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치과에 갔다가 너무 충격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아동권리와 복지를 배운 저로서는 치과 현장에서 전혀찾아볼 수 없는 아동에 대한 존중, 아동 인권의 현주소를 보고 경악했어요.
왜 아이를 기다려주지 않아요? 왜 아이에게 기회를 주지 않아요? 왜 아이가 차츰 적응하는 과정을 허락하지 않아요? 란 물음이 허공을 떠돌았어요.
버릇없는 아이, 작가 미상(1849)
'아이가 치과 트라우마 가질 수 있다''아이 덜 고생하게 하라'면서 부모에게 가스와 약물을 권하더군요. 치료의 효율성 및 운영상 이점은 있을지 몰라도, 아이의 공포심을 무조건 가스와 약물로 다루는 게 진정 아이를 위한 길이라 할 수 있을까.
아동의 연령 및 성장 발달 특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아이를 좀 더 존중하는 방식으로 진료 프로세스를 구성하고 진행할 순 없는가. 가스와 약물이 우선인가. 아이 스스로 마음을 진정하고 두려움을 완화하는 길로 이끌 방법은 없는가.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자라면 어른이 됩니다. 현재 작고 연약하다는 이유로,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를 존중받지 못한다면, 이들은 어디서 존중을 배울까요. 그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과연 저보다 약한 존재를 존중할 수 있을까요.
치과에서 두려움을 느낀다고 무조건 가스와 약물을 권하는 건 잘못입니다. 적어도 어린이전문을 표방하는 소아치과라면, 가운(작업복)에 침 한 방울 안 묻히고 빨리 진료 끝내려는 안일한 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물리적 처치뿐 아니라, 정서적 지원도 동일하게 제공해야 합니다. 비록 현실적 어려움이 있더라도, 절차상으로나마 아이에게 마음 준비할 기회, 용기내고 참아볼 기회, 실수했지만 다시 도전할 기회를 보장해야 합니다.
공포와 스트레스를 이겨낸 경험, 주위 어른의 위로와 격려를 받아본 경험, 무서웠지만 성공한 경험을 갖는 것이 가스와 약물 주입으로 치료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아이 치과 경험에 유익합니다. 따라서 치과의 '트라우마 방지' 논리는 명백히 궤변입니다.
'아이를 위한다'면서 아이가 치료를 조금씩 파악하고 경험할 기회를 박탈하지 마십시오. 아이가 치료에 점차 적응하고 편안해지는 과정을 겪도록 허락해 주세요. 아이 스스로 두려움을 조절하고 안정하도록 이끄는 방향은 시도해보지도 않고,
가스와 약물 주입부터 권하는 것은, 비인격적이고 야만적입니다. 어린이 대상 진료 과정에 - 엄연히 한 인간으로서 권리를 지닌- 아동에 대한 존중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개선하고 보완하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촉구합니다.
아이는 생각보다 강합니다. 아이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물론 부모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사회 분위기, 정책 지원 등 환경도 중요합니다. 아이가 아직 해보지도 않았는데, 특수 상황 아닌 이상 건강한 아이에게 트라우마 운운하며 가스 혹은 약물부터 권하는 게 과연 진정 아이를 위한 일인지 깊이 생각해봤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