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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개인의 취향

두 여자의 집. 30대 딸과 60대 엄마의 아옹다옹 일상 돋보기

“너 머리가 너무 길어. 확 잘라버려. 장미희 머리스타일로 해.”

 엄마의 레퍼토리이다. 나는 이 말을 듣기 싫어한다. 

 딸의 긴 머리카락이 집안 곳곳에서 발견되는 것이 싫은 것은 모든 엄마들의 하나된 마음이다. 우리 엄마도 그러신데, 나는 그래서 적어도 내 방과 욕실만큼은 나의 긴 머리 카락이 떨어져 지저분해보이지 않도록 자주 청소를 하는 편이다. (거실은 안 하고 있긴 하지만...) 그런데도 엄마는 잊을 만하면 “확 잘라버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신다. 내가 이 말을 듣기 싫어하는 것은 엄마의 취향을 내게 강요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엄마는 장미희의 단발머리를 좋아했다. 1970~1980년대 20~30대를 보낸 엄마에게는 당시 배우들의 모습이 미의 기준으로 고정됐을 가능성이 크다. 

 장미희 머리스타일이 무엇인지 나는 중학생도 되기 전부터 알았다. 한창 멋 부릴 나이라 거울 앞에서 머리를 어떻게 자를까 고민하고 있는 내게 엄마는, 단발로 자르고 끝을 다듬어 턱을 감싸는 장미희 머리를 자주 권유했다. 엄마 말이 다 맞다고 생각하던 (모범샘이던!) 어린 시절의 나는 엄마 말대로 하려고 했으나, 그 머리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나는 긴 머리를 좋아했던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엄마 말을 한 귀로 흘려듣고 있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내 취향을 이해해줄 것을 항변하고 있다. 

 “엄마, 나는 웨이브 진 긴 머리가 좋아. 목 위로 올라가는 짧은 머리를 하면 너무 허전하게 느껴져. 또 나는 엄마보다 키가 10cm는 더 크기 때문에 긴 머리를 해도 그렇게 길어보이지 않아. 다 사람마다 자기의 체형과 얼굴형에 맞게 머리를 하는 거야. 엄마의 기준이 모두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말아줘.”

 라고 '친절하게' 말을 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싫어”라고 말을 하게 된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엄마의 취향으로부터 분리를 선언하는 것. 아이가 독립해가는 하나의 단계일 것이다. 아이들은 엄마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끼면서 자란다. 당연히 자아가 형성되기 전까지는 엄마가 보기 좋게 입히고 보기 좋게 가꿔주기 때문에 엄마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엄마의 취향과 아이의 취향이 평생 같으면 다행인데, 세대와 성격, 감정 등 서로 다른 개인이 완전히 동일한 취향을 갖기란 아무리 부모 자식 관계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옷을 살 때도 비슷한 고민을 오래 했다. 엄마는 파란색, 보라색을 좋아한다. 그리고 단순하면서도 도시적이고 중성적이고 실용적인 스타일을 추구한다. 하지만 나는 붉은 계통의 색을 좋아한다. 화려한 것은 싫어하지만 적당히 여성적이고 독특한 것을 좋아한다. 

 최근까지도 엄마는 내가 예쁘다고 하는 옷을 보고 “지저분하다. 너무 튄다” 등의 이유로 낮은 평가를 하곤 했다. 보통 엄마들이 좋다고 하는 옷이 바느질 상태나 옷감 등이 좋다. 그 점을 나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색과 스타일을 엄마에게 인정받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30대가 된 지금은 내 안목도 높아졌지만, 아직도 종종 나의 취향이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늘 ‘장미희 머리스타일’로 고통받던 나의 과거가 떠오른다. 

 그럼에도 엄마 딸이라서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한다. 신기하면서도 당연한 결과이다. 엄마와 나는 좋아하는 구두스타일이 같다. 앞코가 둥글고 발을 잘 감싸는 편안함과 단정함을 갖춘 구두. 엄마와 나의 발 사이즈는 0.5cm~1cm가 차이가 나기 때문에 같이 신지는 못하지만, 만약 발 사이즈가 같았다면 엄마와 나는 각자 여러 개의 구두가 더 생겼을 것이다. 마치 언니와 여동생이 있는 집의 아이들처럼.  

 최근 S/S시즌을 맞아 대대적으로 쇼핑을 했다. (하하하!) 생각보다 봄과 여름에 입을 블라우스와 슬랙스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옷은 많아도 30대 중반이 되니 20대때 입었던 옷을 입기가 부담스러워졌기 때문이다. 나는 베이지색 바지와 연핑크 바지를 사면서 사이즈만 다르게 해서 엄마 바지까지 네 벌을 구입했다. 다행히, 그리고 역시, 내 예상대로 엄마는 매우 좋아하셨다. 

 나는 이제야 조금씩 엄마가 좋아할 것같은 옷과 구두, 머리스타일, 악세사리 등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어려서는 왜 엄마는 나에게 자신의 취향을 강요할까 불만이었는데, 집안의 가장이 되고 또 엄마의 보호자가 된 지금은 나와 다른 엄마의 취향을 하나씩 확인하는 것이 재미있어지고 있다. 엄마와 나는 그만큼 다르구나, 또 엄마와 내가 이만큼 비슷하구나 하고 생각하다 보면 함께 해 온 35년이 느껴져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 

1985년 영화 <깊고 푸른밤>에 출연한 배우 장미희의 단발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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