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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Mar 01. 2024

엄마, 학교 가기 싫어. 그래도 가야지.

네가 선생인데...

1.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새 학기 증후군.


올해는 2월이 그나마 29일까지 있어서 위안이 되지만 항상 삼일절과 광복절은 1년 중 가장 우울한 날이다.


학생일 땐 학생만 학교 가기가 싫은 줄 알았다면, 교사가 되고 확실히 깨달았다.


누구보다 학교 가기 싫은 사람은 선생님이라는 사실을...(나야 나)


새 학기를 앞두고, 긴장과 번뇌, 소화불량과 위장장애, 불안과 조급합으로 심신이 피폐하다.


매해 하는 일인데 왜 그러냐고?


매해 맨땅에 헤딩이라서다.


매해 아이들이 바뀌고 매해 업무가 바뀐다.


조금 익숙해질라 하면 아이들은 학년이 올라가 버리고, 조금 알겠다 싶으면 업무는 바뀌거나 대폭 늘어난다. 미스터리다.


대체 언제쯤 익숙해지는 것일까.


15년 차인데도 왜 매해 이맘때는 신규의 두려움에, 아니 아는 두려움이 더 무서운 법이니, 미래에 대한 공포로 잠을 뒤척여야 하는 것일까. 미스터리다.


그러고 막상 3월 개학을 하면 놀랍도록 익숙한 포커페이스로 늘 하던 일을 하는 사람처럼 정신없이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겠지.

 

그래, 미래의 나야, 잘 부탁해, 너만 믿는다!




2. 이번 복직은 망했다.


첫 복직 후 매일이 우왕좌왕의 연속이었다. 이리 쿵 저리 쿵 부딪혀가며 때론 저돌적으로 때론 대충 뭉개가며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한 학기가 끝이 났다.


수업에 대한 만족감은 90점, 업무에 대한 만족감은 50점, 학교 생활에 대한 만족감은 70점.  뭐 이정돈면 과락은 면한 거니 나쁘지 않다.


예전이었다면, 내가 못한 것을 끊임없이 복기하며 자괴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왜 그렇게밖에 못했냐고 스스로를 달달 볶았을 거다. 


그러나 이제는 나 자신에게 그렇게 가혹하게 대하지 않는다.


평가기준을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꿨다. 남보다 얼마나 잘했느냐가 아니라, 스스로의 기준으로 패스인지 아닌지를 구분한다. 어떻게든 버티면 패스다. 이 정도면 합격이다. 땅땅땅.


이렇게 스스로에게 관대해진 이유는, 그러니까 자꾸만 압박하는 게 아니라,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를 달래 가며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는 내 신분의 변화를 감지하고 서다.


나는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냉정하게 말하면 나는 직업이 하나가 아니다.

오전 8시에서 오후 4시까지는 직장에 소속된 직장인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오후 4시부터 아이들이 잠드는 오후 10시까지는 엄마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하루가 24시간이라면 깨어있는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두 개의 직업바쳐야 한다.


기본이 투잡이다. 그러니 하나의 직업에 높은 기준을 세워버리면 다른 직업은 시작도 못하고 뻗어버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직장에서는 나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 아이들에게서 나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고로 나는 집에서의 역할을 위해서라도 직장에서 쓰는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 이게 내가 처한 현실이다.


미혼 때나 무자식 시절의 나처럼 직장생활을 할 수 없다. 망하더라도, 기대한 것에 못 미치더라도, 실수가 많더라도, 엉성하더라도 어떻게든 직장에서 일어난 일은 그 시간 내에  해내야 한다.


일단 퇴근하면 '직장에서의 나'라는 전원은 끄고 '엄마로서의 나'의 전원이 켜져야 한다.


처음 복직을 하겠다고 말하고 나서 너무나 앞날이 두려운 나머지 일이 손에 안 잡혔다.  스스로를 달랬다. 한 학기 일해보고 도저히 못하겠다 싶으면 다시 휴직하면 된다고... 비겁해 보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를 전장에 내보내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뒤는 남겨둬야 했다. 옛말에 삼십육계 줄행랑이랬다.


