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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ielraum Oct 05. 2023

존재하고 있어도 보이지 않았습니

보이지 않아도 ‘떨림’은 있습니다. 고로, ‘떨림’은 존재입니다

지난달 고등학교 동창모임에서 친구가 저에게 그러더군요. 친구야! 넌 너의 브랜드를 잘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아” 라고 말입니다. 이런 말을 해주는 친구가 정말 고마웠습니다. 친구가 생각하는 저의 브랜드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2년전부터 신문 지면(紙面)을 활용해 50대의 삶과 고민을 글로 표현하고, 강연하는 저를 보면서 퇴직 후의 모습을 상상했을 것입니다. 


믿지 않을지 모르겠지만(친구와 직장동료들) 저는 오랜 시간 ‘자격지심(自激之心)’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누구나 이런 생각 한번쯤 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저 혼자만의 생각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을 것입니다. 저는 이 생각을 떨어 버리는데 솔직히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직장에서 동료와 비교하고 또 비교당하면서 점점 저는 소극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존재하고 있어도 보이지 않은 사람처럼 된 것이지요. 


한 때 저는 스스로를 과장하고 포장하는 일에 몰두한 적 있습니다. 부족한 스펙을 채우려 학교도 다녀보고, 자격증 공부에 몰두하고, 그것도 부족해 네트워크 형성이라는 이유로 온갖 모임에 나갔던 적이 있습니다. 높은 곳을 올라가려고 긴 사닥다리의 도움을 받으려 애쓰기도 했습니다. 즐겁지 않은데 웃어야 하고, 슬프지 않은데 슬픈척하는 제 모습이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무대에서 공연하는 삐에로 같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물리학자 김범주교수의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라는 책은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티끌같이 사소해도 천금같이 소중하다”는 말이 헛된 욕심과 욕망으로 가득한 제 가슴을 달래 주었고,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하나같이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작은 원자핵을 ‘전자’가 멀리서 감싸고 있는데, ‘원자’는 허공이나 다름없다고 그러더군요. 허공과 다름없는 ‘원자’들이 모여 인간이 되고, 인간세계 바깥의 우주도 허공이라서 허공가운데 인간은 하나의 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점과 점, 우연과 우연,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 서로 모여 참 인연을 이어간다는 말이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는 어느 방송에서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사실, 물체를 이루는 ‘원자’의 수준으로 내려가면 ‘전자’ 같은 기본입자들은 서로 구분조차 힘들만큼 완전히 똑같습니다. 우리가 보는 물질은 그 자체로 실체가 아니라 그 뒤에 숨어 있는 형상의 결과물에 불과한 것이에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었습니다. 철저한 문과쟁이 제가 물리학자의 책과 얘기를 듣고 이렇게 위로를 받을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세상 속의 아름다움과 소중한 존재들은 잘 눈이 띄지 않는 모양입니다. 나의 존재가 소중한 것은 애정 어린 마음과 따뜻한 시선으로 보아야 볼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을 깊이 있고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요소들은 우리가 마음을 쏟기만 하면 우리 주변 어디에나 숨어 있습니다"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中에서)


니체도 저를 격려하고 위로해주었습니다. “있는 것은 아무것도 버릴 것이 없으며, 없어도 좋을 것이란 없다” 니체는 존재의 필연성과 존재의 의미를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으로 저를 다독여 주었습니다.    

‘디오니소스’는 그리이스신화에 등장하는 포도주의 신이고, 모든 식물의 생육을 다스리는 신입니다. ‘디오니소스’의 로마씩 이름은 ‘바쿠스’인데 ‘싹’을 뜻하기도 합니다. 한 알의 씨는 땅속에 묻혀 긴 겨울을 나고 봄이면 생명을 피웁니다. 그리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은 뒤 다시 흙속으로 돌아가는 이 평범속에 비범함을 깨닫는데도 솔직히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나’ 라는 존재도 자연의 한 씨앗입니다. 한 씨앗으로 태어나 한 생을 살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육체는 죽음을 통해 먼지가 되어 사라지지만 ‘원자론’의 입장에서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흩어지는 일일 것입니다. ‘원자’는 불멸하니까 인간의 탄생과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니, 삶과 경쟁하고, 비교하는 욕망의 현장에서 너무 괴로워할 것도 없고 따질 것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저 겸손히 생육을 다스리는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삶을 받아들이며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떨림과 울림’ 저자 김상욱 교수는 우주는 ‘떨림’이라고 했습니다. 정지한 것들은 모두 떨고 있다고 말이죠. 소리도 ‘떨림’이 되고, 빛도 ‘떨림’이며 세상은 볼 수 없는 ‘떨림’으로 가득하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삶의 현장에 존재하는 수많은 우연과 우연, 점과 점이 모여 이 세상과 우주를 연결하는 ‘떨림'에 인간은 ‘울림’으로 반응한다고 하였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떨림’ 이 있습니다. 고로, ‘떨림’은 존재입니다. 

저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재주를 겨우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쓰는 이 글들의 ‘떨림’이 누군가에게 ‘울림’이 되고 그것이 또 다른 ‘떨림’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울림’이 되는 소박한 소망으로 글을 간신히 써 내려갑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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