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자신의 감정적 고통을 이야기 했을때 공감받은 경험이 있는지
어제 미국 북동부 지역에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아침에 캣츠킬의 슬라이드 마운틴을 지인과 아들과 함께 등산했습니다. 산에는 눈꽃이 아름답게 피어있었고, 60cm 정도의 새하얀 눈이 덮인 길을 걷는 동안 마음속에 쌓여있던 부정적인 감정들과 힘든 기분이 조금씩 해소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등산은 마치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지인과 부모님들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분은 아버지가 집안에서 항상 자신의 감정만을 앞세우며 자녀들의 감정을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해왔고, 그로 인해 자녀들과의 관계가 무너졌다고 했습니다. 미국으로 이민을 온 이후 자주 마주치는 일이 줄어들었지만, 결혼 후에는 아내와 본가 사이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안하무인격인 행동과 아내의 반발 사이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이야기하며, 단순히 옛 세대의 특징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결국, 부모들이 정서적으로 성숙하지 못해 자녀들의 감정적 요구를 이해하거나 인정하지 못하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부모로서의 정서적 요구를 무시할 수 있다는 태도일 뿐만 아니라, 타인의 정서적 요구에 무지한 정서적 미성숙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옛날 어른들’이라는 말로 얼버무릴 수 없는 현실입니다.
정서적 성숙은 어른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이는 단순히 신체적으로 성장하거나 경제적으로 독립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어른이기 때문에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도 아닙니다. 정서적 성숙은 자기성찰과 다양한 성숙의 과정을 통해 개인이 직접 이뤄야 하는 과업입니다.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부모들은 자녀에게 큰 고통을 안기거나, 또 다른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자녀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의 정서적 상태를 이해하고, 왜 그러한 상태에 이르렀는지를 깨닫는 순간, 비로소 자녀를 포함한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제 삶을 돌아보면, 저의 감정은 가정에서 인정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집안의 모든 결정과 행동은 아버지의 감정을 기준으로 이루어졌고, 다른 사람의 감정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가정에서 생존하기 위해 감정을 숨겨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집안의 갈등을 피할 수 있었고, 이것이 저의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이러한 생존 전략은 학교에서도 이어졌지만, 학교에서 일진 무리들에게 표적이 되었을 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아버지나 학교의 일진들은 자신들의 감정만 중요하다는 점에서 다를 바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감정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타인의 감정이나 상황은 무시하거나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억눌린 제 삶은 내면 깊숙이 수치심, 두려움, 그리고 분노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 이러한 감정을 마음 깊이 숨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억압된 감정은 결국 폭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으로 와 직장생활을 하던 중 억눌린 감정이 극에 달하며 감정적으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너무 오랜 시간 해결하지 못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왔고, 그로 인해 저는 제 삶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직장이나 가정에서 주변 사람들은 저의 이러한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저 스스로도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몇 번이나 부모님께 이러한 상황을 이야기하려 했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셨고, 집안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가 좋은 사람이라고만 이야기하셨습니다. 결국, 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면, 저는 단순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치부될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끝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혼자만의 싸움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누구에게도 인정받거나 공감받지 못한 고통과 싸워야 했습니다.
오랜 시간 외로운 싸움을 통해 가족의 역사 속에 얽힌 트라우마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 세대부터 이어진 C-PTSD, 그리고 왜곡된 신념 체계와 분노 조절 장애 같은 문제들이 대물림되어 왔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히 성격 문제로 치부되거나, 부모가 자식을 사랑했기 때문에 괜찮다는 식으로 합리화되며 계속되어 온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의 고통을 인정하지 않고 방치한 결과가 다음 세대로 전달된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제가 얼마나 가족 안에서 고립되고 고통스러웠는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경험을 하나씩 꺼내어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하며, 내면의 상처를 치유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학교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를 통해 제 고통을 공감받는 과정은 치유의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동시에, 저도 제 감정을 무조건 내세웠던 순간들이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제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