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어느날 아침마다 잠에서 깨었을 때 집에 인기척이 없거나 할머니 방 문이 굳게 닫혀있는 날이면 덜컥 겁을 먹고는 했다. 어렸을 때도 그랬었지만, 할머니와 함께 한 30년이 흘러가고 나도 나이가 들고, 또 할머니는 더욱 늙어가며 그 공포는 보다 다른 구체적인 이유가 되었고 현실적인 두려움이 되었다. 할머니과 내가 단 둘이 살기 시작한 스물 대여섯 남짓부터는 더욱.
장례는 성황이었다.
발인 전날, 이모들과 다른 어른들은 나에게 영정을 맡기기로 정했다. 그건 일종의 배려였고, 나 또한 내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지만, 벌을 받는 기분이었다. 빈소에서 영정을 꺼내든 순간부터, 나는 제일 앞장서서 걸어야 했다. 나는 언제나 스스로 선두가 어울리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건, 두려웠다.
화장을 마치고 할머니의 육이 불타고 남은 분골이 함에 담겼다. 봉안당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나는 영정을 끌어안고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할머니에게 아직 육신이 남아있다면, 이제 푹 쉬시라고 꼬옥 안아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한결 홀가분해진 것 같았다. 봉안당까지 한시간 남짓한 길 동안 아침 햇빛을 받으며 나는 영정을 꼭 쥐고 앉아 꼬박 잠이 들었다.
우리의 육이 낡고 바래어 우리에게 죽음을 가져다주는 것일까? 아니, 우리의 영혼도 점점 낡고 닳아가는 건 아닌가? 생과 사의 경계를 가르는게 단지 육의 건강함이라면, 우리는 어째서 스스로의 삶이 끝나는 때를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할머니에게 젊고 건강한 육이 있었다면 과연 지금 할머니의 삶은 행복했을 것인가? 삶을 이어감이 의미있을 수 있는 시간은 과연 영원한가? 때로는, 그 영혼이 육보다 이르게 다하여 육신을 그저 미처 내려놓지 못한 짐덩이로 전락시키는건 아닌가?
왜 우리는 바래지 않은 채 영원할 수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