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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은 Apr 10. 2021

6. 그래서, 가족은 정말 잘 돌봐주나요?

그렇게, 가족이 되어가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

일본 영화 중에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영화가 있다. 무슨무슨 상을 타고 유명세를 탄 영화인데, 결론만 말하자면 좀 뻔한 이야기이고 무엇보다 나는 나의 어머니와 영화 속 아버지가 너무 비슷해서 영화를 보기가 좀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극 중 아버지는 소위 말하는 엘리트다.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이상하게 공부를 못한다.. 나처럼.. 우리 엄마도 그랬다. 여자들에게 여간해서 교육의 기회를 주지 않던 시절에 꾸역꾸역 공부를 해낸 사람이라 자부심도 대단했고, 그렇게 살아온 인생을 나도 지금까지 존경하고 있지만 나 역시 그 기준에 맞춰 살아내기를 강요하고 있기에 나는 어릴 때부터 존재를 부정당하고 지금도 종종 대 놓고 '실패작'취급을 받는다. 영화 속에서는 아이가 바뀌었다는 설정으로, 병원인가 어느 기관에서 통보를 받게 되는데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버지가 "얏바리...(역시...)"라고 답해버린다. 역시.. 내 아이면 그렇게 멍청할 리 없는데 이제야 이해되는 군...이라는 뜻이겠지? 그 말을 들은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 울었던 것 같다. 사실, 내가 우울증과 그 외 기타 질병들의 원인들을 찾는 상담을 하다 보면 그 원인들이 거의 모두 엄마에게서 기인한다. 그런 날에는 나는 엄마라는 사람을 원망해야 할지, 이제 그만 용서해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에 담배만 피우게 되고, 가끔 술기운에 이런 얘기를 뱉으면 우리 엄마는 덤덤하게 "그래서 A/S까지 해주고 있잖아."라고 말한다. 맞는 말인데 거참 정말 되게 기분이 나쁘다. 아무튼, 가족이라고 다 돌보는데 최적화되어있는 것은 아니고, 사랑이 막 무한정 넘치는 것은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그런 사람은 절대로 없다. 시간이 쌓이고 추억이 깃들고 그러면서 어떤 감정들과 친밀한 무언가가 생겨나는 것이지 절대로 처음부터 그런 사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생모니, 친부니 이런 사람들이 학대를 하거나 죽이거나 하는 일도 뉴스에서 너무 자주 보이는 일인데 자꾸만 가족들이 잘 돌봐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나는 잘 이해가 안 된다.


유튜브와 트위터, 텀블벅에서 꽤나 유명했던 <둘째 언니>라는 분이 계셨다. 지금 정의당 의원인 장혜영 의원이다. 처음 장혜영 의원을 알게 된 것은 텀블벅에서 둘째 언니라는 펀딩을 할 때였는데, 장애가 있는 동생을 시설에서 데리고 나와 함께 생활하기로 결정하면서 생업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한 펀딩을 모금한다고 했던 것 같다. 24시간 동안 돌봄이 필요하기 때문에 생업을 그만두어야 했는데, 장애인 활동보조인으로 직계가족은 불가했기 때문이다. 최근 장애인복지의 최대 이슈는 탈-시설화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자세히 아는 한도 내에서 이야기를 하자면, 조금 먼 옛날 얘기로 돌아가게 된다. 카더라 썰이니 적당히 흘려들으시기를 바라는 마음과 진짜인가? 싶어서 출처를 찾아보면 또 출처가 있는 이야기라는 얘기를 먼저 하고 싶다. 때는 88년도 올림픽이 개최될 무렵, 서울 내 부랑자 즉, 노숙인과 장애인들을 거리에서 보이지 않게 하라는 모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미관상, 관광 상의 이유였다고 하는데 그 당시 조례들이 남발하면서 각종 생활시설 및 단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겼고 심지어 어떤 동네의 주공아파트 몇 단지는 그들의 '수용소'가 되었다(진짜). 주공아파트의 모양새를 갖춘 곳은 그나마 주소라도 있어서 다행이고, 아파트의 모양새라서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 하게 보일 순 있겠지만, 어떤 곳은 일명 판자촌 같은 곳이어서 정말 수용소였고, 추적조사를 하지는 못했으나 최근까지도 '통장님 집 주소'를 모든 동네 사람들의 집주소로 다 같이 사용하고 있다.. 정말? 응. 정말...................... 아무튼 그렇게 생겨난 시설들이 좋을 리가? 없다.. 당연히 없고, 아무리 장애인법 및 시설 관련 법령을 개정한다고 한들 "00년도 이후에 설립된 시설에 한 함." 혹은 "00년도 이전에 설립된 시설은 예외로 함" 이런 예외 조항들을 다는 순간 거의 무력화되기 때문에 그 당시에 지어진 시설들은 그냥 열악한.. 시설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물리적인 시설뿐만은 아니다. 정부에서 보조금 지원사업도 하고, 또 시설 안전평가 및 소방 안전 평가도 하는 등 (영화 도가니, 평화 복지원 등) 여러 이슈들을 통해 조금씩 변하고는 있기 때문에 달라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둘째 언니>가 지적하는 포인트는 이런 것이었다. 분명 시설에 돌봄을 일임하고 본인은 직장에서 유급노동을 하고 있었는데, 시설에서 갑자기 전화가 와서 "동생분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지금 당장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하면 나의 월차 혹은 회의 혹은 근무 상황을 모두 무시한 채 시설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이 부분에 대한 문제점을 너무 공감하고 있고, 이런 면면들에 대해서 과연 이 것이 돌봄의 "시설화" 혹은 돌봄의 "사회화"가 맞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정말이지 가족을 "24시간 대기조"로 두는 것 외에는 전혀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 일이다. 물론, 열이 많이 난다거나 시설 생활 중에 사고가 났다거나 생사의 위험이 있다거나, 응급상황에서 병원으로 이송한다거나 하는 일이라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 외의 일에 대해서는 돌봄 제공자들이 그 시간만큼 맡아줘야 하는 책임이 분명 있어야 하지 않을 까? 하지만 사실 이 부분도 애매한 것이 장애인들은 돌봄 이용자가 성인인 경우가 많아 아동들보다 자기주장이 정확한 편이기 때문에 아이들처럼 뽀로로처럼 달래 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요즘엔 장애인들의 탈-시설화를 외치는 중이다. 장애인들을 시설에 거의 가두다시피 했던 지난날의 복지정책에서 벗어나, 일상생활에서 같이 어우러지는 생활 속에서 함께 하는 복지. 조금 더 어려운 말로는 사회화, 혹은 재-가족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셈이다. 정책의 영역에서 나는 가족이 돌봐주는 것이 좋은지, 다른 사람이 돌봐주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둘 다 적절하게 반반 치킨처럼 섞었으면 좋겠는지 선택할 수 있었으면 한다. 사실, 그게 더 좋을 것 같다. 장애인 활동보조인에게 새벽 6시에 출근하여 나의 양치질과 용변을 도와달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나의 자녀 혹은 부모에게 부탁할 수는 있을 것이다. 같은 돌봄을 누구에게는 무임금 노동으로 누구에게는 유임금노동으로 할 것이 아니라, 요즘같이 카카오페이 제로페이 잘만 되어있는 세상에서 가족돌봄-활동보조인돌봄-시설돌봄 이미 다 가지고 있는 바우처로 여기저기 다 쓸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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