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최근 몇달은, 매일이 바닥을 치고 매 번 일어나는 사소한 걸리적거림들마저 화가 나게 만드는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점점 누적될 때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고 사소한 짜증과 화가 늘었으며 잠조차도 자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됐다. 근래 들어 약간의 여유를 찾을 때까지 그러했다. 그러다 이 영화를 봤다. 자연히 마음이 복잡해졌다. 아니, 그렇다고 누굴 죽이고 싶어진건 아니고.
이 영화는 결국 모멸과 파멸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그토록 다른 사람을 폄하하고 모멸을 주어도 되는가? 직업 때문에라도 나는 그 홍수 속에 노출되어 사람들이 서로를 경멸하는 일들을 무수히 본다. 사람들은 본능적이다. 본능적으로 자기보다 약한(혹은 불리한) 자를 찾아내어 괴롭힌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렇게 하더라도 총에 맞거나 머리가 쪼개질 일이 없으니까. 농담 같다고? 조커가 하는 농담과 비슷하지 않을까?
물론 단지 현재의 삶이 불행하다고 해서 그 삶이 바로 파멸로 이어지진 않는다. 매번 바닥을 치는 날이 계속 될 때, 삶이라는 무대에서 그저 잠깐 떨어진 거고 다시 올라갈 무대가 건재하다는 막연한 희망이라도 있다면 몇 번의 개같은 날로 인생이 망가지지는 않는 법. 하지만 그 무대가 가짜이자 환상이고, 내가 대면하고 있는 바닥이 그저 끝이 아닐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그런 개같은 날의 오후들의 끝은 그저 내일은 조금 더 낫겠지, 하고 잠드는게 아닐 수도 있는 것.
모든 캐릭터는 변화가 있어야 하고 변화의 트리거가 있어야 한다. 히어로/빌런의 서사에서 이 트리거는 그 캐릭터를 구성하는 기초의 거의 전부다. 지금까지 조커의 트리거들은 어땠나? 약물통에 빠지고, 일상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들을 당해서 입을 찢었다. 하지만 이번 조커가 그만큼 와닿는(이해든 공감이든) 이유는 그 트리거에 있다. 우리가 약물통에 빠질 일이 있나? 하지만, 이번 조커의 트리거는? 우리도 누군가를 무시하고 다른 이의 한계를 시험하며 살지는 않았나? 거기서 바로 다가오는 거다. 이 영화가.
아서 플랙은 영화 내내 바닥으로 떨어지지만, 그가 한계를 넘어버리는 건 결국 어머니와 자신의 꿈, 그리고 장애의 원인 같은 그의 삶의 근원들이 모두 거짓 혹은 기만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리는 그 순간이다. 그렇게 그가 올려다보던 무대는 사라졌고, 조커는 바닥에서 춤을 춘다.
이 영화가 완벽하지는 않고 감점거리는 무수히 많다. 캐릭터를 감안해도 다소 러프한 편집 뿐만 아니라 모든 노골적인 표현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단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상회하는 수많은 가점거리들이 이 영화를 가치있게 만들어 준다.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조각된 이 조커는 우리가 아는 그 조커가 됐지만, 여전히 더 이상 코믹스라고 하기엔 너무 평범한 삶에 밀착되어 있다. 우리의, 나의 삶이 그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정도만 다를 뿐 그런 일들이 실제로 무수히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일상에서 슈퍼히어로 같은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왜 빌런과 같은 악인이 탄생하지 않도록 하는데 신경쓰지는 않는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의 하루가 우리 때문에 바닥을 치지는 않을까? 그 바닥을 마주한 그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조커가 대변하는건 인종이나 성별이 아니라 그런 삶의 위치이다. 아서 플랙과 자신의 삶을 손쉽게 선긋고 폄하해버리는 주변의 태도가 그의 광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무수히 바닥을 치는 날이 이어져도 누군가를 쏘거나 찌르지 않는건 단지 총과 가위가 우리 손에 없어서인가? 아니, 제발 그건 아니길 빈다. 그것보단 많은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타인에게도 만들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