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한동안 준비해왔던, 각오로 다져왔던 것을 모두 무너뜨리는 시기가 한 번 쯤은 온다. 그 각오의 무게는 지나온 시간에 당연히 비례할진대, 그게 나쁜 방향이라면 그저 절망하겠지만, 갑자기 전혀 다른 긍정적인 방향으로 모든게 좋게 해결되어 버린다면, 그냥 맥이 탁 풀려버리는 느낌이다.
마치 내가 얻어낼 결과란 그동안 쌓아온 시련과 전혀 무관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네가 네 앞길을 계획대로 헤쳐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가소로운지는 아냐는 듯이. 왜 그 긴 시간을 지나 이제서야, 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게 만드는.
누군가 지금 네게 필요한게 이것은 아니냐며, 대단한 선물을 주어 받았는데 사실은 내가 이미 크게 마음을 먹고 내려 놓았던 것과 같은 물건인 기분. 하지만 아니라고 내버릴 수가 없는, 다시 끌어 안을 수 밖에 없는.
미날생에서 담당자의 메일을 받은 순간 웃어버리고 마는 그 장면에서 김닭이 어떤 감정이었을지는 예전에도 이미 짐작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무엇인지 알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