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는 이 생각이 들어왔다. 우리 엄마 이야기이다.
극사춘기 딸의 말과 행실을 오늘 아침에도 겪으며, 오늘은 우리 엄마를 떠올렸다.
'우리 엄마,, 참 불쌍했네.'
솔직히 내 딸보다는 내가 더 순하고 예의가 바르긴 했지만, 엄마에게 함부로 대한 기억은 굉장히 많다. 사춘기의 기가 막힌 행실에 대해 그저 '호르몬 때문에 그 아이가 힘드니 이해하거나 받아들여주자'라고 해석하는 것은 참으로 쉬운 결론이다. 두루뭉술하게 그냥 그렇게 정리할 수는 없는 문제다. 어쩌면 부모로서 그런 결론은 무책임한 것일 수 있다. 일면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사실 그것이 맞지만 큰 비율은 어쩌지 못해 포기하는 심정이 섞여 있는 것이다. 물론 일일이 걱정하고 대응하면 나도 못 살고 내 자식도 못 살 일이다. 큰 틀에서 봐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인간 대 인간 사이에서 지킬 경우와 예의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트랙이다. 한 마디로, '네가 어떤 상황이든, 내가 이런 취급받을 이유는 없다.'라는 맥락이다. 사춘기 아이가 겪고 있을 복잡한 감정들,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감정, 지금은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한 정당성(내 눈에는 뻔뻔함으로 보일 때가 많다) 등 그 소용돌이는 벌어지는 일이고 부정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그것을 대하는, 또는 대하는 태도를 걱정할 뿐이며, 때로는 굉장히 인간으로서 모욕감을 느낀다.
내가 힘들다고 가장 대하기 쉽고 만만한 상대에게 함부로 하고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삼는 것 말이다. 이때는 아무리 자식이라도 피가 살짝 거꾸로 솟을 때도 있다. 정말 밉다. 당연히 해주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게 되고 소심하게 한두 개쯤은 안 해주게 된다.
오늘은 화장실에서 일어나자마자 큰일을 보았다. 인테리어 후 거실 쪽 변기가 문제가 있어 안방의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이 화장실엔 아이 드림렌즈 관련 아이템들이 있다. 아이가 일어나 화장실로 왔다.
"엄마 똥 쌌어?" 그 말투 하며, 참 싸가지가 바가지다. 마치 내가 똥 싼 것도 죄인양 들린다. 나머지 볼일을 보려 다른 화장실로 들어갔더니, 드림렌즈 관련 아이템을 들고 다시 거기로 왔다. 냄새나는 곳에 들어가 머물 수 없기 때문에 날더러 다시 나오고 자신이 거실 화장실에서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쫓겨났다.
그러다가 오늘은 화가 나는 것과 동시에 내가 불쌍했다. 원초적인 사람의 욕구에 대해서도 이렇게 문제 제기를 당하다니. 아무 데다 싸지른 것도 아니고 화장실에 고이 앉아 해결했는데. 당연히 나는 냄새, 그걸 어쩌라고. 그곳을 피할 수는 있다 당연히. 그러면 나에게 부탁하여 다른 화장실에서 나와달라고 해야지. 태도가 뭐 그 따위인가.
그래서 오늘은 우리 엄마가 불쌍해졌다. 다시. 엄마에게 주었을 무수히 많은 생채기에 연고를 발라주고 싶은 날이다. 나도 불쌍하고 우리 엄마도 불쌍했다. 생각보다 더 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