그럼에도 복직 전날 밤을 꼴딱 새우고 출근 당일에 위경련으로 병원에 갔다 와야 했다. 중간에 병원에 들렀다가 약을 먹고 다시 직장으로 들어가며 생각했다.


아, 이번 복직은 망했다.  


그럼에도, 망한 줄 알고 시작한 일은 생각보다 즐겁고 활기찼다. 하루하루 버겁지만 거북이만큼이라도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기뻤다.


아무것도 못할 줄 알았던 내가,

마치 늘 해왔던 일처럼 하루치 일을 하루 만에 해내고 나서 퇴근하다 보면  둥둥 뜨는 것 같았다. 스스로가 대견하고 조금 더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꼭 일을 해야겠다는 다짐도, 어떻게든 해내겠다는 일념도 없이, 다소 삐딱하게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일을 다시 시작했는데. 6개월 만에 휴직 생각은 사라져 버렸다. 일의 기쁨과 고됨을 온전히 느끼고 나서야 나는 일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직업에 대한 애정이 이리도 컸던가. 아니면 시간 동안 단절로 사람들과의 교류가 그리웠던 건가. 아무튼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이걸 다시 놓고 하기 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이 전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직업을 평생 놓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3.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남들이 아무리 추켜세운다 하더라도 스스로 납득할 수 없으면 자존감은 생기지 않는다. 반대로 아무리 남들이 비난하더라도 스스로 납득할 수 있으면 그 자존감은 남이 함부로 할 수 없묘한 힘이 다.


휴직기간 동안에 나의 자존감이 많이 무너지고 있었는데 그걸 그동안 몰랐다. 애를 셋이나 낳고 예쁘고 건강하게 잘 키우고 가정경제도 잘 꾸려간다고 스스로를 칭찬하고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다고 생각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로 충족되지 않았다. 내겐 눈에 보이는 성과가 필요했고 일상에서는 권태에 시달렸다. 


새로운 일, 새로운 도전에 대해 갈망하고 있었다. 어제와 똑같은 내일이 아니라, 당장 내일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르고 결정해야 하고 행동해야 하는 날들에 대해 소망하고 있었다. 권태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다.


망한 줄 알았던 복직이 결국엔 성공적이었다는 깨달음은 자존감에 큰 양분이 되어주었다.


나는  오랫동안 하지 않았던 일도 마치 어제까지 늘 해왔던 사람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요청하며 배워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 어떤 조직에 가도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점... 이런 것들이 자존감에 어마어마한 양분이 되어주었고, 그동안 내가 잃어가고 있던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새로운 일을 하면 뭔가가 내면에서부터 바뀐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새로운 일을 하는 것에 좀 더 마음을 열게 되었다. 오는 기회를 막지 않고 가는 기회를 붙잡지 않게 되었다. 스스로에게 되뇐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4. 모두의 사랑과 양해를 바랄 순 없다.


일에서 지적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에도 그러한 지적을 나에 대한 비난과 분리해야 한다.  실수와 오류들을 수정하기 위해서 배워야 하는 과정인데, 이것들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발전이 없다.  


때론 나의 상황을 이해받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때도 이 사람이 내가 미워서, 나를 싫어해서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자리에서 보이는 게 나와 다를 뿐임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자리가 다르면 보이는 게 다르니까.


모두의 이해와 양해를 다 구해가며 살 수는 없다. 때로는 질타도 받고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히 하루하루 살아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헤쳐나가야 할 때도 있다. 담담히 받아들이고 할 일을 해가며.

백 마디 설명보다 몇 분의 침묵이 나을 때도 있다.



다시 일을 시작하기까지 했던 많은 고민들과 미래에 대한 걱정들은 막상 닥쳐서 보면 그 나름의 해결책들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의 두려움은 그 어떤 위로로도 해소되지가 않았다.


오래 고민할수록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가 힘들다.


하면 안 될 것 같은 이유들은 너무나 잘 보이지만, 해야 하는 이유들은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고민은 짧게 하고 새로운 일은 일단 부딪혀가며 경로를 조정해야 한다.


만 서른여덟을 지나며 이런 사실을 깨닫고 경로를 하나씩 수정해가고 있다.  모든 과정이 삶이고 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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