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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E Oct 20. 2019

나는 원숭이로소이다

카프카: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카프카 전집-1 변신>, 프란츠 카프카, 이주동 옮김, 솔: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p257



   청소년기 시절 거리에서, TV에서, 매년 어떤 연극 광고를 주기적으로 볼 수 있었다. 배우 1인이 공연하는 모노드라마 연극이었으며 그 주인공은 지금은 고인이 된 추송웅이라는 배우였다. 연기력을 갖춘 배우이자 지금은 감독으로 활약 중인 추상미의 아버지이기도 한 추송웅 씨는 나름 연기의 내공은 있음에도 끝까지 경상도 사투리를 고치지 못했던 배우로 필자는 기억하고 있다. 물론 고등학교 때 동시 상영 극장에서 그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청불 영화도 두어 편 본 적이 있었지만 대사에서 묻어나는 어쩔 수 없는 사투리가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 그가 모노드라마로 수백 차례 공연했던 연극이 <빠알간 피터의 고백>이란 연극이다. 그는 1977년 8월 20일 서울 명동에 있는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처음으로 이 연극을 선보인 이후 8년간 총 482회에 걸쳐 상연을 했고 15만 2천여 명의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고 한다. 이후로 추송웅 하면 원숭이 빨간 피터가 떠오르고 이 연극은 그의 시그니처가 되어 버렸다.



   연극 <빠알간 피터의 고백>은 카프카의 단편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이하 학술원)>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최영일 씨가 번역한 <빠알간 피터의 고백> 연극 대본은 실제로 원작과 내용이 거의 일치하기 때문에 연극 역시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카프카의 이 원작이 모노드라마로 펼쳐졌다면 그것은 오롯이 배우 추송웅의 연기력을 통해서 관객에게 그 내용이 전달되었을 것이다. 물론 당대의 추송웅은 연극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기력을 가졌다고 알려졌기에 그의 목소리, 호흡의 끊김, 몸짓 등을 통해서라면 어떤 해석으로 생산된 <학술원>이 되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원작은 보고서 형식을 취한 짧은 글이지만 그 내용은 인간 사회에 대한 시니컬한 풍자로 가득하다. 그리고 이 보고의 주체가 바로 "빨간 페터(영어로는 피터)"인데 페터는 인간화된 원숭이로서 인간이 된 지금에서야 빨간 페터라는 그 이름은 원숭이 때나 어울린다고 주장하면서 매우 못마땅해하는 그런 원숭이다.



   인간화된 원숭이... 황금 해안 출신인 페터는 5년 전 하겐벡 회사 소속의 사냥꾼의 총에 맞아 포획되었다. 당시 두 방의 총알을 맞았는데 한 방은 페터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 그 흉터가 붉게 드러나서 빨간 페터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나머지 한 방은 엉덩이 아래쪽을 뚫고 지나갔는데 그것 때문에 지금도 그는 약간 절룩거리고 있다. 페터는 방문객들에게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의 상처를 보여주는 것을 즐겨하는데 어떤 비평가들은 이런 그의 행동을 아직 인간화가 덜 되었다는 논거로 즐겨 애용한다. 페터는 인간의 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그의 지식은 유럽인 평균 수준에 도달했을 정도로 인간화된 원숭이다. 이런 페터라면 당연히 세간의 관심을 독점했을 것이며 그는 유명인사가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인간 매니저를 두고 있으며 매일 극장에서 상연되는 버라이어티 쇼의 주인공이자 스타다. 매일 저녁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공연을 하고 밤늦게까지 연회나 학술 모임 또는 유쾌한 회합에서 유명 인사들과 떠들썩한 시간을 보낸 후 지친 몸을 이끌고 귀가하면 반쯤 조련된 자그마한 암컷 원숭이가 그를 기다린다. 그러면 그는 어떤 향수를 달래듯 그녀 옆에서 원숭이 식으로 휴식을 취한다(하지만 그녀의 눈길에서 원숭이였던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조련된 동물의 착란적인 증세를 보기도 하는데 페터는 그것이 견디기 힘들다고 한다). 이 시기가 아마 그의 인생에서 정점을 찍은 시기였을 것이고 그렇기에 그의 표현 그대로 더 이상 높아지지는 않을 성공을 거두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제 서서히 내리막을 타야 할 시점에서 학술원의 요청이 왔다. 학술원은 페터에게 인간화되기 이전의, 순수 원숭이 시절의 그의 전력에 대한 보고서를 요청했지만 페터는 그 요청을 거절한다. 거절의 이유로 인간화된 지금 자신의 원숭이 시절의 기억은 거의 떠올릴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기억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고 이제 성공 가도의 내리막을 타야 할 시점에서 스스로도 어떤 반추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대신 자신의 인간화 과정을 상세하게 기술한 보고서를 올린다.


