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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지 Feb 20. 2019

이젠 작사,작곡까지 하라고요?

- 자가 프로듀싱 아이돌의 시대





자가 프로듀싱 아이돌의 시대

-아이돌의 주체적 성장을 소비하다



 아이돌 시장에서 공식처럼 여겨지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성공한 아이돌 그룹에는 작사 작곡과 프로듀싱을 도맡아 하는 ‘프로듀서’ 형 멤버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방탄소년단은 멤버 전원이 앨범 프로듀싱에 참여하거나 자작곡을 만듭니다. 이젠 어엿한 회사 사장님이 된 지코는 블락비의 히트곡 대부분을 제작했으며, 다른 아티스트들을 프로듀싱하기도 했죠. 이젠 수많은 아이돌들의 롤모델이 된 지드래곤은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서 “우리는 직접 노래를 만들기에 당당하다”며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춤, 노래로 모자라서 이젠

작사 작곡까지 하라고요?



방탄소년단 슈가





 프로듀서형 아이돌이 갖는 이점은 상당합니다. 먼저 제작비용이 절감됩니다. 굳이 돈을 들여 곡과 안무를 사 올 필요가 없어지고 음반 제작은 한층 수월해집니다. 투자 대비 고효율을 얻을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스스로 작사 작곡하는 실력파 아이돌이라는 타이틀 역시 얻을 수 있습니다.

  

 2018년 신인상을 쓸어간 큐브 엔터테인먼트의 신인 (여자) 아이들은 멤버 전소연의 자작곡 ‘라타타’로 데뷔했습니다. '라타타'의 높은 곡 퀄리티는 후속곡에 대한 기대를 고조시켰고, 이후 연달아 발표한 ‘한(一)’ 역시 좋은 성적을 거두었죠. 아이들은 불과 2곡의 싱글 발표만에 '실력파 걸그룹', ‘믿고 듣는 그룹’이라는 이미지를 어느 정도 구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앞으로의 성장이 더욱 기대되는 그룹 중 하나입니다.




(여자) 아이들




 이처럼 아이돌의 자가 프로듀싱은 이제는 지루한 담론이 된 ‘아이돌 vs 아티스트’ 논란에서 아티스트 쪽에 더 무게를 실어줄 수 있는 아주 큰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아이돌 그룹 스스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스스로’ 한다는 진정성과 주체성을 어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룹의 음악성이 발전하는 성장 서사까지 보인다면 금상첨화입니다.



  데뷔 후 최고 성적을 거둔 비투비의 ‘그리워하다’는 멤버 임현식의 자작곡입니다. 용감한 형제, 서용배 등의 스타 작곡가들과 함께 했던 예전 곡들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는 점이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워하다’ 이후 비투비는 확실한 그룹색을 찾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작년에는 전 멤버들의 자작곡으로 구성된 앨범 ‘디스 이즈 어스(THIS IS US)’을 발매했습니다. 멤버들은 오롯이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들어간 앨범이며, 그렇기에 그들의 색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결과는 성공적입니다. 특별한 경쟁력이 없다고 여겨졌던 비투비는 이젠 믿고 듣는 그룹이 되었습니다.


 자가 프로듀싱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은 그룹은 비투비뿐만이 아닙니다. 공백기 이후 부진한 성적을 보였던 원더걸스는 2016년 자작곡 ‘Why so lonley’로 다시금 정상에 올랐습니다. 비결은 간단합니다. 도입부 박진영의 “JYP!” 대신 멤버들의 진정성 어린 연주와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어쩌면 안정적인 성공을 보장할 후크송과 포인트 안무 대신, 원더걸스는 베이스 기타와 드럼스틱을 쥐고 노래합니다. 분명 유의미한 결과입니다.


