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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Nov 18. 2019

최애에게 막말하다 입덕한 썰

[일드] 그래서 저는 픽했습니다(2019)

시작부터 취조실ㄷㄷㄷ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30대 직장인 아이(사쿠라이 유키). 그녀는 어떤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인지 그 시작점을 설명하려면 1년 2개월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핸드폰을 찾으러 갔다가 지하돌 최애에게 입덕함

아이는 보여지는 것에 목매는 사람이었다. 뭘 하든 어디에 가든 반드시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고 좋아요 수에 집착하는 헤비 유저였다. 청혼받아 #자랑스타그램이라고 올리는 날만 기다려왔지만, 어느 날 남친에게 차이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핸드폰까지 잃어버렸다.


다행히 누군가 아이의 핸드폰을 주웠다고 해서 받으러 가기로 했는데,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이건 태어나 처음 보는 생경한 풍경. 그곳은 지하 아이돌 서니 사이드 업(aka 서니 사이)의 공연장이었다.


아이는 무대에서 춤도 노래도 앞머리도 어정쩡한 하나(시라이시 세이)를 본 순간 자신의 싫은 면을 떠올렸다. 어울리지도 않고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그 무리에 어떻게든 속하려고 낑낑 대는 모습이란. 아이는 참지 못해 하나에게 심한 말을 와르르 쏟아 냈고, 그런 말을 한 자신을 자책하다 점점 하나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는 아이의 생애 첫 고정픽이 됐다.


최애의 고민 상담까지 해주게 된 성덕(?)

아이에게 아이돌 덕질 문화는 그저 신세계. 하나와 서로 응원하며 유대 관계를 쌓아가는 것도 짜릿했고, 다른 팬들과 모여 노는 것도 즐거웠다. 그런데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하나를 만난 후 아이는 점점 자기 삶과 덕질의 밸런스를 잃어 갔다.


처음에 아이는 분명 내 최애가 꽃길만 걸었으면 하는 순수한 마음뿐이었다. 출발할 때는 그랬는데 달리다 보니 욕심이 생겨 아무도 그렇게까지 하라고 한 적이 없는데도 이성을 잃고 절대 넘지 않아야 할 선까지 넘어버렸다. 그렇게 전력으로 달리다가 뭔가 이상해서 돌아보니 최애에게 뒤통수를 맞은 상황.


아이가 어쩌다 용의자가 되었는지를 지켜보려 했던 사건은 회를 거듭할수록 진범의 정체와 동기를 짐작하게 만들고, 나아가 사건 이면의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포스터 디테일도 깨알잼

본격 아이돌 상머글 직장인이 상덕후가 되어 일코 해제하는 과정과 아이돌 그룹과 그 팬덤이 겪는 다반사를 그린 ‘그래서 저는 픽했습니다’. 오타쿠 드라마라 생각하고 가볍게 보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꽤 묵직한 무게를 느낄지도 모르겠다. 작품 자체는 짧고 굵게 재미있었다.


동음이의어를 살린 だから私は推しました라는 이중적인 제목도 좋았다. 推し는 내가 미는 멤버, 이른바 최애인데 요 단어의 동사형 推す가 밀다라는 뜻. 극 중 전개와 맞물린 센스 있는 제목이었다.


무대에서 빛나는 최애를 바라보는 주인공

지하돌은 우리나라 가요 시장에는 없는 개념이겠지만 살면서 누군가의 팬이었던 적이 있다면, 특히 아이돌 덕질 경험이 있다면 ‘그래서 저는 픽했습니다’를 보며 와 닿는 장면이 씬이 꽤 많을 듯하다. 팬이 어떤 마음으로 응원하는지, 그걸 가수가 알아주고 같이 노력해서 좋은 성과를 냈을 때 느끼는 희열은 어떤지, 아이돌의 병크가 터진 뒤 밀려오는 회한은 얼마나 씁쓸한지, 팬들끼리의 전우애 같은 우정은 어떻게 다른지 등 회차는 짧은데 작품 곳곳에 덕질의 희로애락이 골고루 담겨 있다.


아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내 삶 위에 덕질이 있는 게 아니다. 이 타이밍에 내 오빠는 아니지만 덕질 명언의 대표라 해도 손색없을 김동완(오빠얌)의 한 마디를 읊고 가야겠다.


“신화는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이 뒤에 이어진 말도 감동적이지만 저 문장만 쓴 이유는 나보다 덕질이 우선시 되면 안 된다는 걸 얘기하고 싶어서다. 아무리 혐생일지라도 내 현재 생활이 탄탄해야 더 즐겁고 윤택한 덕질을 할 수 있다. 밸런스만 잘 유지한다면 삶에서 직장(학업)과 덕질은 탁월한 공생 관계가 될 수 있다. 학생에게는 쉬고 싶은 걸 제쳐두고 노력해서 쟁취한, 직장인에게는 이번 달도 혐생터에서 잘 버텨냈다는 보상. 그게 바로 덕질이 될 수 있다.-나는 그랬다- 


알고 보니 대기업, 변호사, 프리랜서 IT 전문가 등이 모인 서니 사이 팬 모임은 그사세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그들의 명함이 아니다. 다들 현실 감각을 잃지 않고 충실히 자기 삶을 산다는 게 포인트다.  


NHK돌 서니 사이, 실시간으로 봤으면 랜선 덕질하는 기분이었을듯

아이와 하나는 지금도 행복할 테지만, 시간이 좀 더 흘러 언젠가 재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서니 사이드 업이 재결성하고 메이저 진출도 해서 다시 팬과 가수의 관계로 웃으며 볼 수 있기를.


덕질 선배 아즈키 X 덕질 초보 아이
이게 바로 오고 가는 티키타카 속에 싹튼 썸인가요

보아하니 드라마 내내 투닥투닥하고 묘하게 케미가 좋았던 아이와 아즈키(호소다 요시히코)는 커플이 된 모양. 아주 금방 지나가는데 두 사람이 주고받은 메시지가 동거인끼리의 내용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같은 그룹의 다른 멤버를 좋아하는 이 커플의 덕질을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도라마코리아, wavve에서 시청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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