   인간화 과정이라 할 때 처음 떠올릴 수 있는 단어는 "길들이기"다. 포획된 야생 동물, 그를 가두는 쇠창살, 사방의 낯선 환경을 경계하듯 떨리는 동공, 그것을 통해 전해지는 불안한 눈빛, 동물다운 괴성을 지르며 접촉을 거부하는 반항적인 몸부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치근덕대고 다정한 척 다가서는 인간들, 하지만 이어지는 조련과 훈육의 과정... 인간화된 터는 이런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서커스에서 공연을 하는, 단순히 조련된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어떤 특이점을 넘어섰다. 어떤 도약, 놀랍지만 설명 불가능한 비약... 그는 그 설명 불가능한 것을 이제 인간이 된 시점에서 인간의 관점으로 풀어놓는다. 그 도약은 바로 자신의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은 인간들이 떠받드는 "자유"라는 숭고하고도 존엄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라고 한다. 자유의 핵심은 선택이다. 스스로의 의지에 의한 선택의 가능성이 주어질 때 우리는 자유라는 개념을 갖다 붙일 수 있다. 하지만 선택의 대상이 오직 하나뿐이라면... 그런 상황이라면 선택이라 불릴 수 있을까? 선택의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페터는 그런 상황에서의 자신의 선택을 자유가 아니라 "출구 찾기"였다고 한다. 페터는 자신이 말하는 "출구"의 의미를 사람들이 오해할까 봐 분명하게 언급한다. 즉, 출구라는 단어의 일상적이며 완전한 뜻 그대로의 출구이지 그것은 결코 자유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출구"라는 것은 무엇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그가 포획된 후 하겐벡사의 증기선에 실려 본토로 이송되는 과정을 알아야 한다. 포획된 페터는 증기선 중갑판에 위치한 우리에 갇혔는데 그 우리는 한 면이 판자를 서로 단단하게 이어 만든 궤짝에 고정된 된 낮은 쇠창살로 되어 었다. 좁은 그곳에서 페터는 두려움과 실의에 빠져 쇠창살이 등짝을 파고들 때까지 기대어 앉아 소리도 없이 그저 궤짝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페터를 보고 사람들은 그가 곧 죽거나 운 좋게 살아난다면 손쉽게 길들여질 거라 결론 내렸지만 그렇게 그가 실의에 빠진 이유는 난생처음 출구가 없는 상황에 봉착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페터는 판자 사이에 길게 난 틈을 하나 발견했고 그저 기쁨에 차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 틈은 꼬리를 들이밀기에도 충분치 않았고 원숭이의 온 힘을 다해도 벌릴 수도 없었다. 그렇게 출구로서의 희망이나마 보였던 틈마저도 출구가 되지 못했다. 소리 죽인 흐느낌, 고통스런 벼룩 잡기, 피로스런 야자 핥기, 머리로 궤짝을 찧는 일, 누군가 다가오면 혀를 내보이기... 그 시기 그가 처음 했던 행동들이었지만 그가 느낄 수 있는 한 가지는 그저 출구가 없다는 느낌이었다.


