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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지방선거 앞 모녀

<두 여자의 집> 30대 딸과 60대 엄마의 아옹다옹 일상 돋보기

 곧 지방선거일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고민하는 나는 시민 모두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엄마의 선택 역시 엄마의 몫이고 엄마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기자인 내 직업의 특성상 엄마가 선택을 할 때 내가 약간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면도 있다. 그래서 평소보다 나는 조금 말이 많아진다. 일종의 내가 엄마한테 하는 잔소리 기간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사전투표 첫날에 투표를 마쳤다. 집으로 배달된 자료들을 검토한 후 마음을 정했다. 나는 소속 정당과 정책뿐 아니라 그 사람들의 재산과 고향, 학력 등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내 나름대로는 꼼꼼하게 보는 편이다. (실존주의자랄까) 다음날 사전투표를 할까 망설이는 엄마와 외출 중에 선거와 관련한 대화를 시작했다.

 “엄마는 이번 선거 어떻게 할 거야? 사전투표할 거지?”

 “기사 보니까 사전투표 많이들 하더라. 이따가 나도 할까 봐. 시장, 구청장은 골랐고 시의원, 구의원은 잘 못 봤는데... 성당 교우가 있어 그 사람들을 뽑을까 하지.”

 가족이 인생의 절반이라면 남은 절반이 성당인 엄마에게는 성당 앞 유세가 매우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자신이 성당 교우임을 내세우며 명함 크기의 홍보물을 돌리는 후보자들을 여럿 본 적이 있는데... 나는 그들을 뽑지 않았다는 것이 기억이 났다. 

 “시의원, 구의원은 아무래도 당을 보고 뽑아야지...”

 별 기대는 없지만 나도 낮게 읊조렸다. 시장과 구청장이 인물의 능력이라면 시의원과 구의원은 행정을 견제할 정당 자체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어떨까라고 생각하는 게 나의 지론이지만, 엄마가 누구를 뽑든 어느 정당을 지지하든 나는 조언자일 뿐이다. 

 선거 때가 되면 부모님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친구들을 많이 본다. 중학교 동창인 한 친구는 평소 교양 있고 인자하신 대기업 임원 출신의 시아버지가 광화문 태극기 부대였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태극기 부대의 이미지가 주장이 강하다는 의미이지 교양 없다는 것은 아니다) 신문사 기자들도 고향의 부모님들이 선거 때면 달리 보인다는 말을 하고는 하는데, 나도 엄마의 그런 점을 아주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엄마는 일단 혼란을 싫어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민주시민으로서 토의하고 논쟁하는 것이 부정적인 것이 아님을 항상 배워왔다. 다툼, 싸움 이런 것들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혼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해도 안정으로 가는 하나의 단계라고 인식하는 편이다. 하지만 전쟁 직후 태어난 엄마는 일제 강점기의 잔재와 전쟁과 독재 시기의 그늘이 몸에 배어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전직 대통령이 구속이 됐을 때, 재벌 총수가 검찰에 소환될 때 등 굵직굵직한 사건이 발생할 때 엄마는 불안해하고 불만스러워 보인다. 그럴 때면 나도 슬쩍 “엄마, 잘못한 것은 지적하고 고칠 수 있어야 해.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대통령이나 재벌 총수가 왕도 아니야”라는 말을 한다. 당연히 내 말은 엄마의 귀에 앉았다가 다시 튕겨 나오기 때문에 엄마는 변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엄마의 그런 면이 비민주적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비민주적인 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 나이를 먹고 엄마의 삶을 상상해보면서는 엄마에게 변화를 강요하는 것 역시 폭력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국가권력이 시민의 삶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던 시대에 살았다면 나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서다. 

 나는 어르신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소외됨과 그로 인한 외로움이 큰 요인이라고 보는 편이다. 사회부 시절 어버이연합 어르신들이나 보수단체 집회 참가 어르신들, 콜라텍에 오는 어르신들을 인터뷰할 일이 많았다. 그들의 분노가 자신들이 살아온 지난 질곡의 세월을 빠르게 변하는 현대의 시간 속에서 점점 부정당하는 느낌을 참아내기 힘들어서라고 느꼈다. 물론 그 시대를 만든 것이 어른들이 손가락질하며 혼내고 싶은 젊은 사람들의 탓도 아니지만, 모든 사람의 오늘이 시대의 산물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면 나와 다른 엄마와 그들의 시간을 깡그리 무시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엄마에게 정치적 조언을 하겠지만 사실 엄마도 나에게 영향을 많이 끼친다. 밥도 잘 먹을 수 있고 빨래도 내가 안 해도 된다는 점 말고도 엄마는 기자인 내게 나와 다르게 사는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조언자이다. 배고픔 없이 자라 대학까지 졸업한 나의 시각과 판단이 대한민국에서 객관적일 수 있을까 반문할 때면 난 늘 엄마에게 마지막 의견을 묻고는 한다. 물론 나와 다른 시대를 살아서인지 가끔은 꽉 막혀있다고 느끼고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지만, 엄마는 내가 아는 가장 상식적이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이날 엄마는 저녁에 집에 들어온 내게 20분이나 줄 서서 사전투표를 했다며 말했다. 나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사전투표 금방 하고 정작 투표일은 놀러 간다고 트렌디한 척 말을 이었다. 내심 엄마가 내 쪽으로 변하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분노하지는 않는다. 

지방선거일에 나는 미국에 있을 예정이다. 그래서 사전투표를 했다. 개인적으로는 사전투표제도는 찬성한다. 그런데 투표율에 목숨거는 것도 민주적인지는 생각해볼 문제 같다. 투표 안 하는 것도 의사표현의 하나일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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