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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철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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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철 Sep 19. 2018

감의 맛



 감이 왔다. 우연히 아무도 없는 아침 계단에서 마주쳤다. 그는 골목길에서 마주친 고양이 같았다. 눈을 보니 놀란 듯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내게 말을 걸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니 아주 조금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린 같은 공간에 있었고 사소한 웃음을 나눴다. 우연에서 멈출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왔다.



 감이 좋다. 그가 나를 찾는다. 이유를 만들어 약속을 잡는다. 음악 소리가 너무 크지 않고 좁아 아늑한 술집에서 오래도록 대화했다. 우린 집에 가길 머뭇거렸고 배가 부르다는 핑계로 밤공기가 좋다는 구실로 산책했다. 나란히 걸었고 손등과 팔이 종종 부딪쳤다. 그는 말이 많은 내 모습이 의외라고 했고 매력적이라 했다. 그날 본 그는 과묵했고 수줍음이 많았고 술 때문인지 볼이 붉었다.



 감을 잡았다. 나도 그도 서로가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자연스레 일상을 공유하고 있었고 이유가 없어도 만났다. 난 단도직입적으로 좋아하냐 물었고 그는 다시 고양이가 됐다. 우린 또 그 아늑한 술집에서 대화를 나눴고 변명 없이 산책했다. 그날은 비가 왔고 나는 까치발을 들어 그의 볼에 입을 맞췄다. 그렇게 우연에서 필연이 됐다.

 


 감이 맞았다. 매일 상상했던 연애였다. 마치 단감처럼 단단하고 달달했다. 누군가의 비방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이름만 불러도 보고 싶었다. 고작 10분 만나려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고 밤잠을 설쳐가며 전화를 했다. 서로의 미래를 욕심내며 즐거워했다. 우린 제법 잘 어울렸다.



 감이 떨어졌다. 서로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우린 당당했고 각자의 입장을 이해 해주길 원했고 싸웠다. 연락을 미루며 신경전을 펼치기도 만나서 시큰둥해하며 무게 잡기도 했다. 하지만 화해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의 일부라 자부했다. 여전히 나는 그를 사랑했고 그도 나를 사랑했다.



 감을 잃었다. 더는 싸우지 않았다. 사소한 웃음도 이유 없는 만남도 일상공유도 줄었다. 그렇게 연인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어쩌다 재밌었고 이를 사랑이라 착각했다. 결국 우린 깨달았고 시간이 필요했다. 어느 밤, 서로를 좋은 사람이라 다독였고 미안하다고 전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감이 없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고 그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왜곡될 추억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왜 헤어졌냐 물으면 아마도 "그냥"이라고 간단히 대답할 것이다. 그때 당시와 과거의 감정까지 끌어모아 열변을 토해낼 열정은 없다. 이 연애는 이제 떫다.




Recipe_홍시 스무디



떫음 따위 없는 홍시같은 연애를 위해!



 홍시 2개, 꿀 2큰술, 우유 200mL, 애플민트 1잎



1. 얼린 홍시의 껍질을 까고 씨를 제거한다.

2. 깐 홍시를 사 등분 한다.


3. 홍시, 꿀, 우유를 믹서기에 넣고 갈아준다.


4. 컵에 옮겨 담은 후 애플민트로 장식하면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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