   그가 원했던 것은 결코 자유가 아니었다. 그저 출구, 그것도 하나의 출구만 원했을 뿐이다. 지금은 기억도 제대로 못하는 밀림 속의 원숭이 시절, 그에게는 사방이 출구였다. 그 시절의 출구라는 문은 하늘 전체였고 그것 자체가 그가 몸으로 이해하고 느끼는 온전한 자유였다. 하지만 옴짝달싹도 못하는 우리 속의 그에게는 조그마한 출구 하나도 없었다. 차라리 사람들이 그를 결박해서 못 박아 놓았더라도 움직일 수 있는 자유는 이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출구를 마련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것 없이는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주 의미심장한 말이다. 인간들이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할 때의 그것은 그들이 숭고한 가치로 여기는 자유다. 하지만 페터에게는 자유라는 거창한 이름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출구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자유는 철저하게 인간적인 개념일 뿐이다. 페터가 이해하는 인간들의 자유는 원숭이들이라면 지상의 모든 건물들도 지탱하기 힘들 정도로 너털웃음을 터뜨릴 그런 개념이다. 버라이어티 쇼에서 페터가 등장하기 직전에 공연하는 한 쌍의 공중 곡예사를 보자. 그들은 그네에 훌쩍 뛰어올라 서로 교차하며 멋진 쇼를 펼치고 한 사람이 입으로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을 물어 지탱하고 있다. 이것이 인간이 말하는 자유라면 그것은 소위 말하는 자유 낙하의 법칙에 역행하는 이상한 자유였고 그런 자유라면 그것은 안하무인 격인 동작이며 성스러운 자연을 우롱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원숭이에게는 자유란 개념 대신 사방에 널린 출구만이 있다. 하지만 그 거대한 출구가 쪼그라들어 이젠 보이지 않는다. 이제 그는 본능적으로 실존의 문제를 느낀다. 살기 위해서 그는 출구를 만들어야 했고 그것은 바로 원숭이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 결단은 두뇌를 통한 냉철한 사고의 결과가 아니라 배(腹)로 짜낸 명석한 생각이었다. 왜냐면 원숭이는 머리가 아니라 배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가 만든 출구, 다시 말해 원숭이이기를 포기하는 것은 인간 되기를 의미한다. 또한 그 방법은 흉내내기다. 하겐벡 증기선 중갑판의 궤짝 우리에 갇혔던 그 무렵, 그가 배(腹)로 고안해낸 출구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그곳을 들락거렸던 선원들이 그에게 주었던 어떤 내적 안정 덕분이었음을 그는 부인하지 않는다. 중갑판에 어슬렁거리며 모이는 사람들은 느릿느릿 움직였다. 그들의 농담은 거칠었지만 정겨웠고 그들의 웃음소리는 위태롭게 들리기는 해도 별거 아닌 헛기침이 섞여 있었다. 페터의 몸에서 자라난 벼룩이 튄다고 불평은 했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고 비번일 때면 몇몇이 모여 우리 앞에 반원을 그리고 둘러앉아 말은 거의 없이 구시렁거리기만 하며 느긋이 담배를 피웠다. 가끔은 어떤 이는 나뭇가지로 페터가 좋아하는 곳을 긁어주었다. 물론 다시 그곳으로 초대를 받는다면 분명히 거절할 터이지만 그래도 그곳의 추억은 다만 불쾌한 것만은 아니라고 지금의 그는 확신한다. 다시 한번 출구를 언급해 보자. 출구 찾기는 탈출을 의미하지 않는다. 탈출이라는 것 역시 빠삐용이 그랬던 것처럼 자유를 향한 몸부림이다. 하지만 그 자유는 페터에게는 죽음을 의미한다. 인간화된 지금은 이빨로 호두껍질을 까는 것도 조심해야 하지만 당시 그는 어렸고 튼튼했기에 비록 갇혀 있었다 해도 이빨로 자물쇠를 물어뜯는 데 성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우리를 나온 들 무엇하리? 그가 머리를 내밀자마자 사람들을 그를 잡아 더 고약한 우리에 가두었을 것이다. 혹여나 몰래 나와서 다른 동물들, 예를 들어 구렁이가 있는 우리로 숨었다 치자. 그러면 그는 구렁이의 몸뚱아리에 칭칭 감겨 온 몸이 으스러져 숨을 거두었을 것이다. 운 좋게 갑판 위로 기어올라 뱃전에서 뛰어내리는 데 성공했다 치더라도 망망한 대양 한가운데서 익사하고 말았을 것이다. 다행히도 그런 안정감이 탈출이라는 헛된 망상에서 그를 건져 주었다.


