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내가 너를 13년간 키워오다 보니,
옛 어른들이 말씀하시고 대대로 이어져온 이야기들이 맞는 게 참 많다. 한때 나도 그랬어. 그런 고리타분하고 구시대적인 것은 싹 다 뒤로 물리고 나의 상황에 집중하고 내가 할 수 있다는 걸 믿고 최선을 다하면 그보다 더 나을 수 없다고 말이야.
가능한 자유하고 너의 길을 네가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애쓴다고 했는데 그 모호한 경계에서 그때그때 판단력을 발동해야 하더구나. 나름 이유나 명분을 제시하며 허용하거나 반대했지만 그 맥락의 차이가 그때마다 정확히 전달되기 어렵다 보니 너의 입장에서는 일관되어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어. 가능과 불가를 결정하는 1차적인 룰이 극명히 보이는 비율이 좀 더 높았어야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큰 틀에서 부모의 권위를 지켜내는 것을 우선시했어야 하는데 너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최대한 가능한 방향으로 reasoning 해가며 많은 걸 허용하고 너의 선택에 맡겨왔던 것 같다. 그걸 후회하진 않지만 균형감이 좀 부족했다는 생각은 든다.
네가 머리가 굵어지고 주관이 원래도 셌지만 더욱 세어지면서 상황별 맞춤 설명이 제대로 통하지 않고 번번이 나는 진이 빠지는구나.
네가 자식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 소양, 학생으로서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책임감과 책임의 내용에 대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이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정해놓는 구역이 더 강하게 정의되었어야 했나 싶다.
숙제를 하는데 친구랑 통화를 하며 한다는 게 말이 되니? 공부를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가 그래서야 되겠어? 너를 위해 기꺼이 들이는 비용을 생각할 때 헛되지 않게 숙제할 때는 숙제만 해야 하지 않니? 이런 이야기가 너에겐 또 듣기 싫은 잔소리에 불과한 듯 짜증을 내는구나.
어쩌면 너의 부정적인 감정 표출을 보기 싫어서 그것을 피하려고 내 나름 합리적이라고 애써 여기는 이유를 들어 많은 걸 pass 했던 건 아닌가 성찰해 본다. 나는 상대의 불편한 감정을 느끼기를 참 싫어하는 사람이라서 아마 그랬던 적도 많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