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 오늘도 출근합니다.
히어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적엔 나름 즐겼지만, 현실에 찌든 즈금은 그 속의 영웅들이 점점 낯설게 느껴진다. 그리고 어쩌면 많은 아버지들이 그러하듯, 내 시선은 자연스레 다큐멘터리로 옮겨갔다.
어느 순간부터 다큐에 나오는 사람들의 삶이 더 흥미로워졌다.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그들은, 만날 수 없다는 점에서 히어로 무비처럼 비현실적이었다. 상상조차 어려운 삶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은, 오히려 경외감마저 든다.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인물들도 물론 대단하지만, 결국 나를 뒤흔드는 영웅은 내 삶과 교감되는 사람이다. 요즘은 부지런히 가족을 먹여 살리는 남성들이 나오는 다큐를 자주 보며, 아버지라는 영웅의 이미지를 그려보곤 한다.
아버지 또는 남편계의 히어로라면 아마도, 자상하고 다정하며 경제적 능력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모습일 것이다. 흔히 광고에서 보던 그런 듬직한 이미지. 현실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이상적인 존재다.
하지만 설령 그런 사람이 우리 옆에 있더라도, 우리는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영화 속 주인공은 친절하게 일거수일투족을 알려 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타인의 일부만 볼 수 있을 뿐. 그래서 아버지들의 실체는 제대로 알기 어렵다. 야근에 야근을 거듭한 아버지에게 가족이 투덜대는 모습은 지구를 구하고도 욕을 먹는 히어로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영웅들처럼 아버지들도 임무를 멈추지 않는다. 어린 자녀를 번쩍 들어 올리거나, 뚝딱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각자의 장기를 살려 감탄을 자아내는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족을 지키는 일에 하루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평생을 바친다.
세상은 영화처럼 악의 무리로 가득하다. 많이 가지려 한 것도 아닌데, 그나마 가진 걸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싸워야 한다.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보다, 괴롭고 힘든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영웅이 하는 일이다.
하지만 아버지들의 다큐멘터리는 알아주는 이가 없다. 그들의 일대기는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되지만, 제대로 봐주는 이 없이 외롭게 상영된다. 길에서 흔히 마주치는 아이들의 아버지를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없다. 그들이 겪어온 투쟁의 날들을 생각해본다면 거북목, 뱃살, 퀭한 눈이 어떤 훈장으로도 치하할 수 없는 삶의 기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가족을 지켜준 노쇠한 고집쟁이 영감이 우리집의 영웅이었음을 그제야 깨닫는다. 그리고 아버지가 되었다면 당신도 사명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는 히어로다.
(이상 거울을 보며 거북목, 뱃살, 다크서클에 놀란 아빠의 상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