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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쾌대 Jul 21. 2024

글쓰기 여행방

오늘 일지

나이 칠십 드신 제자 한 분이 '매일 글쓰기'의 경지에 도달하셨다. 무엇이 그걸 가능하게 했을까?


작년 <진형중고등학교>에서의 '글쓰기 산책방'에서 8개월 동안 취미반(기초반)을 운영하고, 연말에는 조촐한 문집까지 엮어서 냈다. 즐겁고 보람있던 추억들... 그중 한 분이 올해 <남서울평생교육원>에서 개설한 작가반(중급반)인 '글쓰기 여행방'에 등록하셨는데, 글쓰기를 향한 열망에 불이 붙었다. 내면에서 뭔가 봇물 터지듯 날마다 소소한 일상의 얘기를 쏟아내시고 있다. 아마도 연말쯤에는 수필집출간하실 것 같다.


오늘 2주 동안의 여름 휴강을 앞두고 수업 후에 클래스 제자들과 점심 식사를 나눴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분께 작년에 처음 기초반 문을 들어서실 때의 모습이 생각난다고 말씀드렸다. 검은 마스크를 쓰고 너무나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며 눈치를 보시던 이름없는 들꽃 같은 행색 남루한 할주머니(할머니+아주머니)의 머뭇거리시던 행색을. 지금은 마스크를 벗으셨는데 화사하고 자신감 넘치는 자세로 중급반 클래스의 어엿한 주축으로 자리를 잡으셨다. 그건 비단 코로나가 종식된 연유만은 아닐 것이다.


평생을 누군가의 아내로, 또 누군가의 엄마로 지내시다가 작년 문집을 발행하면서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이 박힌 문서를 손에 쥐는 경험을 하셨다. 맞다. 그분은 인생 말미에야 비로소 자기 이름, 즉 정체성을 찾은 것이다. 문학에서 문文이란 글자는 '무늬'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그분은 어쩌면 전쟁터와도 같은 삶의 한복판에서 지난한 사투를 벌이며 시나브로 닳아 없어져 사라져 버린(잃어 버린), 그래서 주민등록 재발급을 할 때 애를 먹이곤 했을 지도 모르는 자신의 열 손가락의 지문을 이제서야 다시 되살리는 노력을 하고 계시는 것이리라.


'문학마을'에서는 수도 없이 많은 들꽃이 피고 지며,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 오고 또 어딘가에서는 석양이 물들기도 하는 일상이 저물어가기도 한다.


#viva_la_v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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