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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더리 May 13. 2023

7개월 만의 이직 성공, 미국에서의 두 번째 직장.

인생은 계획보다는 펀치 한방의 연속일 수도.

오늘부로 새로운 직장과 새로운 도시에서 일상을 시작한 지 2주가 지났다. 작년 9월부터 이직 준비를 시작해서 약 7개월 후인 올해 2월 말에 첫 합격 통보를 받았다. 2022년 9월 4일, 회사에서 제일 친했던 동기와 하이킹을 갔는데 그 친구가 다른 회사로 이직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바로 이력서를 수정하기 시작했고, 몇십 개에 가까운 채용공고를 읽으며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 싶은 회사에 레주메를 업로드하며 이직을 준비했다.


7개월간 수백 개의 채용 공고, 수백 분의 인터뷰, 눈물, 떨림, 밤샘, 걱정, 다짐을 겪고 2023년 2월 23일에, 1순위로 가고 싶었던 회사의 recruiter에게 첫 번째 합격 통보를 받았다. 롤러코스터 같던 이직 준비 기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직장을 시작하면서, 지난 기간 동안 배우고 느낀 것 중 가장 중요한 점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미국에서 이직을 준비하고 있는 분들이 이 글을 읽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나 위로를 받아가시면 좋겠다.


이직을 하며 내가 느낀 가장 중요한 것:

시작부터 정확한 방향성이 없어도 괜찮다.


이직 준비 초기에 가장 힘들었던 점은 정확히 무슨 일이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에게 명확했던 유일한 것은 지금 몸담고 있는 분야 (Economic Consulting)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사실이었다. 경제학 컨설팅에 관한 이전 글에서 말했듯, 워낙 niche 한 전문 분야이고 사회에 전반적으로 끼치는 영향력이 적다는 점에서 일을 할수록 이 분야에 대한 지루함이 생겼다. 경제학 컨설팅을 시작한 지 만 2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이제는 더 지체 말고 하루빨리 다른 분야를 모색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직이나 퇴사가 잦은 미국에서는 한 회사에서 일한 지 2년이 다 되어가면 보통 internal move나 exit opportunity를 찾기 시작한다.


어느 분야, 어떤 직종의 일을 하고 싶은지 목표가 명확하지 않았던 나는 일단 LinkedIn의 알고리즘이 내 프로필에 맞게 보여주는 채용 공고를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나의 학력과 전공, 경력, 전문적인 skillset에 맞는 회사와 open position을 보여줬다. 주로 Data Analyst나 Strategy Analyst 채용 공고가 많았고, 샌프란시스코라는 지역 특성 때문인지 스타트업이 많았다.


일단 조금이라도 연관성이 있다 싶은 채용 공고가 있으면 고민하지 않고 바로 지원했다. 경제학 전공, 컨설팅, 통계, 코딩 경험을 살려 Data Analyst, Data Scientist, Strategy Analyst와 같은 채용 공고에 지원서를 넣었다. 이때는 아직 ChatGPT가 나오기 전이어서 cover letter도 직접 작성해야 했지만, 다 비슷한 직종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 특히 tech industry 쪽은 cover letter를 굳이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다. 2022년 말에는 ChatGPT를 아주 유용하게 활용했다. ㅎㅎ


수십 개씩 지원서를 넣다 보니, 한 두 개씩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첫 면접은 지인을 통해 얻은 기회였는데, 스타트업에서 Operational Analyst 포지션을 위한 면접이었다. 첫 면접부터 이력서도 내지 않고 바로 CEO와 최종 면접을 진행했는데, 스타트업이나 business operation 경험이 없었던 나는 culture fit이나 skillset 면에서 부족함을 보였다. 물론 첫 면접이라 많이 떨었던 탓도 있다. 첫 인터뷰 후, 나는 바로 LinkedIn Premium이 제공하는 면접 강의를 듣고 대학 취준생 시절 때처럼 예상 질문과 답변을 정리해서 외우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면접이 화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항상 컴퓨터 한편에 메모장을 띄워놓고 면접을 봤는데, 어느 정도 입에 여러 가지 답변을 익혀두니 훨씬 더 편안하게 인터뷰에 임할 수 있었다.


