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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정민 Aug 16. 2020

시절의 기쁨에 예민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선택의 순간에서 불쑥불쑥 가난의 본성이 깨어난다. 찰나의 순간에 머릿속 계산기가 타다닥.

넉넉하지 않게 살아온 탓이다. 늘 억척스럽게 아끼던 엄마 밑에서 자랐다. 추울 땐 추운 곳에서, 더울 땐 더운 곳에서 아랑곳 않고 일을 하시던 아빠의 뒷모습이 사진처럼 찍혀 내 마음에 아로새겨져 있다. 

긴 세월이 흐르고, 부모님의 젊은 시절보단 훨씬 넉넉하게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몸이 반응한다. 더 싼 것으로. 효율적인 것으로. 돈 값하는 것으로. 그놈의 가성비. 


통장에 한 수억은 꽂아놓고 살지 않는 이상, 물건을 고를 때마다 습관적으로 본전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은 예감.

부정하지 않는다. 그게 나니깐. 가끔 그런 내가 부대낄 때가 있는데, 그건 내가 고른 물건이 생각보다 훨씬 돈 값을 하지 못했을 때. 

‘인간아, 차라리 돈 좀 더 주고 옳은 걸 사지!’  같은 후회를 할 때면 지지리 궁상 같은 내가 싫어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많은 날, 나는 내 삶의 방식을 긍정한다.     


이유는 단 하나, 그때그때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은 들어주며 살아왔기 때문에.

물론 내가 살아가던 자세를 잘 아는 내 마음이 ‘무리한’ 것을 요구하진 않았다. 다리 뻗을 자리 보고 눕는다고들 하지.

백화점에 가서 꼭 그 브랜드의 냉장고를 사야 된다고 우기지 않았다. 유명 브랜드를 따라 만든, 일명 st. 의자도 괜찮았다. 디테일은 엉망이라도 예쁨을 얼추 비슷하게 흉내 냈으니깐. 사진 찍으면 그게 그거 같아 보이기도 했고. 나이가 들면 옷도 가방도 값이 좀 나가는 있어 보이는 것으로 사야 한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수긍이 가는 가격대의 옷을 고르고 있다. 나라고 비싼 게 싫겠냐만, 아직은 분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대신, 좋아하는 작가의 핸드메이드 컵에 마음이 들썩들썩. 당당하게 카드를 긁어댔다.     

삶의 모든 것이 최고일 필요는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하나만 가지면 나는 어째 어째, 만족하며 지낼 수 있었으니깐. 

늘 그런 식이 었던 것 같다. 다 가지지 못한다는 걸 이미 아는 사람의 자기 위안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그게 내게 새겨진 삶의 태도였으니깐.     


신혼집을 꾸밀 때. 누구나 그랬듯 나 역시 한껏 들떴다. 온전한 나의 공간이 생긴다는 이유 하나로. 칫솔부터 침대까지. 모두 다 새것이라니. 리모델링한 작은 오피스텔로 들어가면서도 마냥 즐거웠던 것 같다. 발판부터 이불까지 전부 내 취향으로 꾸밀 수 있다니!

몇 년간 직장 생활하며 모아둔 돈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써댈 수 있는 유일한 기회. 핸드폰 속에서 살았던 것 같다. 사도 사도, 살게 많더라고.

그런데 막상 다 골라놓고 보니, 어쩜 그렇게 ‘나’스럽던지.    


가구는 남편의 친한 친구 가게 샀는데, 용달비만 얹어서 원가로 샀다. 친한 친구 특별 할인이라나. 그래서 애초, 다른 곳 가구는 보지도 않았다. 남들 장롱 하나 살 돈으로 장롱에 침대에 식탁, 거실장까지 샀지 싶다. 냉장고도 티브이도 세탁기도 전시용 아니면 최저가. 아니면 이월상품.

이불이며, 그릇이며 백화점껀 단 하나도 없었다. 비슷하게 결혼한 친구가 모든 혼수를 백화점에서 번쩍번쩍 신제품으로 쫙 뽑을 때, 난 인터넷을 뒤지고, 또 뒤졌다. 

싸게 사야지, 싼 걸 사야지 다짐했던 건 아닌데, 꼭 선택의 순간만 닥치면 저렴한 것 앞에 서 있더라고. 생겨먹은 게 그래서인지. 

얼마 없는 돈으로 부모님의 도움 없이 결혼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조금 슬퍼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릇만큼은 사고 싶은 걸로, 꼭 원하는 것으로 샀었다. 한창 도자기 그릇에 푹 빠져 있었던 나는, 도자기 공예 작가의 그릇을 하나, 하나 직접 골라 샀다. 

비싼 백화점 브랜드 그릇에 비하면 그것도 싼 것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릇만큼은 돈이 아닌 오직 내 취향에 집중했는 것.


모든 것이 저렴했지만 삶까지 싸구려 같지 않다고 생각했던 이유였다.

그럼에도 나를 기쁘게 하는 것엔 너그러웠으니깐.


예쁜 그릇장도 하나 짜 맞춰 넣었는데, 지인의 가게에서 보기 좋고 저렴한 신혼가구를 들였던 것관 다르게 핸드메이드로 맞춤가구를 제작했다. 오직 그릇을 전시하기 위해서.

그 덕에 밥을 차리는 내내, 웃음 지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그릇에 담긴 음식이라니.

