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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멀리 Oct 06. 2020

김상수 <TAXI, TAXI>

[어떤 전시상황]

 천구백팔십팔 년의 작품이다. 전쟁이 끝났는데도 도시는 전시상황이다. 작품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떤 여성은 남성에게 맞고 도망을 가려고 택시를 잡는다. 집에 두고 온 칼라 테레비를 챙겨 와야만 한다. 다시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달려간다. 택시 운전기사는 육이오와 월남전을 겪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전쟁의 기억이 되감기 된다. 앞 못 보는 엄마의 허리와 자신을 끈으로 묶은 채 살려달라고 빌던 베트남 여성과 서로를 묶은 끈을 따라 줄을 지어 엎드려 다리를 건너던 자신의 가족들, 포대기에서 몸부림치다 떨어져 죽은 아기, 그리고 폭격 소리가 자꾸만 재생된다.


 그의 택시에 오르는 사람은 팔십팔 년도의 여성들이다. 그들은 미군에게 맞아 도망가고 ‘얼굴을 팔아’ 돈을 벌기 위해 애쓰고 뱃속의 아이를 낳으려고 도망간다. 내 눈에 그들은 모두 생존을 위해 기를 쓰는 인간들인데 작품 속 지문과 묘사는 허영심과 물욕에 더 가깝다. 선전이 아니라 씨-에프를 촬영한다고 우기면서 '애교', '선정적일 만큼 섹시한’, ‘예쁜’, ‘야하게 차려입은’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말하고 행동한다.


 택시 기사는 산전수전을 다 겪었으나 이 여성들 앞에서 한 없이 뭘 모른다. 여성들의 살기 위한 몸부림은 출세주의와 허영으로 덧칠된다. ‘따불’ 요금을 받으려고 고장 난 차의 시동을 몇 번이고 다시 거는 일에는 아무런 덧칠이 없다. 돈을 악착같이 받아야 한다는 여성에게, “남들은 돈 벌기가 쉽다는데 단 어려워. 아마 운이 없나 봐.”하고 앉았다. 악착같이 받아야 한다는 말은 쉽다는 말이 아니다.


 어떤 여성은 뱃속 아이를 꼭 낳아 자기를 때리고 임신중단을 강요한 존을 실컷 때려 주라고 할 거라고 한다. 두 번의 임신중단을 거치며 할 것이 기도밖에 없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말을 하는 여성에게 택시 기사는 이렇게 답한다. “아니 자식이 아비를 친단 말이오?”


 사실 그 여성은 태아의 아버지를 모른다. 맥락 안에서 그는 기지촌 여성이다. 그는 정말로 출세를 위해 살았을까. 나는 할머니를 생각한다. 우리 할머니는 동두천에서 미용실을 운영했었다. 할머니는 그 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다른 일도 했다. 여성들을 모아 교회로 데려가는 일이었다. 기도밖에 할 것 없다는 구절에서 나는 우리 할머니를 생각했다. 할머니는 기도도 할 수 있었고 그들을 찾아가 데려올 수도 있었다. 책을 읽으면 나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물을 것이 생긴다. 한국에 돌아가면 꼭 그때의 동두천에 관하여 물어야지, 자식이 아비를 친단 말이오 같은 질문 말고 진짜로 해야 하는 질문을 해야지, 한다.


 택시에는 사람이 타는 것만은 아니다. 어떤 소녀는 천사로 등장하여 아버지의 수술비를 벌기 위해 ‘차치기’를 시도한다. 그는 공장에서 미싱을 돌리고 남동생은 온도계 공장에서 수은 중독에 걸렸다. 그의 계획은 차로 뛰어들어 다친 뒤 돈을 뜯어내는 거다. 그러면 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헌신적인 생각이다. 그를 치고 차를 세운 기사는 그에게 자신이 얼마나 힘이 없고 가난한지 설명한다. 육이오와 월남을 말한다. 전쟁을 치르면서도 자신은 죽지 않았다고, 그런데 네가 나를 죽일 수 있겠냐고 묻는다. 그는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벌기 위해 월남에 갔다. 삶과 살아 있음이 얼마나 미웠을지 나는 상상할 수 없다. 그 와중에 뒤에 탄 임산부는 출산을 하고 아이는 죽다 살아난다. 아마도 아이가 살아있다는 사실로 작가는 연약한 희망을 드러내고 싶어 한 듯하다.


 여성들이 평면적으로 묘사되어 아쉽다. 허영심과 출세주의와 애교 같은 것 없이도 이 도시는 전시 상황이다. 각자의 생존 욕구는 그저 생존하고자 하는 필요와 욕망이다. 허영으로 묘사될 수 없다. 택시 기사도 살고 싶고 ‘여자’라는 이름의 인물들도 다 살고 싶다.


 나는 연약한 희망인 그 아기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전쟁에서 너는 살아. 그래서 꼭 존을 때려, 벽에 머리를 찧고 발로 차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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