   이런 탈출은 인간이 머리로 하는 계산이다. 하지만 배(腹)로 생각하는 페터는 계산이 아니라 관찰을 했다. 그가 보기에는 중갑판에 모이는 여러 사람들은 얼굴도, 소리도 구분하기 힘들었고 그저 희미한 하나로만 보였다. 그리고 그에게 목표가 떠올랐다. 구분도 어려운 그들의 일부가 된다면... 물론 그들처럼 된다 하더라도 잠긴 우리의 문이 열릴 거란 약속은 없었지만 그것의 실현은 예전에 헛되이 추구되었던 바로 그곳에 나타나는 법이다. 그가 자유의 신봉자였다면 대양을 택했겠지만 그는 사람들의 흐릿한 눈길 속에 비치는 출구를 찾았고 그것을 끊질기게 관찰했다. 그리고 그 관찰이 비로소 그를 특정 방향으로 밀어 넣었다. 사람들을 흉내 내는 일은 처음에는 쉬웠다. 침 뱉는 것은 금방 따라 했고 머지않아 그는 영감처럼 파이프 담배를 피울 수도 있었다. 물론 흉내내기였기 때문에 담배가 채워진 파이프와 빈 파이프를 구분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엄지 손가락을 파이프 구멍에 대고 꾹꾹 눌러댔을 때에는 중갑판 전체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고 했다. 하지만 가장 힘든 것은 독주병이었다. 선원들 중 유독 한 명이 그의 선생을 자처했는데 그는 페터를 이해는 못하지만 어찌 되었든 페터란 존재의 수수께끼를 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일정치 않은 시간에 찾아온 그는 페터 앞에서 코르크 마개를 빼고 술병을 천천히 들어 올려 입가에 가져다 댄다. 그러면 페터는 성마른 주의력으로 그의 행동을 따라 한다. 그가 한 모금 술을 들이켜면 페터는 초초해하며 필사적으로 그를 따라잡고자 난리법석을 피워 우리 안을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마지막으로 그가 팔을 쭉 내밀어 술병을 쳐들면서 과장된 몸짓으로 머리를 뒤로 젖혀 단숨에 그것을 비워 버리면 페터는 그 과도한 요구에 지쳐 더 이상 따라 하지 못하고 쇠창살에 힘없이 매달릴 뿐이다. 그러면 그는 자기 배를 쓰다듬으며 히죽 웃는 것으로 이론적인 수업을 마무리한다. 반복되던 이런 이론 수업에 지쳐갈 무렵 실습이 시작된다. 페터의 손에 쥐어진 빈 독주병, 그는 그것을 들고 그동안 배운 대로 꽤나 잘 따라 했다. 하지만 독주병을 입에 가져다 대는 순간 그는 그 역겨운 냄새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술병을 내던져 버렸다. 인간 선생에게도, 자신에게도 너무나 애석한 행동이었겠지만 그래도 그는 배를 쓰다듬으며 해죽이는 것은 잊지 않았다고 한다.


   드디어 운명의 날이 왔다. 어느 날 저녁, 축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축음기 소리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다고 한다. 그날 저녁 사람들은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실수인지는 몰라도 방치된 독주병 하나가 그의 손에 닿았다. 페터가 지금까지 배운 대로 천천히 코르크 마개를 뽑았을 때 사람들이 하나, 둘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제 페터는 술병을 입에다 대고는 서슴없이, 입도 찡그리지 않고, 눈을 데굴데굴 굴리고 꿀꺽꿀꺽 소리를 내며 전문적인 술꾼처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단숨에 비워 버렸다. 그리고는 더 이상 절망하는 자가 아니라 예술가처럼 술병을 내던졌다. 아쉽게도 배를 쓰다듬는 행동은 빼먹었지만 대신, 알 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혀 정신이 몽롱해진 채로 페터는 "헬로!"라고 소리쳤다. '마침내'가 아니라 '뜻하지 않게!' 페터는 인간의 소리를 터뜨린 것이다. 바로 그 순간 그는 인간 공동체로 뛰어들었다. 모여 있던 많은 사람들의 탄성과 수군거림이 그에게 입맞춤처럼 쏟아져 내렸다. 물론 소리 내기는 바로 반복되지는 않았지만 몇 달 뒤에 다시 나오기 시작했고 이제 그는 출구를 찾았다. 흉내내기는 결코 인간들을 모방하고자 하는 욕구가 아니었다. 그는 그저 출구를 찾고자 흉내내기를 했을 뿐이지만 이제 그에게는 방향이 주어진 셈이다. 함부르크에 도착해서 그는 조련사에게 넘겨졌고 그에게 주어진 가능성은 동물원과 버라이어티 쇼 극장이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후자 쪽으로 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왜냐면 그것이 출구이기 때문이었다.


