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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혼 Oct 24. 2021

대디 비긴즈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히어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좀 더 젊을 때는 적당히 즐겼지만 어느 순간 흥미를 잃게 되었다. 뭘 봐도 쉽게 질리는 내 성향 탓이 크지만 한편으론 어른으로 살아가면서 영웅의 의미가 많이 변질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경제적 독립과 함께 찾아온 험난한 어른의 세계는, 영화나 만화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영화 속 히어로들처럼 물리적인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고 히어로 무비에 대한 관심은 사라져 갔다. 그리고 내 시선은 다큐멘터리 영상물로 옮겨갔다.


 어느 순간부터 다큐에 나오는 사람들의 삶이 흥미진진해졌다.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그들은 만날 수 없다는 점에서 히어로 무비처럼 비현실적이었다. 그들이 헤쳐나가는 삶도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었고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묵묵히 걸어가는 그들의 삶은 내 입장에서 충분히 감동적이었고 감탄스러웠다. 다큐 속 영웅들은 세상의 부조리한 면을 파헤치고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기도 했고 사막 가운데서 가족을 먹여 살리는 한 집의 가장이기도 했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아주 중요한 사람들이지만 내 삶과 동떨어져 있게 되면 관심이 덜 가게 된다. 결국 나를 뒤흔드는 영웅들은 내 삶과 교감되는 부분이 많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고, 요즘은 처자식을 부지런히 먹여 살리는 남성들이 나오는 다큐를 자주 보면서 영웅의 이미지를 상상해보곤 한다.


 아마 아버지 또는 남편계의 영웅이라면 자상하고, 다정하고 경제적 능력이 뛰어나며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일 것이고 CF에서 흔히 나오는 훤칠하고 듬직한 이미지의 아버지 모델과 모습이 비슷할 것이다. 현실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이상적인 존재다.


 옆에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 해도 우리는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영화에서는 친절하게 주인공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려 주지만 현실에서는 타인의 일부만 알 수 있을 뿐 우리의 시선 밖에 있는 아버지들의 실체를 알기 어렵다.


 가족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TV에서 "내가 밖에서 얼마나 고생하는 줄 아냐?". "그러면 나는 집에서 놀고만 있는 줄 알아?"라는 단골 멘트가 끊이질 않는 이유다. 어쩌면 엄청난 일을 하고 돌아온 아버지에게 가족이 투덜대는 것은 지구를 구한 영웅들이 겪는 고충을 떠올리면 납득이 된다. 지구를 몇 번이나 구해줘도 일부 세상 사람들은 영웅에 대해 비난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하물며 한 가정을 지키는 영웅에 불과한 아버지들은 지구를 지켜낸 영웅보다 하찮은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리고 한 가정을 지켜낼 힘 정도만 가졌기 때문에 영화의 영웅들처럼 멋있지도 않고 신비하지도 않고 다른 집의 아버지와 비교당하기 쉽다.


 하지만 영웅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들은 가족을 위해 임무를 멈추지 않는다. 어린 자녀를 번쩍 들어 올리거나 뚝딱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등, 각자의 장기를 살려 경이로운 감탄을 자아내는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중요한 임무를 위해 하루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평생을 바쳐 가족을 지켜나간다.


 영웅은 세상을 더 잘 살게 만들지 않는다. 빈부격차를 해결해주거나 환경보호를 하면서 동시에 경제를 성장시켜주지 않는다. 그저 지구를 지켜 나간다. 아버지도 그렇다. 가족을 더 잘 살게,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가족이 만족하는 선에서 더 나빠지지 않도록 가족을 지켜나간다. 그것만으로도 영웅처럼 힘들고 희생이 따른다.


 세상은 영화처럼 악의 무리가 끊이질 않는다. 점점 더 많이 가지려고 한 적도 없는데 처절하게 투쟁하지 않으면 가족이 그나마 이룬 것을 지켜나가는 것도 어렵다. 즐겁고 기쁘게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괴롭고 힘든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영웅이 하는 일인 것을 안다면 길을 지나가는 두 아이의 아버지를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없다. 각자의 가정을 지켜나가는 아버지들의 삶을 상상해본다면 그들의 거북목, 뱃살, 퀭한 눈에 가려진 그들의 업적은 어떤 훈장으로도 치하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이토록 실감 나는 영웅의 서사는 어떤 영화제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아버지들의 다큐멘터리는 알아주는 이가 잘 없다. 그들의 일대기는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되지만 제대로 봐주는 이 없이 외롭게 상영된다.


 다른 이가 상영관을 찾아 칭찬 주어도 가족이 참석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설사 가족 모두는 알아주지 못하더라도 자식을 낳아본 아들이라면 아버지의 무게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가족을 지켜준 노쇠한 고집쟁이 영감이 영웅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당신의 사명을 받아들이고 '아버지'의 가면을 뒤집어쓸 때에 아버지가 된 아들은 진정한 아버지로 각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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