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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ielraum Oct 05. 2023

길들여진 밥벌이도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세상에 완벽은 없습니다. 과녁은 나중에 옮겨도 늦이 않아요

 “내가 내년이면 오십이다. 오십… 놀랍지 않냐? 인간이 반세기동안 아무것도 안 했다는 게. 아무것도 안 했어 기억에 남는 게 없어. 학교 땐 죽어라 공부해도 밤에 자려고 누우면 삼시 세끼 챙겨 먹은 기억밖에 없더니 이게 딱 그 꼬라지야 죽어라 뭘 하긴 한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게 없어… 아무리 뒤져봐도 없어…” 

 

드라마 ‘나의 아저씨’ 이 대사는 마른 공기를 홍해처럼 가르는 날 선 바람 같았고, “죽어라 뭘 하긴 한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것이 없어” 라는 내용은 번뜩이는 긴 칼날처럼 내게 다가왔습니다. 지난했던 밥벌이 삶을 잠시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새벽녘 책상에 앉았습니다. 아직 빛이 어둠을 밀어내기 전이지만 한 글자 한 글자, 단어와 문장을 엮어가는 손놀림에 어느새 어둠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 사이 검고 짙은 향기가 온 방을 걸어 잠든 영혼들을 깨웁니다. 커피가루가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리는 소리를 냅니다. 아침을 여는 소리입니다. 프랑스 외교관 ‘탈레랑’은 “커피의 본능은 유혹이고 향기는 와인처럼 달콤하고 그 맛은 키스보다 황홀하다”고 했습니다. 반복적인 일상입니다만 행복한 아침입니다.


IMF 직전 회사에 입사한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97년 IMF 이후 기업들은 점차적으로 공개채용을 줄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기가 막힌 타이밍에 입사한 셈이지만, 회사는 구조조정을 시작했고 자연스레 회사를 떠나는 동료직원들도 생겼습니다. 남는 자는 떠나는 자를 위해 고통분담 요구를 받았고, 급여삭감은 물론 보너스와 상여를 반납했습니다. 그래도 남은 자는 운이 좋은 편입니다. 떠나는 자의 뒷모습에 미래는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월급쟁이 26년차입니다. 밥벌이에 목이 매여 솔직히 지금까지 버텨 왔습니다. 버텨 왔다는 말이 조금 비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길들여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회사에는 50세이상 직원(이하, 시니어)들이 제법 근무하고 있습니다. 회사로서는 여간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들의 자발적 퇴직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회사는 이들을 회사 밖으로 밀어내려 하지만 시니어들은 더 버티려 애를 씁니다. 회사와 시니어들의 긴장 관계는 여전합니다. 임금피크제가 다가올수록 자랑스러웠던 회사는 사랑스럽지 못한 회사로 변합니다. 이런 긴장 속에서 시니어들이 버텨내는 원동력은 아이러니지만 회사에 길들여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은 회사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습니다. 


지난 달, 10여년전에 먼저 퇴직한 선배와 해장국집에서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아직 회사에 남아 있는 동료들이 선배를 찾아와 회사가 너무 하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금방이라도 사표를 낼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 그러지는 못한다며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선배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용기 있게 사표를 던지고 떠나는 자는 아름다운 것인가요? 남아 있는 자는 비겁하고 부끄러운 것인가요?  


진화인류학자 ‘브라이언 헤어’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자기가축화’라는 생물학적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자기가축화란, 특정 종이 스스로 길들여지는 현상으로 ‘자기가축화’ 되면서 공격성이 줄어들고 인내심이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늑대와 개는 조상이 같은 종이지만 스스로 가축화의 길을 선택한 개는 번영의 길을, 가축화를 거부한 늑대는 멸종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특히, 호모사피엔스가 호모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보다 열등했음에도 불구하고 승자가 된 것은 ‘자기가축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흥미로웠습니다. ‘길들여지는 것’이 승자의 원동력이라니 재미있는 분석입니다. 시니어들이 여전히 회사에 버티고 남아있는 이유가 생물학관점에서 보면 ‘가축화’와 ‘길들여짐’의 산물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보니 길들여진 밥벌이도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저는 30대 후반부터 ‘노후설계’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그렇다고 제 노후가 잘 준비되었다고 말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퇴직 후에 조용한 시골에서 책 읽고, 글 쓰며 작은 책방을 만들어 유익한 문화 세미나를 여는 것이 제 로망입니다. 책 한번 제대로 써 본적 없는 제가 이런 꿈을 가진다는 것이 소가 웃을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선즉제인(先則制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들 보다 앞서 일을 도모하면 능히 남을 누를 수 있다는 얘기인데, 사람 ‘人’을 ‘人生’ 으로 바꾸면 능히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 수 있다는 얘기도 됩니다. 

아직은 ‘은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50대 중반의 남성 내담자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소리 없이 도적처럼 찾아온 ‘은퇴’라는 단어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은퇴라는 놈은 이미 내 앞에 와 있는데, 솔직히 너무 낯설었습니다.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렀을까요?” 원망과 자조(自嘲)는 한없이 그를 작아지게 만들었습니다. 남들 못지 않게 열심히 살았고, 돈과 재산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인생이란 사격장에서 평생 조준만 하다 시간만 보내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세상에 완벽은 없습니다. 이제 심각한 표정을 버리고 그냥 발사해 봅시다. ‘과녁’은 나중에 옮겨도 늦지 않으니까요(이동규, 두줄 컬럼에서 인용)/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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