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플랫폼에서 메디컬 플랫폼으로, 업계를 초월한 이직의 이면
WMW working mom's work를 이야기하려 해요.
워킹맘으로 산지 35개월, 이 세상 수많은 워킹맘들을 대변할 수 없지만 그럴 생각도 없고요.
각자 인생, 각자 방식으로, 각자 주어진 환경에 맞게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잘 사는 것으로,
행복한 워킹맘의 무던한 일 이야기, 시작합니다.
#이직
#업계를초월한이직
"나 의료업계로 이직했어,"
"안녕하세요, 제가 이직해서요. 의료쪽이라 이제 더 이상은 전 회사일은 모르겠네요."
라고 말하는 최근의 일상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무려 6개월이 지났지만, 끊길만 하면 연락이 드문드문 오는 옛 업계 지인들, 업체 사장님, 브랜드 실장님, 대형 유통업계 실무자들은 내 이직 소식에 의아해하고 또 의아해했다. 무엇보다 나의 최측근들은 반응이 하나같이 이랬다.
"응, 그래서 어떤 의류인데?"
"아니. 의료!"
"의류? 말고 의료? 병원? 의료? 어쩌다가?"
그리고는, '완전 새롭다'의 반응이 이어졌다. 그리고 대부분 아니 모두들 나의 이직을 반겼다. 그동안 고생많았다는 따뜻한 인사와 함께, 동종업계에 있는 친구들은 그렇지 않아도 지겨워 죽겠는 '패션업계' 진짜 잘 옮겼다며 본인들 일처럼 속시원하게 환호했다. 다른 분야도 그렇겠지만 내가 만난 패션업계 사람들은 거의 동종업계로 이직을 한다. 내가 말하는 동종업계란, 티몬에서 쿠팡으로 가는 수준의 이직이다. 실제로 패션업계는 그런 이직사례가 매우 많다. 예를 들어, 티몬에 다니다가 타다로는 안 갈아탈 것 같은 개인적인 생각이다.
아무튼, 어딜가나 잘할 거라고(지인 확실) 격려와 응원을 해주고 게다가 스타트업이라 하니 너무 신기하다고 했다.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창업의 경험과 브랜드 런칭을 힘들게 이겨내고 다시 한번 스타트업으로 일터를 옮기다는 것은 어떤 것이냐며 궁금해했다.
#변화
#도전
내 경험에 빗대어 보자면, 회사의 규모와 네임밸류가 작아질수록 업무의 권한과 기회가 정확하게 증가한다. 큰 회사를 다니던 시절, 나는 대한민국에 무수한 계열사와 자회사가 있는 S그룹의 수많은 직원들 중 한명으로서, 8층 한자리를 차지하던 누군가 중 하나일 뿐, (아마도 내가 특출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존재감은 0이었다. 내가 오늘 휴가를 쓰지 못하는 것은 눈치가 보여서일 뿐, 나의 부재로 회사가 마비되거나 누군가 피해나 손해를 보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작은 사업장을 오픈했던 자영업자의 시절, 창업의 이면에는 뼈 때리는 성장의 매가 하루를 빼놓지 않고 나를 반겼다. 오늘은 이런 욕을 먹고, 저런 수모를 겪고, 내가 사는 세상은 모두 나처럼 힘든 하루살이 자영업자로 보였다. 내가 굽 있는 신발과 핸드백을 들고 출근하던 시절이 있었나 싶도록 세상은 자갈밭이었다.
브랜드 컨설팅이라는 작은 (중)소기업에 다닐 땐 이럴 땐 이렇게, 저럴 땐 저렇게, 나처럼 해봐요 요렇게~ 노래가 생각나리만큼 변화가 무쌍했다. 퍼포먼스는 대기업처럼 일은 내 사업처럼 해야 성과가 보였고, 복지나 보상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니가 더 열심히 하면...?' 이런 단서를 내 스스로 먼저 던지곤 했다. 나를 생각하는 것인지 회사를 위하는 것인지, 나는 누구인지를 넘어 이 세상은 뭔지.... 에 대한 심각한 자기 성찰도 때때로 찾아왔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경력을 살려, 나는 스타트업에 정착했다. 이직을 원하던 시점, 자연스럽게 이력서를 오픈했고 원했던 회사, 원하지 않는 회사 등 업무가 비슷한, 업무의 예측이 가능한 자리에서 면접을 봤다. 그리고 고민했다.
#무엇이달라지는가
이직을 통해 바뀌는 것과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연봉, 환경, 동료가 이직을 통해 바뀐다. 연봉이 대체로는 높아지고, 환경은 개선되며, 보기 싫은 동료가 사라지는 '더 나은 수준'을 지향하는 이직이 대체적으로 이상적이다. 그런데 조금 더 나은 조건과 보상을 위해 내가 늘상 하던 손에 익은 업무를 뒤로하고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기엔 내 마음이 그러지 말자고 했다. 무엇이 나아지는가에 대해 집중하고 계산하는 순간, 무엇이 달라지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구하지 못할 것 같았다. 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구할 수 없는 눈을 갖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동안 수백개의 브랜드를 컨택하고 만나고, 하하호호 떠들며 미팅을 진행할 때 마다 '다른 것' 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는 것이 모든 브랜드와 회사의 숙명이라고 생각했다. '다름'이야말로 생존의 1법칙이 되었고 그것은 사람도 마찬가지. 그리고 일도 마찬가지다.
#이직의이유
#이직의목표
물론 이직이라는 것이 명확한 목표가 설정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우선 킵고잉하면 된다. 보상이든. 환경이든, 출퇴근 거리든 누구에게나 간절한 무엇이 이직의 원천이 된다. 본인이 설정한 목표만큼 본인을 완성하는 주관이 있을까. 목표에 맞게 킵고잉하면 된다. 나의 경우는 이러했다. 이직을 통해 세상을 읽고 싶었다. 내가 읽는(처한) 세상 말고, 다른 세상을 읽고 싶었다. 그러려면 온전히 다른 업계로 가야만 했다. 나도 그것이 의류에서 의료로 획기적인 선택이 될 줄은 몰랐다. 같은 업계에 정체해 있을 때 내 손은 아주 빨라졌지만, 내 머리는 정체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아이를 낳고, 여러 서비스를 경험하고, 신문물을(주로 스타트업에서 발신하는 상품과 서비스에 편의를 느끼고 감동했다) '엄마'로서 내 자신이 성장함과 동시에 내 감성, 감성지능은 더 유연해졌다고 생각이 드는 시점이 찾아왔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라이프스타일이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내 상식과 일상 기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을 경험해야 내가 책으로, 유튜브로 세상을 읽는 인사이트가 현실화되는 무엇인가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들을 통해 보는 세상은 어떤 시야인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해도를 넓힐 수록 서비스 기획자인 내 역량이 다각화해서 향상될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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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never want to be criticized, for goodness' sake don't do anything new." / Jeff Bez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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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의류에서 의료로 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