이력서 제출과 면접이 끊임없이 이어지던 중, crypto 관련한 회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Chief Economist 아래서 일하는 Senior Research and Strategy Analyst 포지션이었는데, 면접 과정이 굉장히 어려웠다. 보통 코딩 스킬을 요구하는 회사들은 take-home assignment 단계가 있는데, 이 회사에서 제공한 과제는 Dune Analytics라는 플랫폼을 이용해서 특정 crypto lending protocol을 분석하는 interactive dashboard를 만들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나는 블록체인이나 크립토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었고, Dune Analytics에서 데이터 분석을 하기 위해 필요한 SQL은 아예 다룰 줄 모르는 상황이었다. 과제 마감 기한까지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풀타임으로 직장 생활을 하며 이 모든 것을 배우고 리포트까지 작성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하지만 닥치면 다 하게 되어 있다고 하지 않나! 일단 급하게 자료 조사를 해가며 Software engineer인 남자친구와 crypto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밤을 새워 Aave lending protocol에 대해 분석한 dashboard를 만들었다.


어렵게 완성한 과제를 제출했고, 최종 면접 단계까지 갔다. 그 회사의 Chief Economist와 1:1로 한 시간 동안 진행되는 살 떨리는 면접이었는데, 예상보다 난도 높은 질문들에 당황한 나는 역시 또 마지막 단계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블록체인과 crypto, 코인 중심의 수익 구조에 대한 대한 철학적이고 전문적인 질문들에 경험이 부족한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이 실패는 나에게 중요한 turning point 가 되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나의 방향성이 드디어 정해졌다. 블록체인과 decentralized finance은 알수록 흥미로웠고, 경제학이라는 배경을 가진 내가 미래 지향적이고 innovative 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최적의 분야라는 생각을 했다. 이때부터 LinkedIn에서 crypto와 blockchain 관련한 채용 공고를 집중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코딩이나 엔지니어링 경험이 있는 경력직 공고였는데, 기죽지 않고 지원이라도 해보자며 이력서를 제출했다. 끝내, 지원한 여러 곳 중 한 곳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고, 운이 좋게 최종 면접까지 갔지만 역시 마지막 단계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극적으로 두 달 후에 같은 회사에서 다시 연락이 왔고, 그 회사의 blockchain과 fintech 팀 안에 있는 다른 포지션에 합격할 수 있었다. Blockchain에 경험이 없었던 초짜인데도 불구하고, 집중 공략 끝에 blockchain 분야로 이직을 성공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이직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시작부터 목표와 방향성이 분명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나도 처음부터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가 확실히 알았더라면 더 빠른 기간 내에 이직을 이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이직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모르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방향성을 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단 이직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으면, 하루빨리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job market에 나오는 채용공고는 어떠한지, 최대한 많이 다양한 job posts를 읽고 지원서를 내다보면, 나에게 주로 어떤 회사가 연락을 해 오는지, 어떤 종류의 team culture가 나의 성향에 맞는지, 어떤 manager와 대화가 더 잘 통하는지, 요즘 회사들은 어떤 skillset을 원하는지, salary는 어느 정도인지 정말 많은 점을 배우게 된다. 지원하는 과정에서 많은 데이터가 쌓이고, 그러다 보면 나의 목표도 어느 정도 구체화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지금 하는 일이 싫지만,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는 몰라 existential crisis를 겪는 분들이 있다면, 몰라도 정말 괜찮다고 말해드리고 싶다. 지원서를 내고 연락 오는 회사들과 면접하는 과정도 간접적으로 그 직종을 경험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내가 어떤 일에 더 흥미와 재미를 느끼는지, 어떤 부류/분위기의 사람들과 더 잘 어울릴 수 있는지 배울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나의 타깃 분야를 narrow down 할 수 있게 되고, 그 분야만 집중적으로 공략하다 보면 언젠가 한 곳에서는 합격 통보가 온다.


다음 글에서는 이직 기간 동안 인터뷰를 어떻게 준비했는지에 대해 풀어가 보려고 한다.


이직러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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