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2016년과 2017년 사이의 겨울, 매 주말이면 차를 몰고 샌프란시스코에서 LA까지 600km, 약 편도 8시간 정도의 거리를 왕복으로 달리곤 했다. 곧게 뻗은 한밤중의 도로를 그렇게 오랫동안 110km/h 이상으로 내달리면, 어느 순간부터 속도감은 사라지고 차를 타고 있다는 느낌도 없이, 나를 두르고 있는 이 차가운 철제 외피와 바퀴는 사라지고 그저 공원을 산책하는 감각과 다를게 없어진다. 운전은 결국 그만큼 습관에 의존하고, 그 습관을 깨는 건 이따금씩 생기는 돌발 변수들 뿐. 그러나 그 변수들이 나타날 때, 즉 그 감각이 깨어질 때 갑자기 삶이 느껴진다. 정말로 신기하게도.
7,000RPM 너머에 뭐가 있는지 지금까지는 알아본 적도 없고 또 아마 앞으로도 없을거다. 하지만 이런 감각과 비슷한게 아닐까. 뮬산 스트레이트를 홀로 내달리며 H A P P Y 를 내지르는 켄 마일스에게서 뭔가 동질감을 느꼈다면 가소롭지만, 또 신기한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서툰 드라이버인 우리라도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나. 내 생에 가장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지만 반대로 그저 우두커니 서있는 것 같은 기분이.
수많은 야심가들이 등장하는 군상극으로서 우리는 각자의 입장을 등장인물에 빗대어 볼 수 있을거다. 켄 마일스, 캐롤 셸비, 리 아이아코카, 헨리 포드 2세, 엔초 페라리, 레오 비브 등등. 누구라도 둘 이상의 입장들 사이에 섞여서 일을 해 본 경험이 있다면, 이 영화는 난전으로 보인다. 승자와 패자, 혹은 선인과 악인의 이분법으로 이들을 나눌 수가 없으며 모두가 서로의 득과 실을 교환한다. 때문에 레이싱이라는 직접적인 시청각적 즐거움 외에도, 이들의 아전투구를 보는 파워 게임이 이 영화의 백미다. 그들의 집념이 우리의 엔진을 끓어오르게 만든다.
모름지기 레이싱 장면의 구성이란 뻔할 수 밖에 없다. ‘추월’ 이라는 단 한 장면을 위한 빌드업의 총집합이다. 문제는 누가 하더라도 똑같이 연출할 수 밖에 없는 추월의 순간이 아니라, 그 이전까지의 빌드업을 어떻게 세련되게 연출하느냐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연출의 코드는 ‘집념’ 이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집념에 사로잡혀 있고 그 집념을 드러내는 장면마다 카메라는 앞을 향해 전진하며 또 노래는 상승하는 신디사이저를 내뿜는다. 영화의 첫 레이싱에서 켄 마일스가 우승해버리는 장면을 보고나면 깨닫는다. 이 영화, 엄청나겠구나.
실화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가지는 모든 딜레마와, 그리고 그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을 모범적으로 배운듯, 이 영화는 불필요한 사실은 아예 언급하지 않는 길을 선택했다. 사실 그래서 일종의 우화 같다. 매우 좋은 의미로. 그렇게 해서 관객들에게는 몰입의 자유를 주었고 이들이 가진 ‘집념’ 을 보다 명확하고 절절하게 만들었다. 드라이버라면, 그리고 조금이라도 자신의 일에 욕심을 가졌던 이들이라면, 이들이 절절히 와닿았을거다.
삶에 집념이 필요한가? 나는 그런 것 같다. 집념이란 수많은 다른 코드와 바로 연결되어 하나의 사념 덩어리로 통용되기 마련이다. 집념, 투지, 불복, 야심. 나는 그런게 있는 일꾼을 좋아하고 동경하고 존중한다. 하지만 그 집념의 마지막 지점이 꼭 모두에게 똑같이 대단하고 가치있을 필요는 없다. 오직 나에게만 값어치가 있는 것이라도, 그것이 뮬산 스트레이트의 켄 마일스처럼 도저히 거짓될 수 없는, 진실된 인생에서 단 하나의 순간이라면.
드라이브 하고 싶은 영화, 일하고 싶은 영화, <포드 V 페라리>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