인가? 채울 게 많은 문화비축기지  

걷고 난 뒤에는 노곤함이 따르거나 달콤함이 당기기 마련이다.

그런 나의 내외적 요구들을 채워줄 수 있는 곳이 문화비축기지였다. 

문화를 잘 몰라도 관심 없어도 상관없다. 가 보면 누구나 만족해 할 만한 곳이다. 

석유 저장 탱크의 독특한 형태를 잘 살펴서 각각의 공간을 특색 있게 재구성했는데, 

T1부터 T6까지 공간들이 저마다 다른 모습이라 신선하고 흥미롭게 즐길 수 있다. 



T1부터 T5까지는 '문화비축기지'라는 공간의 이름에 걸맞게 조형적으로 색다른 매력을 느끼게 하고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관람하거나 체험할 수 있게 구성해 놓았다. 색다른 느낌의 문화적 경험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반해 T6은 책을 비치해 두고 편하게 읽을 수 있게 한 도서관과 같은 시설과 여유롭게 차나 커피를 마시면서 쉴 수 있는 넓은 카페가 있다. 원형 탱크를 모양을 살려서 천장이 높기에 실내에서도 답답하지 않고, 공간이 넓은 편이라 사람이 많다 하더라도 좁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너른 공간에 펼쳐 놓은 '기지' 같은 곳이라 꼭 실내가 아니더라도 바깥의 트여 있는 곳에 앉아서 맘껏 여유를 누릴 수 있다. 운동장보다 넓은 공간에서는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었고, 밖에 나와서 한껏 신난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도 꾸준히 만날 수 있었다. 물론 데이트 하는 연인의 모습도. 출출하다면 아래쪽 기지 입구 길가의 매점에서 컵라면을 먹을 수도 있다. 길 건너에는 월드컵경기장이 있으니, 걷기가 귀찮다면 이곳으로 바로 와서 쉬어도 괜찮겠다. 도시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참 다행이다 싶다. 


이 겨울, 추위에 잦아드는 걸음이 신경 쓰인다면 부담없이 걷을 수 있는 매봉산을 걷고, 쌀쌀함으로 허해진 마음을 문화로 비축할 수 있는 상암동으로 가보길 권한다.  다음 영상을 본다면 안 가기가 더 어려울 테니 갈 준비 해 두어도 좋다. 


https://www.youtube.com/watch?v=bOmKd_MVxq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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