 선미의 행보 역시 주목할만 합니다. 스타 프로듀서 테디와 함께한 '가시나'와 '주인공'의 연이은 표절 시비 이후, 선미는 '사이렌'이라는 자작곡을 가져 왔습니다. 예전 원더걸스의 타이틀곡 후보였던 '사이렌'은 오직 선미만이 해낼 수 있는 음악입니다. '사이렌'을 통해 선미는 완벽한 주체성을 획득합니다. 원더걸스의 막내로 엉뚱한 매력을 발산하던 선미는 10년 후 독보적인 여성 솔로로 성장했습니다. 국민 걸그룹의 막내에서 솔로로, 그리고 표절 시비를 극복하고 자작곡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개척한 선미는 수동적인 역할에 그쳤던 기존의 여성 아이돌 그룹 멤버가 어떻게 아티스트로 독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방탄소년단

 


 자가 프로듀싱에 관해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그룹이 있습니다. 방탄소년단입니다. 방탄소년단의 미국시장 진출 이후, 수많은 매체들은 앞다투어 방탄소년단의 성공 비결을 분석했습니다. 방탄소년단의 성공기는 비즈니스 모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소년만화 성장서사에 가깝습니다.

 


방탄소년단 사운드클라우드 (https://soundcloud.com/bangtan)



 방탄소년단은 데뷔 이후 꾸준히 사운드 클라우드에 자작곡과 커버곡들을 업로드하며 팬들과 소통했고, 앨범 작업에 참여하며 세계관을 구축해 나갔습니다. 사회의 부조리함에 맞서던 소년들은 화양연화를 거쳐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하는 청년들이 되었습니다. 2016년 사운드 클라우드에 무료 공개된 믹스테이프에서 “다음 목표는 빌보드”*라고 외치던 그들은 2018년 미국의 토크쇼에서 “다음 목표는 그래미”라고 웃으며 말을 합니다. 방탄소년단이 써낸 서사를 따라가던 팬들의 카타르시스가 폭발하는 지점입니다. 팬들은 스스로 서사를 구축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그들의 주체성을 기분 좋게 소비합니다.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는 덤입니다.

 


 아이돌 팬의 입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프로듀서형 아이돌은 분명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존재입니다. 소속사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공장형 아이돌보다는, "I don't giva shit"**을 외치며 자신의 메시지를 던지는 아이돌이 분명 좀 더 재미있기 때문이죠.  SMP를 전형으로, 소속 선배들의 길을 답습하는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이 부진하는 모습을 보면 저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부작용 역시 존재합니다. 일부 팬들은 완성도가 낮은 아이돌의 자작곡을 보며, '그렇게 작사 작곡할 거면 제발 작곡가한테 곡 받아와라' 하고 한탄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맞는 말입니다. 대중은 물론 팬들에게조차 외면받는 자작곡이 존재하기도 하니까요. 실제로 최근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가수 의 자작곡 '차에 타봐'가 멜로디와는 어울리지 않는 올드한 가사로 인해 놀림(?) 받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tvN의 '최신 유행 프로그램'에서 문빈이 '차에 타봐'를 패러디하기도 했었죠. 어쨌거나 확실한 건, 이러나저러나 분명 재미는 있다는 겁니다.

 


 



괜찮아,

그것마저 서사가 될 거야




 일부 제작자들 역시 이런 덕후들의 마음을 알아챈 모양입니다. JYP의 신인 보이그룹 스트레이 키즈는 프리 데뷔 앨범으로 멤버들의 습작을 모은 '믹스테이프'를 내놓았습니다. 리더 방찬의 자작곡 '헬리베이터'가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고요. 아직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지 못했지만 발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그룹색을 구축하는 자체 프로듀싱 과정에서의 미성숙함과 부족함마저, 그 자체로 서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선배 그룹들이 보여주었으니까요.


 물론 지금이 '흑역사'가 될지, '전설의 시작'이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결과는 자신의 이야기들을 얼마나 진정성 있게 해내느냐에 달린 것 같습니다.  어느 쪽이던 재미는 있습니다. 자가 프로듀싱을 하는 아이돌들의 다음이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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