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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혼 Oct 24. 2021

시간의 굴레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나는 거의 시간을 이기지 못하며 살았다. 시간에 맞춰 계획을 세워놓고, 늘 한결같이 어느 정도 어기는 탓도 있고 애초에 시간 내에 이룰 수 없지만 욕심을 부리는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르게 살 생각을 못하고 늘 스스로 재촉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아들이 태어나면서 모든 시간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조리원에서 돌아온 날부터 아들과 우리 부부 관계는 일방통행으로 변했고 아들의 시간에 속절없이 편입되었다. 아들은 중력을 왜곡시키는 어떤 존재처럼 다가오는 모든 이의 시간을 조금씩 빼앗았다. 우리 부부는 일하는 시간 외에 모든 시간을 아들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아기는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생체 리듬대로 살아간다. 몇 가지 일만 반복하지만 그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2시간마다 수유한다던가 3시간마다 낮잠을 잔다던가 하는 일정은 대체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뜻이고 예정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나 또한 아들의 시간에 맞춰 살아야 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대로 육아 도중에 짬이 나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계획을 세웠지만 소용이 없었다.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고 아들이 잔다고 해서 다른 일을 하다 보면 피로가 누적되어 육아가 더 힘들어졌다. 시간 계획을 지켜서 뿌듯해하거나 정해진 시간표를 지켜서 혜택을 누리던 예전의 삶으로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육아의 터널을 멍하게 걸어가는데,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시계 없이 참 잘 살았다. 시간에 쫓기거나 얽매일 필요가 없었다. 종합 속셈 학원 하나를 마치고 나면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살았다. 별다른 약속 없이 아이들은 놀이터에 모였고, 실컷 놀다가 해가 질 때쯤 하늘을 바라보고 집에 가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돌아갔다.


 어린 시절은 그렇게 행복한 과거로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지만 내 삶이 아주 많이 달라진 것을 느꼈다. 어린 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내가 더 똑똑해지고 힘이 세졌지만 정신과 신체 모두 성한 곳이 없다.


 분명히 나는 앞으로 나아가며 나 자신을 이기고, 다른 사람과 경쟁에서 이기기도 했지만 정말로 승리한 것인지 불분명했다.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면 잘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갑자기 멍해졌다. 어린 시절의 나는 어른이 된 나에게 무엇이라고 할까. 적어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맞다. 난 행복하지 않았다. 이렇게 괴로워하면서 살 수만은 없었다. 삶의 방식을 바꿔야 했다.


 우선 바뀐 내 삶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들이 없었던 삶은 끝이 났고 이제는 한 가족의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가장 중요한 일은 일과 육아이며 그 외에 혼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새로운 시간 사용법을 익혀야 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고 남는 여유 시간은 주어지는 만큼 정직하게 사용하고,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고 차근차근 하루를 보내리라고 다짐했다. 하루아침에 사람의 사고방식이, 생활습관이 바뀌기 어렵겠지만 큰 결심과 실천이 필요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면 내가 변해야 했다.

 


 한 달쯤 지났다. 여전히 나는 시간을 앞서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날이 많지만 예전보다 상태가 좋아졌다. 우선 잠을 일찍 자는 날이 늘었다. 잠 못 이루는 여느 직장인들처럼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을 때가 많았지만 이제는 그냥 잠들게 되었다. 일과 육아를 하고 나면 내가 살아야 할 하루가 거의 다 끝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되니 잠에 쉽게 들 수 있었다.


 그리고 잠을 푹 자게 되니 생활에 활력이 생겼다. 일과 육아를 할 때 그 순간에 집중하게 되었다. 아들을 밤잠에 들게 눕히고 나면 자정이 얼마 남지 않지만 예전보다 쓸데없는 걱정이 사라졌고 시간이 나면 나는 만큼만  나를 위해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삶을 살게 되더라도 가족을 더 생각하는 것이 현재로선 올바른 선택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리고 내가 제자리에 머물더라도 나의 시간을 제물 삼아 살아가는 아내와 자라나는 아들이 있기에 발전이 없는 삶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또 다른 삶의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나아가고 되돌릴 수 없다. 나는 예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고 예전과 같은 행복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삶을 살 수 있고 다른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나를 대신하여 다른 누군가가 행복할 수도 있다. 아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다면, 내 시간을 모조리 빼앗긴다 해도 이제는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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