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자신의 감정과 욕구만 아는 부모

자신의 감정과 욕구만을 인식하는 부모

여러분은 모든 사람들이 고유의 감정과 생각, 욕구가 있다는 것에 동의하시나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이 동의를 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감정과 생각, 그리고 욕구라는 것이 아기일때부터 명확하게 형성되어 있을까요 아니면 자라면서 그러한 것들이 명확하게 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일까요? 여러가지의 자료를 참고할때,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의 경험과 독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형성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저는 부모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역할중에 하나가, 아이가 자신만의 감정과 생각, 그리고 그 사회에서 건강한 보통 사람들이 공감할수 있는 감정과 생각등에 대해서 교육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건강한 욕구를 가질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진솔한 대화와 열린 마음으로 소통할수 있어야 하고 감정적인 교류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러한 건강한 관계를 통해서 아이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감정을 확인하고 표현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들과 삶의 방향을 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본적인 과정을 성공적으로 성취하기 위해서 부모들은 자녀들의 불분명한 감정을 정의하고 알려주는 작업을 할수 있어야 하는데,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부모들은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단계조차도 아이들을 도와줄수 없게 됩니다. 자신의 감정과 욕구만을 알기 때문에, 자녀들이 그러한 감정과 욕구를 발견하고 표현하고 성취하도록 도와주지 못하고 오히려 자녀들의 고유한 특징들을 부정하고 인정해주지 않는 상황을 만들게 됩니다. 아이들도 그러한 감정과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것 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자녀들도 동일하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그러한 자신의 확신이 도전받을때는 화를 내거나 자녀들을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사람마다 다 다른 감정과 생각을 가질수 있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문제는 부모들이 자신이 화가나고 마음이 힘든것이 이러한 기본적인 차이때문인 것이라는 것조차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에게서 만들어지는 분노의 감정을 아이들에게 화로 쏟아버리거나, 억누르려고만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감정이라는 것이 이러한 방법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궁극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채 남아있게 됩니다. 결국 부모와 자녀사이의 간극만 커지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식의 정당화를 하게 되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전혀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혹시 실질적으로 이러한 경우가 이해되지 않는 분들이 있을것 같아서, 몇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집에 셋째가 태어났습니다. 그 집의 아버지는 밖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아이를 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태어난 것이 아들인것을 확인한 이 아버지는, 자신의 씨가 좋아서 세번째도 아들을 낳았다는 것에 크게 만족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나가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습니다 .


어떤 초중생인 아이들을 둔 아버지가 집에서 팔씨름을 자주 하면서 놀았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아들들에게 팔씨름을 이기는 재미에 팔씨름을 자주 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아이들이 커지자, 점점 팔씨름을 하면 지는 횟수가 많아졌습니다. 그 아버지는 자신이 점점 지는 횟수가 많아지자, 아이들과 팔씨름 하는 것을 중단해 버렸습니다. 자신이 지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아이들과 팔씨름 하는 것에 흥미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어느집에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는 친척과 같이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사업이 망하게 되면서 많은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밤낮으로 빚쟁이들이 전화를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결혼을 하는 아들에게 무엇을 해줄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빚쟁이들이 자꾸 전화를 걸어오자, 그 아버지는 아들이 결혼을 하면 축의금으로 돈이 들어오니 그 돈을 가지고 갚겠다고 답변을 했습니다. 이 아버지는 자녀에게 결혼축하 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도 않고 아무런 자신의 상황 설명없이 축의금 받은것을 가지고 빚을 갚았습니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나 끝나고 나서도 그 아버지는 아들에게 한마디 말도 없었습니다. 이 아들은 부모에 대한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질문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오랜 시간이 지나서 아버지가 자녀와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 아버지는 자녀에게 자신이 그때 빚쟁이에게 독촉전화를 받으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만을 설명하면서 자신의 힘들었던 이야기만 했습니다.  


여러분은 위의 상황에 대해서 어떠한 생각을 하시나요? 어떻게 보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주목해야 할것은, 자녀와의 관계에서 부모 자신의 감정과 욕구만 존재하고 자녀는 아무런 감정과 욕구가 없는 존재인것처럼 여기는 비극적인 관계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부모는 자녀가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어떠한 욕구가 있는지에 대해서 전혀 인지조차 하고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를 어린나이부터 오래 지속하게 되면 아이는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욕구가 무엇인지도 확신하지 못하게 되고 그것을 표현하거나 요구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해집니다. 심각한 폭행이 있는것도 아니고, 당장 자녀에게 심각한 문제가 벌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자녀가 세상을 살아갈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감정과 욕구를 거세하는 과정으로, 자녀가 행복한 삶을 살아갈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을 박탈하는 비극적인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알게모르게 많은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물론 아이들이 어떻게 반응하냐는 아이들의 기질에 따라서 많은 차이가 날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기억해야 할것은, 부모가 타인의 감정을 전혀 인지하지도 못하고 존중하지도 못하는 상황은 자녀들의 정서적 성숙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감정과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러한 것에 대해서 존중해주는 건강한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자기감(Sense of Self)과 수치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