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간편식 무체급 경쟁 속 닥터키친의 독특한 전략
2020년 9월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던 날. 신도림에 있는 현대백화점에 갔다. 자기변명을 하자면 수차례 미뤄왔던 약속이었다. 백화점 내부 전경은 한가로웠다. 스타벅스나 백미당 같이 항상 붐비던 매장마저 조용했다. 식당가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이곳 식당가에는 소녀방앗간도 입점해있다. 소녀방앗간은 농민들과 지속가능한 유통망을 구축하고 소비자에게 건강한 식사를 제공하는 소셜벤처다. 소녀방앗간 역시 고전하고 있었다. 손님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잠깐 본모습만으로 매장의 성쇠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 날만 혹은 그 찰나만 이상하게 손님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급감한 외식수요를 고려한다면 희망적인 기대는 갖기 어렵다. 코로나 19 영향으로 1분기에 급감했던 외식수요는 2분기에도 감소 현상을 보이고 있다. 반면 내식 수요는 호조를 이어가고 있다[키움증권. 산업분석 리포트].
특히 가정간편식(HMR)의 선전이 눈에 띈다. 국내 가정 간편식 시장규모는 2019년 3조7909억원으로 추산된다. 최근 5년간 82% 가까운 성장률을 보였다[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 보고서’]. 코로나 19 영향으로 올해 간편식 시장은 7조원 전망도 나온다. 가정 간편식이 외식의 대체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모습이다.
코로나 19가 잠잠해진다면 외식시장은 되살아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장담할 수 없다. 소비자들의 생활모습이 구조적으로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 조사 결과 지난해 전체 가구 수는 2089만가구로 집계됐다. 이중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30.2%. 이어 2인 가구 27.8%, 3인 가구 20.7%, 4인 가구 16.2% 순으로 나타났다[통계청, ‘2019년 인구주택총조사’]. 널찍한 식탁에 옹기종기 마주 앉아 식사하는 가구보다 TV나 유튜브를 앞에 두고 홀로 식사하는 가구가 많아졌다. 심지어 이 흐름은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대형 F&B기업들은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지난해 개최된 ‘2019 HMR 트렌드 대전망‘ 세미나에서 김웅 한국유통연수원 교수는 "오프라인 시장을 넘어 신선식품 및 HMR 제품에 대한 온라인 선점 전쟁이 이미 시작됐다"고 했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HMR 시장은 레드오션도, 블루오션도 아닌 '블랙 마켓'이자 성패를 전혀 모를 블라인드 게임(이 됐다) 대형 온라인 사업자, 대형마트, 식품 제조업체 등이 무작위라고도 할 수 있는 투자를 감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셜벤처, 스타트업 등 덩치가 작은 식품기업은 사면초가에 빠졌다. 외식시장에 무게를 두기에는 매출은 급감하고 임대료 부담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간편식 시장에 뛰어들기에는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 간편식 시장은 대형 경쟁사가 우글거리는 전장이다. 이들은 시장을 나눠 갖기보단 대규모 투자를 기반으로 과점하겠다는 전략이다. 치킨런 게임에서 중소기업이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이 와중에 과감한 행보를 보인 소셜벤처가 있다. 닥터키친은 최근 서울 종로 광화문 D타워에 건강식 매장 비스포킷(Bespok'eat)을 오픈했다. 닥터키친은 당뇨 환자 건강식에 특화된 가정 간편식을 주요 매출원으로 삼고 있다. 닥터키친의 가정 간편식은 의료진과 호텔 출신 주방장이 함께 개발했다. 2018년 35억원 규모였던 닥터키친의 매출은 지난해 지난해 40억원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사들의 러브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6년 카카오벤처스 등에서 14억원, 2017년에는 미래에셋벤처투자 등에서 23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지난해에는 옐로우독 등이 50억원을 닥터키친에 투자했다.
가정 간편식으로 승승장구 해오던 소셜벤처가 뜬금없이 오프라인 매장이라니?!
비스포킷은 전통적인 식당과 조금 다르다. 포장·배달 전문 매장이다. 매장에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소비자는 저탄수화물 메뉴, 다이어트 메뉴, 채식 메뉴 등을 방문 포장하거나 배달앱을 통해 주문할 수 있다. 오프라인 매장이지만 닥터키친이 보유한 전문성(식이요법)과 1인 가구 트렌드에 모두 부합한다. 오픈 첫 달, 비스포킷의 성공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전문성을 기반한 차별화. 그리고 변화에 대한 유연한 대응. 외식과 내식 사이에서 고민 중인 소셜벤처에게 어쩌면 꽤 괜찮은 힌트가 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