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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ody Jan 21. 2020

#004 다시, Leeds

익숙함과 새로움의 경계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들 Leeds (리즈)를 알고 있다. 인터넷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리즈 시절"은 한 번쯤 들어봤으리라. 그 "리즈"가 바로 내가 있는 이 곳, 영국 West Yorkshire에 자리 잡은 작은 도시 Leeds 인 것. 비록 작은 도시라 하였지만, 내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그래도 영국에선 중간 사이즈 정도의 도시는 되지 않을까 싶다. 여기 도착한 지 1주일째 되는 오늘, 미팅 준비를 핑계로 학교에 나가지 않고 머물고 있는 숙소에서 일을 하고 있다. 영국답지 않게 파란 하늘이 보이는 창가에서 랩탑을 펼쳐 놓고 졸다 보니 어느새 해질 무렵이다.


재작년부터 Leeds에는 1년에 한 번 씩 오고 있다. 처음엔 3주였고 지난번엔 단 하루 이번엔 5주 일정으로 여기에 와있다. 공교롭게도 지난 방문 모두, 11월, 6월로 영국을 즐기기에 그다지 좋은 계절은 아니었다. 6월은 좀 나았지만 그나마도 열흘 간 머무는 동안 내내 비가 오고 구름이 많았던 데다 Leeds에 온 날은 아주 날씨가 변덕을 부려 런던으로 돌아갈 땐 폭우까지 쏟아졌다. 썩 좋은 계절은 아니지만 원래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도 있고, 3주 정도 머물렀던 첫 방문에서 친해진 사람들, 일하면서 가까워진 동료 등, 연고지가 없는 곳 치고는 아는 사람이 제법 있어서 마치 어딘가로 돌아온 기분과 함께 그동안 쌓인 이야기들을 나누는 건 참 즐겁다. 어디에 가면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도 이미 파악하고 있고, 도시의 지형도 제법 파악한 지라 헤매지 않는 것은 피로감을 주지 않아서 여러모로 편하기도 하다. 지난 Nashville에서는 적응하는데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은 걸 생각하면 이건 정말 대단한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첫 번째 방문에서는 연구소의 Alumni secretary를 소개받아 그녀의 집에서 3주간 머물렀었다. 유럽 내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라는 공원 근처에 자리 잡은 그녀의 집은 온통 초록으로 둘러싸여 안정감이 있었고, 매일 집에 와서도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었기에 외롭지 않고 영어로 말하는 연습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역시 3n년간 외동딸로 살아온 나에게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3주간 함께 한 공간을 나눠 쓰는 건 역시 버거운 일이었다. 심지어 2주째 될 때쯤이었던가 그녀 집의 샤워 시설이 고장 나는 바람에 연구소의 샤워를 아침 일찍 빌려 써야 하는 날들이 계속되었지만 이미 친해진 그녀에게 중간에 나가겠다고 할 수도 없었고, 결국 불편을 감당하면서 방문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이번에도 함께 지내자는 그녀의 호의는 너무 고마웠으나 한 달 이상을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잘 지낼 자신이 없어 이번에는 학교 근처의 에어비앤비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 지낸 3주간의 시간이 나를 Leeds에 더욱 가깝게 만들어주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Leeds에 도착하고 맞는 첫 주말. 시차 적응도 좀 덜 된 것 같고, 해야 할 일도 있었기 때문에 멀리 갈 순 없을 것 같아서 기분 전환 겸 가까운 곳으로 움직이고 싶었다. 이번에는 룸메이트도 없으니 혼자서 가볍게 움직일 수 있는 그런 곳을 찾아보는데 도시가 작아서 그런가... 이미 지난번 3주간의 방문에 버스를 타고 1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곳은 거의 다 가 본 것이 아닌가. 영국에서 이 계절에 좀처럼 보기 어려운 파란 하늘이 저렇게 예쁜데 집에만 처박혀 있는 건 스스로 용서할 수 없었다. 조금의 고민 뒤에, 버스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내가 아직 가지 않은 곳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길을 나섰다. 그렇게 도착한 Kirkstall Abbey. 


지난 주말의 Kirkstall Abbey. 너무나도 완벽한 날씨였다.


사실 오래된 교회도, 초록이 가득한 잔디밭도 그렇게 새롭지는 않다. 아일랜드에선 논밭 한가운데에 이런 교회들이 수두룩하게 있었고 영국에서도 맘만 먹으면 동네마다 하나씩 찾아볼 순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이 풍경을 새롭게 덧입혀 준 건 역시 좀처럼 보기 힘든 파란 하늘과 눈부신 햇빛. 구름 한 점 없는, 미세먼지 한 톨 날아다니지 않는 이 하늘이 익숙한 Leeds를 새로운 Leeds로 느껴지게 해 주었다. 이렇게도 화창한 Leeds는 좀처럼 보기 어려웠는데... 변덕이 심한 이 곳 날씨도 주말 내내 한 번도 변덕을 부리지 않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디에서나 이렇게 맑았다. 혼자 들어간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 수다도 떨고... 빛나는 하늘과 낯선 사람이 익숙한 나의 Leeds에 새로운 색을 입혀주었다.


내일이면 여기 도착한 지 꼭 1주일이 된다. 아직 4주의 시간이 더 남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빠르게 지나가겠지. 남자 친구를 만나러 아일랜드에 갈 것이고 (그 여행 메이트는 결국 남자 친구가 되었다.) 축구를 보러 Manchester에도 갈 것이고 연구소 친구들과 작은 주말여행도 떠날 계획이다. 그리고 떠나기 전 주엔 남자 친구가 오겠지. 앞으로 남은 4주가 어떤 새로운 색으로 입혀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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