   그 후 그는 앞, 뒤 가리지 않고 인간들을 배웠고 수많은 인간 선생들을 거치면서 인간의 모든 것을 배웠다. 그에게는 수많은 지식이 쏟아졌고 그는 그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그 과정을 인간의 개념으로 표현하자면 진보였겠지만, 그리고 더 이상 배가 아니라 깨어가는 두뇌 속으로 밀려드는 수많은 지식의 빛들이 그를 행복하게 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페터는 과대평가하지도 않는다. 왜냐면 그 결과는 그가 원했던 것도, 의도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출구를 찾기 위해 미친 듯이 자신을 몰아세운 결과로써 그는 유럽인의 평균 교양에 도달했지만 그것이 그를 우리에서 벗어나게 했고 특별한 탈출구를, 바로 인간 탈출구를 마련해 주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렇게 마무리한다. 요청에 따라 그냥 보고할 뿐이지 결코 인간의 평가는 바라지 않는다고...




   카프카의 다른 소설들이 그러하듯, <학술원> 역시 다양한 해석을 양산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혹시 읽어보지 못한 독자들을 위하여 이 글 마지막에 <학술원> 전문을 실어 두었다. 연극 <빠알간 피터의 고백>은 추송웅 후에도 화자를 바꿔 가며 꾸준히 이어지고 있고 필자는 배우 추송웅이 직접 연기했던 <빠알간 피터의 고백>을 보지는 못했지만 유튜브를 통해서 추송웅 이후의 다른 배우가 연기한 <빨간 피터의 고백>은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서두에서 언급한 바 그대로 이런 상상을 해 본다, 추송웅이라는 정평난 연기력의 소유자가 토로하는 페터의 그 독백을 직접 들어본다면 이때의 <학술원>은 어떤 해석으로 내게 다가올까 하는 상상 말이다. 동일한 클래식 곡을 서로 다른 연주자가 연주할 때 혹은 같은 노래를 서로 다른 가수들이 불렀을 때 전해지는 감동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독서를 통해 생산되는 <학술원>의 해석 역시 수많은 변주들로 발산할 것이다. 그런 다양한 해석의 변주들 중 "맞닥뜨린 변화에 정면으로 돌파하지 못하는 처세술을 보여주는 글"이라는 식의 매우 단순해석도 있다. 이런 식의 해석이라면 <법 앞에서>를 "불의에 항거하지 않고 요령만 피우는 한 사내의 이야기"라고 했던 어느 번역가의 단편적 해석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다른 한편, <학술원>을 사람인 주인공이 벌레가 되어 죽는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역변에 위치시키며 그것을 <변신>의 완성판으로 보려는 시각도 있다. 즉, 사람이 벌레가 되어가지만 죽음으로 인해 변신을 완료하지 못한 반면 <학술원>은 거꾸로 원숭이에서 인간으로의 변신을 완료한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미완성의 <변신>은 <학술원>을 통해서 비로소 그 끝을 보았다는 해석이다. 카프카의 단편들 중에는 <여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족속>이나 <어느 개의 연구>, <굴>, <튀기>, <독수리> 등과 같이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들이 적지 않다. 이렇게 동물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감으로써 인간 사회를 통렬하게 풍자하지만 각 단편들은 저마다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독특하게 풀어낸다. 따라서 <변신>이나 <학술원> 역시 각자의 이야기를 독자적으로 풀어내고 있기에 단지 위상적 유사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둘을 엮는 것은 다소 억지스러운 측면이 없지 않다.


