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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ielraum Oct 05. 2023

고리오 영감과 리어 왕

인생의 시간 정오(50代), 나와 부모의 그림자는 한 몸이 됩니다

딸들이 의례적으로 아버지라고 말할 때면 마음이 얼어붙는 것 같지만, 아빠라고 부르면 아직도 어린 모습을 보는 듯해서 나의 모든 추억이 되살아 난답니다”  


영국의 소설가 발자크 ‘고리오영감’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두 딸의 아빠입니다. 아직 딸들에게 ‘아버지’의 무게감보다 ‘아빠’라는 다정함이 어울리지 않을까? 상상했습니다. 물론 딸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두 딸은 ‘아빠’라는 표현이 익숙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딸들이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해도 저는 여전히 ‘아빠’로 남고 싶습니다. 


‘고리오영감’ 은 세상의 모든 아버지 아니 아빠들과 딸들이 읽어야 할 이야기입니다. ‘고리오영감’은 프랑스판 ‘딸바보’ 였습니다. 그에게는 ‘나지’와 ‘델핀’ 이라는 두 딸이 있었고, 그는 자수성가한 아버지였습니다. 결혼 후 7년이 지나 사랑하는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지극정성으로 두 딸을 키웁니다. ‘아지’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백작부인이 되고, ‘델핀’은 은행가와 결혼해 더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딸들은 끝없는 사치 때문에 돈은 항상 모자랐고, 그때마다 아버지에게 달려 갔습니다. ‘고리오영감’은 마지막 남은 재산인 연금마저 털어서 두 딸에게 보냈지만 삶의 마지막 순간에 딸들은 그의 옆에 없었습니다. 


그는 20년동안 오장육부와 자신의 사랑을 다 주었고, 하루아침에 자신의 재산을 주어버렸어요. 그의 딸들은 레몬을 잘 쥐어 짠 다음 그 껍질을 길모퉁이에 버린 셈이죠”


저는 ‘고리오’처럼 자식들에게 줄 재산이 많지 않습니다. 아니 없습니다. 딸들이 들으면 서운해할 지 모르겠지만 대학 졸업하면 먹고 사는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라고 말할 참입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겠냐구요? 글쎄요. 최소한의 지원은 불가피 하겠지만 그렇다고 저희 부부의 노후를 담보로 뒷바라지할 생각은 추호(秋毫)도 없습니다. 방송에서 누가 말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소도 목장에 풀이 있어야 몰려들고, 파리도 음식찌꺼기라도 있어야 주변을 맴돈다” 고 말하더군요. 웃으라고 하는 얘기지만 슬픈 현실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며칠 전 두 딸이 저희 부부에게 “아빠, 엄마 이 집은 절대 팔지 마세요” 라고 하더군요. 왜? 하고 물었습니다. 이 집이 그냥 좋답니다. 집에 아이들이 점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저희 부부는 조금 놀랐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얘들아! 집은 넘보지 마라”, 라고요. 


아비가 누더기를 걸치면 자식은 모르는 척하지만, 아비가 돈 주머니 차고 있으면 자식들은 모두다 효자지” 

세익스피어 ‘리어왕’ 광대의 대사입니다. 세익스피어는 상속과 관련한 참담한 사례를 중심으로 ‘리어왕’의 이야기를 씨줄과 날줄로 얽혀 스토리를 풀어갑니다. ‘리어왕’은 80세가 넘자 자신의 왕국을 세 딸에게 물려주고 은퇴하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리어왕’은 딸들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확인받고 싶어했습니다.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딸에게 가장 좋은 왕국의 땅을 물려주기로 한 것이죠. 


첫째와 둘째 딸, ‘거너릴’과 ‘리건’은 온갖 아첨으로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셋째 ‘코델리아’는 자녀의 의무에 따라 아버지를 사랑할 뿐 그 이상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성을 잃은 ‘리어왕’은 첫째와 둘째에게 땅을 모두 나누어 주었지만 결국, 두 딸들에게 계획적인 냉대를 받고 걸인 행세를 하며 왕국을 떠돌아다닙니다. 일세(一世)를 호령하던 왕은 미쳐버렸고 그의 자식들은 모두 젊은 나이에 불행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런 비극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며칠 전 재산문제로 70대 부부가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오래된 방앗간이 재개발로 인해 가치가 오르자 자녀들과 의견차이로 언쟁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빨리 팔고 목 좋은 곳에서 다른 일을 하고 싶어 했고, 둘째는 자신의 몫을 미리 받아 요즈음 유행하는 ‘스타트업’을 창업하겠다고 우겨 다툼이 있었다며 하소연했습니다. 


요즈음 ‘老老상속’ 문제가 화두입니다. 이 말은 노인이 된 자식에게 재산을 상속하는 것으로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더라도 자신을 부양하지 않을 것을 염려한 일본 노인들이 재산을 죽을 때까지 자식에게 증여하지 않는데서 유래한 신조어입니다. 그래도 “이왕 줄 거 빨리 주며 어때” 하고 절세(節稅)의 장점 때문이라도 조금이라도 빨리 증여하려는 부모가 많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세상만사(世上萬事) 세금을 좀 아꼈다고 형제간 유산을 가지고 벌이는 분쟁을 막지는 못하는 법입니다. ‘리어왕’은 자신의 불완전한 사랑과 감정에 휘둘린 나머지 이성을 잃었고, 오히려 아비와 자식 그리고 형제간 분쟁의 불씨를 키우고 말았습니다. 


고리오영감’과 ‘리어왕’ 입장이 바뀌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해보았습니다. 리어왕의 ‘불완전한 사랑’과 고리오영감의 ‘일방적 사랑’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지 않았을까요?  ‘고리오영감’은 ‘리어왕’처럼 자식에게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하지 않았으니 딸들에게 서운함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을 것이고, ‘리어왕’은 조건부 사랑이었으니 그의 마지막 순간 남기고 떠난 재산 때문이라도 딸들은 마지막 곁을 지키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그림자 같은 존재입니다. 인생의 시간이 흘러 정오(50代)가 되면 자식과 그림자였던 부모는 한 몸이 됩니다. 해가 기울면 그림자는 점점 멀리 사라집니다. 봉양(奉養)은 부모를 모시는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내가 그 ‘그림자’와 한 몸이 되어서, 나를 돌보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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