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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돈균 Feb 09. 2024

사유의 스타일과 글쓰기, 인공지능이 지니지 못한 고유성


연재를 시작하며_

최고의 사유 스타일리스트들은 어떻게 쓰는가 

    

자율적 자기학습능력을 지닌 AI 시대의 본격적인 도래는 지금까지 인간 자부심의 원천이 되었던 지적 능력의 차원에 새로운 질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러할 만한 것이 AI는 인류의 모든 지적 데이터를 흡수하는 총화로서 자기학습능력을 발전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기술적 특이점 상황에서 가장 우둔한 일은 이 상황을 대결과 경쟁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일입니다. 기술적 특이점이 다가올수록 인간은 이에 대한 인문적 통찰을 통해 AI와의 창조적 협력을 펼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명의 인문학자로서 저는 인간이 가진 고유한 지적 능력의 발현이 무엇일까 하는 점에 관심을 가져왔고, 특히 문학평론가로서 세계의 실재를 파악하는 사유 프레임을 디자인하고 이를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서 표현해 온 사유 천재들의 글쓰기 스타일에 주목해 왔습니다. AI가 인간 사유의 내용을 흡수 망라하고 요약할 수는 있어도 스타일은 저자 고유의 것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발터 벤야민과 그의 원고(주어캄프 출판사 정리)


스타일은 껍데기가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을 하느님이라고 여겼습니다. 형상은 본질과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의 스승이었던 플라톤은 육체가 영혼의 감옥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플라톤이 쓴 드라마적 스타일의 글쓰기조차 그의 생각을 가장 잘 드러내기 위해 도입된 필연적 사유 형식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 글은 문명 지성사에서 자신의 시대를 대변하거나 그 시대를 초월하려고 했던 생각의 천재들이 자신의 문제의식을 가장 적절하게 구현하기 위해 어떤 스타일의 글쓰기를 발명했는지 보여주려는 의도로 씌어집니다. 그들은 자기 사유를 깊이 있고 정확히 전개하는 일이 그 생각을 가장 정확히 표현하는 방법을 발명하는 일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스타일(style)이 단지 취향이 아니라 세계의 실재를 드러내는 예민한 ‘표면’이라고 여겼습니다.       


스타일이 펜(stylo)을 손에 예쁘게 쥐는 식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저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은 원칙 하에 써내려 갈 것입니다. 첫째, 이 책의 목차마다 주인공으로 선택된 생각천재들은 자기 시대가 직면한 사유의 문제를 무엇이라고 여겼으며, 사유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무엇이라고 생각했는가, 하는 점에 주목합니다. 둘째, 사유자로서 그들의 생각을 대표하는 책과 키워드는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셋째, 자기 사유를 드러내는 적확하고 독특한 방식으로서 그들이 발명한 글쓰기의 스타일입니다.   

시인 김수영의 육필 원고

이 연재는 인류사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사유 천재들의 글쓰기를 통해 가장 고난도의 사유를 드러내는 그들만의 비밀 경로에 접근하며, 일상인인 우리가 그러한 사유의 글쓰기에 또한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지를 유쾌하게 타진해 보려는 시도입니다. 분명한 것은 멀티미디어시대가 되었다 하더라도 사유의 근간은 글을 통해 최종적으로 표현되며, 글을 통해서만이 사유의 심층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멀티미디어적 활용의 기반 텍스트는 문자적 서사입니다. 글쓰기는 사유 자체이며 생각이 사유로 정교화 되는 유일한 훈련법입니다. 아직 인류는 이 이상의 방법을 발명해 내지 못했다고 단언합니다. chatGPT 시대의 역설은 많은 사람들이 이 신박한 인공비서를 통해 생각천재들의 사유 스타일을 닮고 싶다는 글쓰기 욕망을 투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누구 ‘처럼’ 써줘” 라는 수억명의 유저들의 명령어에서 드러나는 아이러니는 여전히 빛나는 원본 저자의 고유한 스타일입니다. 그들의 글쓰기는 독특한 스타일을 장착한 사유의 원석이죠.   



 함돈균: 문학평론가. 러닝 디자이너.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와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 인문연구소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경희사이버대학교에 특임교수로 재직하면서 미래대학 설계와 관련한 일을 하고 있다. 인문정신의 공공성 실현을 위해 '실천적 생각발명그룹 시민행성'을 설립하여 운영했으며, '우리, 지구의 시민들'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창조적 사회디자이너 양성을 목표로 지구적 네트워크를 지닌 사회디자인대학 '미지행' 설립에 파운더로 뛰어들기도 하였다. 고려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예술대학교 등 많은 대학에서 문학, 예술, 철학, 인문고전 등을 강의해 왔다. 문체부, 교육부, 외교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서울문화재단, 삼성리움미술관, 삼성전자R&D센터, 삼성디자인멤버십 등 여러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기업 등에서 인문예술 융합교육프로그램을 기획ㆍ문ㆍ강의해 왔다. 문체부 국가인문포털 <인문 360도> 설계, 삼성전자 가전제품의 인공지능 대화 메뉴얼 설계, 플라톤아카데미재단의 인문정신문화연구소 설립 프로젝트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며, 삼성전자 디자이너 양성 교육프로그램인 삼성 디자인멤버십에 인문학자로는 최초로 기획자로 참여했고, 최근에는 현대자동차 해리티지북 프로젝트에 초대 편집장이 되어 했다. '도시 영성(urban spirituality)'을 주제로 커뮤니티 '다스딩 소사이어티'와 제주 북동쪽 구좌읍에 책방 <시타북빠>를 운영 중이다. 

미술을 통한 인문적 사유 및 융합교육과 글쓰기에 대한 꾸준한 관심 속에 현대미술관(리암켄트리지 2015/ 백투더퓨처 2023~2024), 리움ㆍ호암미술관 (올라퍼엘리아슨 2017/김환기 2023) 등의 전시도록 원고집필, 강의 및 교육기획 등에 참여해 으며,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2023) 전시 작가로 초대되어 공공 아트라이브러리를 디자인 했다.


인문철학에세이집 『코끼리를 삼킨 사물들』(2018)이 '국립중앙도서관 사서들이 뽑은 2018년 2019년 연속으로 '국립도서관 사서들이 뽑은 올 여름의 책'으로, 『사물의 철학』(2016, 2023)이 ' 2016 문체부 책의 달 인문서'로, 스탠포드대학 폴김 교수와의 교육대담집 『교육의 미래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가 '책따세가 뽑은 2017 교육 부문 인문서'로 선정되었다. 그 외 『순간의 철학』(2021), 문학평론집 『사랑은 잠들지 못한다』(2016), 『예외들』(2012),『얼굴 없는 노래』(2009), 문학연구서 『시는 아무것도 모른다』(2012) 등을 출간했으며, 동시대의 사유가 및 전문가들이 참여한『교육의 미래 컬처 엔지니어링』(2021),『생각을 건너는 생각』(2023)을 기획하고 대화에 참여했다. 김달진문학상 젊은평론가상, 고려대문인회 신인작가상, 서울문화재단창작기금, 대산문화재단창작기금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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