   <학술원>을 아기가 성년이 되어가는 사회화 과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다시 말해 페터의 인간화 과정 자체를 본능으로만 존재하는 유아기의 인간이 주위와의 관계를 맺으며 점차 사회 속의 구성원으로서의 성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으로 보는 시각이다. 이는 원숭이 시절을 유아기로 보고 페터가 점차 인간화되어가는 과정을 사람의 사회화 과정과 등치시키는 해석이다. 그러나 소설이 인간화의 주체로서 원숭이를 택했는지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우선은 다분히 진화론의 관점에서 널리 알려진, 원숭이로부터 진화된 인간이라는 상식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소설은 그러한 상식을 부정하는 측면이 있다. 페터를 인간으로 향하게 만든 결정적 돌파구는 인간 언어의 발화였지만 그 행위의 순간은 어떻게?라는 질문에 답을 줄 수 없는 우연적이고 뜻하지 않은 사건일 뿐이다. 발화라는 이런 카타스트로피적 사건이 짐승에서 인간으로 향하는 결정적 출구라고 한다면 인간은 윈숭이로부터의 진화가 아니라 그저 하나의 돌연변이일 것이다. 페터는 사람의 행위를 흉내내기 위해 진저리 나도록 노력했을 뿐 절대로 말을 배우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코 설명이 불가능할 어떤 비약을 통해서 인간의 말을 내뱉었고, 그 작은 행위가 그를 급작스레 인간의 길로 밀어 넣었다. 이는 큐브릭의 영화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 초반에 나오는, 자신들 앞에 갑자기 나타난 어떤 알 수 없는 비석 같은 물건을 본 원숭이 무리 가운데 한 마리가 우연찮게 동물의 뼈다귀를 손으로 움켜쥐고 들어 올림으로써 호모 파베르(Homo Faber)로 향하는 원숭이-인간 진화의 전회가 되는 그런 비약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소설은 인간화-사회화라는 연속적 과정에 대한 유비가 아니라 어떤 단절에 의한 불연속적 비약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페터에게는 이제는 기억마저 희미한 단절로서의 원숭이 시절은 진화라는 관점에서의 인간에게도 해당하며 그 시절의 향수가 폭풍이 아니라 미풍으로 자신의 발꿈치를 간질이고 있지만 그래서 이는 아킬레스도 마찬가지라고 하는 것이리라. 그것이 미풍인 이유는 자신이나 인간이나 단절에 의해 그 시절로부터 너무 멀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이리라.


   필자의 경우, 이 소설에서 착목하고자 하는 것은 현대인에 있어서의 '자유'의 의미다. 페터가 언급한 대로 인간에게 있어서의 '자유'는 뭔가 숭고하고 고귀한 어떤 것으로서의 막연한 가치를 지닌다. 이는 계급 분화와 그 종속 관계가 분명하던 시대에서는 계급투쟁의 주된 동인이 되었고 혁명이란 이름으로 전개된 계급 전복이나 그 시도는 자유 쟁취라는 분명한 목적 하에 이루어졌다. 고대 시대의 노예 반란이 그랬고 프랑스혁명이 그랬으며 미국의 노예 해방 투쟁이 그랬다. 물론 우리의 현대사 역시 일제 치하로부터, 그리고 독재로부터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역사이기도 하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유는 이제 민주주의라는 이념과 결합되어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고귀하고 숭고한 어떤 가치를 지니게 된다. 하지만 절차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안정이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춘, 그래서 고도로 다층화 되고 분화되어 역으로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이 표출되는 국가로 한정했을 때의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개념으로 이해하는 자유를 생각해 보자. 몇 달 전 조국 전 법무장관이 민정수석 시절 자신의 SNS에 '앙가주망'이란 말을 게시했고 이 단어가 실검 1위를 차지한 적이 있었다. 앙가주망(Engagement)은 영어로 인게이지먼트이며 이는 참여를 의미한다. 앙가주망은 실존적 자유를 토대로 하는 행위 또는 실천을 의미하기 위해 사르트르가 사용한 용어로서 그의 행위주의의 중심 개념이다. 조 전 장관은 이 단어를 사르트르의 의미 그대로 사회 문제에 대한 실천적 참여 - 특히 지식인의 - 를 강조하고자 한 것인데 이러한 실천적 참여 역시 사르트르적 자유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하겠다.