설거지도 덩달아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아이를 낳고 난 후, 노동의 강도가 세지고,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좋은 세탁기, 최신 냉장고 따위가 없어도 예쁜 그릇만 있으면 기뻐했던 마음은 빛바래 버렸다. 

예쁜 그릇은 무슨, 밥 차려 먹는 것조차 쌍둥이 덕에 미션이 되어버리고 말았으니깐.

게다가 마음이 급해진 탓에 설거지를 하며 그릇을 여러 차례 깨 먹었다. 난 그릇이 짝수가 아니면 싫어지던데. 홀수로 처량하게 남은 컵이며, 접시를 보고 있으니 기운이 쭉쭉 빠졌다.

다시 사면되련만. 이젠 그릇을 사는 것으로 마음이 달래지지 않을 것 같다. 

그릇 앞에서 자꾸만 마음의 계산기가 두드려지는 것 보니, 정말 원하는 건 아닌 것은 아닌가 보다 싶었다. 

어쩌나, 마음 붙인 곳이 없어서. 

마음 붙일 곳이 없어서 몸에 기운이 빠지는 건지, 몸이 힘들어져서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더라고.    

그때 들였던 가전제품이 있다.

아기 둘이 태어났을 뿐인데 빨래 양이 어찌나 늘어나는지. 매일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탈탈 털어 볕 좋은 곳에 말리고, 걷고, 개고를 반복하던 나는, 우연히 ‘건조기’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두근 두근, 설레더라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건조기를 들였다. 물론 조금 더 싸게 사기 위해 시간을 들이긴 했지만.

빨래에 드는 품을 덜어준다면, 정말이지 기뻐질 것 같았다.


삶의 질이 달라지는 경험을 했다. 뜨끈뜨끈, 뽀송뽀송하게 건조되어 나온 빨래를 만지고 있으면 삶의 온갖 꿉꿉함이 사라지는 것 같더라고. 고작 그게 뭐라고. 

건조기를 돌리는 순간순간,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동동 설렜다.    

그릇도 못 채워준 나의 기쁨이 건조기로 가득 차는구나.


아이를 낳고 난 후, 무엇보다 나의 일을 덜어주는 것에 마음을 홀랑 빼앗기는 나를 발견.


아무런 고민 없이 싸다는 이유로 샀던 유선 청소기를 무선으로 바꿨고, 무선으로도 해결되지 않았던 노동의 양을 로봇청소기를 사 들임으로써 처리해버렸다. 

그런 것 없어도 잘만 살았다는 엄마의 말은 듣지 않기로 한다. 이건 단순히 소비로 잠깐의 쾌락을 사는 것과는 다른 일이니깐. 

신혼 시절 3년, 외식 몇 번 없이 집밥을 차려먹으며 그것에 들어가는 모든 품과 시간을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이 그릇 때문이었다. 

내 삶을 더욱 사랑하게끔 만들어 주는 기운을 살 수 있다면 그것은 합리적인 소비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매일 아침마다 ‘청소 시작할게요’ 하고 말하고 씩씩하게 이방 저 방 돌아다니며 쓸고 닦는 쟤를 보고 있으면 그렇게나 든든해진다. 나와 같이 청소하는 살림 메이트가 생긴 후, 청소시간이 짜증스럽지만은 않았다.

 ‘혼자 하기 너무 많지?’ 하고 두 팔 걷어 부치고 도와주는데, 정말 매번 고맙더라고.

덕분에 2주에 한 번, 내 손으로 청소하나. 그것도 안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덕에 주어진 공짜 같은 그 시간,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또 다른 일을 처리하는 데 사용한다.   

  

어쩌다 한 번 옷을 살 때면 여전히 이리, 저리 재다가 가격에 수긍할 수 있는 것으로 고르곤 한다.

고급스러운 외식은 연례행사를 치를 때나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커피 값에 수긍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커피숍은 자주 가지 않는다.

애들은 금방 큰 다는 이유로 단 한 번도 백화점 옷을 사준적이 없다. 장난감은 또 어떻고.

이 정도의 돈은 써도 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그것보다 저렴한 물건을 선택한다.

물건을 살 때면 늘 본전부터 생각하는 어쩔 수 없는 본능. 

아끼면 좋지 라는 말로 이런 나의 본능을 치켜세우고 싶진 않다. 이건 그러니깐,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인 것이니깐.    


하지만 삶의 모든 것엔 그러지 말자고 나에게 말해준다. 

그 시절 나를 기쁘게 해 줄 만한 것엔 너그럽자고.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계산기를 슬쩍 치워두자고. 

돈으로 삶을 긍정할 수 있는 힘을 산다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돈을 자주, 많이 써서 짧은 쾌락을 계속해서 사들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돈으로 일상을 기쁘게 물들이는 방법은 확실히 안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 난 또 무엇에 기쁨을 느끼며 살아갈까. 마음이 환하게 빛이 날까.

아직까진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난 내가 그릇을 좋아할지도 몰랐으며 건조기나 청소기 따위에 마음을 빼앗길 줄도 몰랐으니깐.


    

삶이 고단하다 느껴지는 순간엔 꼭 나에게 물어봐 주려고 한다. 

‘넌 지금 무엇에 기뻐지니?’ 하고. 다른 건 몰라도 일상이 기뻐지는 일이라면, 고작 물건으로 매일을 긍정하며 살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꼬깃꼬깃 모아두었던 비상금을 아낌없이 투척해야지. 

시절의 기쁨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그것은 내 힘듦에 무심하지 않겠다는 말.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을 때, 모든 것이 최고가 아니어도 나는 기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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