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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ody Dec 13. 2019

#001 여행의 준비

무계획 여행자의 여행 계획 세우기

고백하건대 나는 전혀 계획적인 성격이 아니다. 나의 호불호가 뚜렷한 성격이 계획적인 성격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무계획이 곧 계획이라는 것이 나의 철학이며, 여태까지도 그렇게 살아왔다. 특히, 이런 성향은 여행에서 크게 빛을 발하여 목적지 이외에는 아무것도 정하지 않는 것이 나의 여행 스타일이었다. 계획을 굳이 세운다고 한다면, 여행지에 도착하여 가고 싶은 곳에 가기 전 날 밤 숙소에서 검색을 하는 게 전부라고 할까... 여하튼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는 편은 아니었다. 아마도 혼자 하는 여행이 많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유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다가 2 , 절반은 충동적으로 그리스로 휴가를 떠나게 되었는데, 거의 십몇  만에 친구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 되었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은  맘대로 갑자기 일정을 변경할 여유는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는 . 그러니 친구와  상의하여 어디를 어떻게 갈지 가서 무엇을 할지 대략의 틀이라도 정해 놓아야 했다. 그때 처음으로 Lonely Planet 구입하였고  책을 읽으면서  곳의 분위기, 역사 등등을 미리 파악해 놓으니 아무 계획이 없었을  보다 내가 있는 곳을  찬찬히, 깊게 즐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후로는 어디론가 떠날 때마다 Lonely Planet 꼬박꼬박 구입하여 정독하고 있다.


여행 메이트가 되어 준 아일랜드 청년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을 물어본 뒤 그 정보를 토대로 이번에도 역시 Lonely Planet을 틈틈이 읽으며 10일 동안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할지 열심히 고민하였다. Lonely Planet도 청년도 주로 대서양 해안선 주변의 장소들을 언급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결국 나온 코스는 6박 7일 대서양 해안 코스를 드라이브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고, 자동차 여행의 대미는 오로라가 접수하게 될 것 같다.


일하라고 사 준 아이패드가 이렇게 유용한 줄 이번에 새삼 깨달았다...


Dublin에서 기네스 공장이나 견학하고 낮에는 카페에서, 밤에는 바에서 뒹굴거리다 시간 나면 청년이 있는 Kilkenny, 그렇게나 유명한 Galway나 갔다 오고 31일엔 오로라를 보러 가자!라는 나의 계획은 10일을 꼬박 동행해주기로 한 청년(이라고 쓰고 운전수라고 읽는)이 함께 해주는 덕분에 6박 7일 아일랜드 로드 트립이 되어버렸다. 일정 상 31일에 오로라로 내 행운을 시험해보는 건 좀 어렵게 되었지만 아일랜드 북쪽 Donegal에서 고즈넉한 2019년 마지막 날을 보내고 새해를 맞은 뒤, 새해 첫 밤, Inishowen에서 내 운을 시험해보는 일정이 되었다.


어찌어찌 7일 동안의 일정은 정해졌지만 나머지 3일 동안 뭘 할지는 전혀 모르겠다. Kilkenny 맥주를 너무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비슷한 Smithwick's에 가야겠다는 것 이외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 Tipperary, Cashel, Wexford도 가봐야지라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아마도 이건 7일을 뺑 돌고 남은 내 체력에 달려있을 것이다. Dublin에는 집에 가는 날 빼고는 갈 시간이나 있을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7일 동안 들리게 될 곳에서는 또 어디에 갈지 무엇을 할지 좀 더 생각하고 싶지만, 성실하지도 치밀하지도 못한 나는 여기까지 계획을 세우기 위해 검색을 하고 Lonely Planet을 정독하느라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린 기분이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여행이 아니라 출장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Lonely Planet은 벌써 손 때가 탔고 Michael Collins의 전기도 나름 재미가 있어 술술 읽고 있다


이번 여행 준비가 다른 여행 준비와 조금 다른 점은 내가 아일랜드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어 Lonely Planet 이외에도 역사에 관련된 책을 정독 중이라는 것이다. Lonely Planet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목적지 나라의 역사 및 문화를 짧게 설명한 후반부인데 가게 될 나라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도와주는 섹션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아일랜드에 대해서는 역사를 간결하고 알기 쉽게 잘 설명해주어 아주 도움이 되었고, 동시에 이를 통해 아일랜드의 근현대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여행 메이트에게 적당한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Tim Pat Coogan이 쓴 Michael Collins의 전기를 추천해줬고 미국 출장 갔을 때 아마존 프라임으로 좋은 가격에 구입해 그때부터 열심히 읽고 있다. Michael Collins가 아일랜드 독립을 포함한 근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인 만큼 그를 중심으로 한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 드라마틱하고 흥미진진하게 서술해서 어렵지 않게 읽히긴 한다만... 제법 두꺼워서 아무리 읽어도 페이지가 쑥쑥 줄지 않는 게 함정이다.


아일랜드하면 음악이 빠질 수 없지! – Mount Alaska와 The Pogues


독서와 함께 나름 준비랍시고 손댄 것이 아일랜드의 음악. 얼마 전에 U2가 내한하여 인터넷이 들썩들썩하였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들의 음악을 잘 알지 못한다. 아일랜드가 유명한 밴드를 다수 배출하였다고는 하지만 저는 잘 모르는걸요... 특히 내가 좋아하는 밴드가 대부분 영국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된 여행 메이트는 오기 전에 그래도 아일랜드 밴드 음악은 좀 들어봐야지... 라며 The Pogue를 추천해줬다. Wikipedia에 의하면 그들의 장르는 Celtic Punk라는데 지금까지 들어본 그들의 음악은 Punk라기보다는 전통 음악의 리메이크 혹은 변주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아일랜드 전통 음악에서 잘 쓰이는 악기들을 적절히 조합하여 펑크스러운 가사로 노래하는데 보컬인 Shane MacGowan의 목소리가 제법 매력적이다. 지금은 보컬의 알코올 중독 문제로 활동을 안 한다고 하던데...


Mount Alaska는 최근 발견해 한참 꽂힌 밴드. 나중에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으면 꼭 소개하고 싶은 BBC Radio 1의 DJ, Phil Taggart의 프로그램의 플레이리스트에 올라온 곡 때문에 완전 꽂혀서 매일매일 듣고 있는데 알고 보니 아일랜드 출신의 일렉트로닉 밴드였다. 최근 아마도 첫 앨범 "Wave Atlas"가 발표되었는데 그중의 첫 번째 트랙인 'Back to the Land, My Love'는 마치 북대서양을 마주한 아일랜드 해안에 대한 나의 이미지를 그들이 그대로 곡으로 만든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다. 드라이브할 때 꼭 틀어달라고 할 참이다.






출장 다녀오고 이것저것 밀린 일을 처리하며 망년회에 끌려다니다 보니 아일랜드 행 비행기를 탈 때까지 2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2019년이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이기도 하다. 시작부터 평범하지 않았던 아일랜드 여행은 2주 뒤 어떻게 시작될까. 공부는 적당히 하고 원 없이 즐기고 오겠다는 마음가짐을 장착해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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