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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혼 Sep 03. 2024

마카오에 도착하는 법

홍콩-마카오 아니고 홍콩-----------------마카오

 마카오는 이름만 들어봤다. 홍콩 다음에 오는 단어. 딱 그정도였다.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지인이 여행계를 주도하여 마카오를 여행하자고 했다. 홍콩-마카오가 아닌 마카오만 여행하기로 했다. 지인이 홍콩은 자주 가고 마카오는 짧게만 가서 마카오를 제대로 가보자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소와 다르게 여행을 시작했다. 가고 싶은 여행지가 생기면 이것저것 찾아보고, 점점 커지는 마음에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는 순으로 여행이 시작되는데 이번엔 달랐다. 남들이 다 준비해주는 밥상에 숟가락만 들기로 했다.

 준비해준 대로 즐기고 오면 되겠다 싶었지만 사람마다 준비 정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또 새삼 느꼈다. 알고보니 비행기 티켓에 숙소 예약이 끝이었다. 당장에 공항에서 숙소까지 어떻게 가야할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답답한 놈이 우물을 팠다.

 홍콩공항 도착이 싸다고 해서 홍콩가는 비행기를 구매했는데 출발 하루 전날, 홍콩공항에서 마카오 가는 법을 검색하고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홍콩과 마카오는 입국을 다르게 하고 있었으며 홍콩-마카오라고 부르는 수많은 여행사 문구와 달리 두 도시는 꽤 멀리 떨어져 있었고 이동하고 허가 받는 과정이 복잡했다.

 

홍콩공항에 있는 마카오 직행 버스 대기 공간


 여행 기간도 짧고 여행 일정이 잡혀 있어서 이동 시 실수를 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홍콩공항과 마카오를 오고가는 방법을 반복하여 들여다보고 여러 정보를 모으며 신경 썼다. 하지만 현실에 부딪히니 역시나였다. 블로그 글에서는 사진 몇 장에 글 몇 줄이라서 금방 공항에서 마카오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홍콩 공항에서 마카오로 바로 가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게 문제였다.

 두어 번 지나치고 나서야 환승 비행기 창구 뒤에 붙어 있는 자그마한 버스 매표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겨우 예약한 표를 받고 지하로 내려가 경전철을 타고, 꽤 걸어서 버스 대기실에 도착했다. 직접 겪어 보기 전엔 공항 셔틀 버스 정도로 생각했는데 비행기에서 버스로 위탁수화물도 옮기는터라 대기시간도 꽤 길어서 사실상 국내선 비행기를 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홍콩 마카오를 잇는 세계에서 가장 긴 해상 대교

 

우중충한 우기의 홍콩--------마카오 날씨


 버스에 올라타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구름 가득한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버스는 바다를 가로질러서 보이지 않는 끝까지 이어진 다리를 지나갔다. 분명 출구는 있겠지만 괜히 불길했다. 바다 가운데에 이르자 해무가 가득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빗줄기가 버스를 세차게 때렸다. 그러다가 거대한 구조물을 마주쳤고 버스는 심해로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해저터널 속으로 내달렸다.

  터널을 나와서도 다리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1시간 가량 달리다 보니 불안했던 풍경도 서서히 지루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살짝 졸기까지 했다. 긴장이 풀렸는지 갑자기 될대로 되라는 생각이 서서히 들었다. 옆 자리 할아버지가 1시간 내내 떠들어서인지 중국어도 익숙하게 들렸다. 지나고 나니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 및 터널을 건너는 것도 재밌는 경험인데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마카오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 버스에서 내려서 먼저 내린 사람들을 따라갔다. 드물게 영어 표지판이 있었지만 따져볼 생각도 않고 대충 맞겠다 싶으면 앞에 보이는 사람들 뒤를 쫓아갔다. 어차피 입국 수속 후 버스 환승이니 다른 사람들도 선택지가 거의 같았다.


해무가 자욱한 가운데 강주아오 대교 위에서


 마카오 입국 수속은 역시 느렸다. 한국 말고는 빠르게 해주는 곳이 없다. 수많은 창구는 다 닫아두고 달랑 두 군데서 외국인을 받아준다. 주토피아의 나무늘보 2마리가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니 지겨울만도 하지만 기다리는 입장도 마찬가지다.

 힘든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마지막 버스만 타면 되는 순간이 왔다. 터미널 밖으로 나가니 수많은 버스가 대기 중이고 영어와 숫자가 조합된 표지판이 제각각 허공을 찌르며 사방에 붙어 있었다. 타야 할 버스를 찾기가 힘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호텔 무료 버스가 모여 있는 쪽이 눈에 띄어서 혹시나 탈 만한 버스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가보았다. 멀리 있는 버스부터 살펴보다가 바로 옆의 버스를 뒤늦게 보았더니 익숙한 주소가 적혀 있었다.


 [ponte 16]


 내가 머물 숙소 근처에 있는 호텔에서 제공하는 무료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심드렁한 얼굴의 호텔 직원이 호텔 팻말을 들고 서 있었고 줄 서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을 보니 출발하기까지 시간이 좀 있을 것 같았다. 재빨리 검색을 하니 주소는 마카오에 하나 밖에 없는 곳이 확실했다.

 잠깐 살피는 사이에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들었다. 덩달아 서둘렀다. 무료라고 들었지만 괜히 찔려서 눈치가 보였지만 이제 앞뒤 볼 것 없었다. 빨리 이동을 끝내고 싶었다. (마카오 공식 관광청에 따르면 무료 호텔 버스는 진짜 무료에 아무나 탑승 가능하다는 사실. 다음날이 되서야 알았다.)

 그렇게 마지막 여정으로 호텔 무료 버스에 오르자 비로소 마카오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마카오에 대해 좀 찾아보고 거리도 둘러봤다. 마카오 반도는 대만과 흡사했다. 따뜻하고 습한 기후 때문에 건물 외부가 후줄근했다. 그리고 사람들도 더위에 익숙한 듯 30도 정도 되는 날씨에도 긴바지에 긴 팔을 입은 사람도 있었다.

 다 끝났다 싶었는데 아니었다. 구 시가지의 이리저리 꼬인 도로를 정체하는 버스는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멀미는 안 하는 체질이지만 얼른 내리고 싶었다. 다행히도 젊고 복장이 편한 운전기사는 아주 거칠게 운전을 잘했다. 마지막 세나도 광장의 좁은 도로를 뚫고 지나서 드디어 호텔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숙소까지 걸어가야 했지만 캐리어 가방을 질질 끌고 가는 게 싫지 않았다. 오고가는 사람들의 평온한 얼굴을 보니 마음이 덩달아 편해졌다. 불안하고 두려움이 가득한 여행자에서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머물다가 떠날 평범한 여행자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호기롭게 거리 사진도 찍고 셀카도 찍어보았다. 마카오는 치안이 좋기로 유명한 도시다. 좀 더 어깨를 펴고 천천히 걸었다. 비가 오고 갠 덕분에 공기도 신선하고 선선한 바람이 길을 따라 흘렀다. 저녁에는 현지인들처럼 긴 바지를 꺼내야하나 생각이 들었다. 멀리 숙소가 보였다. 어쨌거나 마카오에 무사히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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