   서구 철학사에 있어서 사르트르만큼 자유라는 개념을 자신의 철학을 구축하는 핵심 개념으로 삼는 이는 드물 것이다. 심지어 그는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宣告) 받았다"라고까지 말했는데 이는 마치 인간 일반에 대하여 신이 내린 강제적 선물로서의 자유를 연상케 할 수도 있겠지만 철저한 무신론자인 사르트르가 이런 의미에서의 자유를 언급했을 리는 만무하다. 사르트르가 자신의 철학에서 핵심 개념으로 내세우는 이 자유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해 보자. 사르트르의 자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만들어낸 너무나 유명한 경구인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라는 말의 의미부터 살펴봐야 할 것이다. 흔히 인간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있을 수 있는, 변하지 않는 고유한 정체성을 내세운다. 이때 '고유한' 정체성은 바로 그 사람의 본질에 해당하고 그것에 의해 그 사람으로 존재함, 즉 실존이 규정된다고들 한다. 이런 관점은 본질이 실존의 근거임을 의미하기에 흔히 "본질이 실존에 선행한다"라는 생각들을 하게 된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이 관계를 역전시킨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저서 <존재와 무>에서 존재를 즉자(卽自) 존재와 대자(對自) 존재로 구분한다. 즉자 존재는 의식과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의자나 돌멩이 같은 사물이다. 반면에 대자 존재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의식하는 존재, 하이데거 식으로 표현하자면 자신의 존재 자체를 문제 삼는 존재로서 사실 인간 존재에 해당한다. 그리고 무신론자인 사르트르는 "너는 무엇이다"라는 선고처럼 미리 규정된 인간의 본질은 없다고 한다. 인간은 태어나고 나서야 자신의 본질을 묻게 된다. 다시 말해 실존하고 나서야 자신의 본질을 톺아보게 되는 것이지 기정의된 스스로의 본질이 있어서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라는 말의 의미가 된다. 규정된 본질이 없다는 것, 아직 정해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바로 '무()'를 의미한다. 그렇기에 인간은 스스로를 규정해야 하고 스스로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가야 한다. 무(無)에서 스스로 자신의 본질을 규정하는 이런 행위 자체가 바로 '자유'가 된다. 그렇기에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를 받은 것이고 운명처럼 자유가 주어지게 된다. 사르트르의 자유는 이런 의미에서 우선 정의된다.

 

   사르트르의 자유 개념은 사실 후설의 '지향성' 개념을 그대로 안고 출발한다. 지향성은 대자적 존재가 즉자적 존재로 향하는 지향성이고 동시에 사르트르가 "타인은 나의 지옥이다"라고 했던, 타자라는 대자적 존재를 향하는 지향성이다. 물론 그 지향성은 자신에게로 돌아와야만 하는 지향성이기도 하다. 이때의 지향성을 그대로 자유로 봐도 무관한 사르트르의 자유는 자신의 저서 "<존재와 무>가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의 표절이다"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존재와 시간>의 모든 기획과 의도를 '자유'라는 단어 하나로 풀어낼 만큼 그에게서는 핵심적인 개념이다. 그런 자유에 있어서의 핵심은 대자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즉자의 결핍이다. 자유라는 지향성의 방향지움은 결핍으로 설명되는데 그 자체로 존재하는 즉자는 스스로의 존재 근거를 갖지만 대자는 즉자와는 다르게 그것을 갖지 못한다. 다시 말해 규정된 본질이 없기 때문에 그 결핍을 메우기 위해 즉자로, 타자로 향하게 된다. 이는 자신을 스스로 규정하기 위한 본능적 욕구이지만 아쉽게도, 그렇게 즉자를 취하더라도 인간은 결코 자신을 있는 그대로 규정할 수 없으며 언제나 대상을 추구하지만 결코 채울 수 없다. 시지프스 신화와 같은 이런 과정을 사르트르는 무화(無化)라 불렀으며 지향과 무화의 끊임없는 반복 행위 역시 사르트르는 자유로 규정한다. 무언가 허무한 요소를 담고 있는 이런 자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사르트르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무한한 가능성으로서의 자유를 전제하고 있다. 본질에 선행하는 실존은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던져진 존재가 되는 순간 '무(無)의 존재'라는 역설적 상황이 동반되어야 하는데 이는 곧 무한한 자유의 전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던져진 존재로서의 인간은 던져지는 순간 무가 아니라 이미 즉자와 즉자, 즉자와 대자, 대자와 대자, 타인이 나의 지옥이게끔 하는 그런 의미와 가치의 촘촘한 그물망으로 구성된 세계 속에 던져진 존재이며 따라서 자유라는 것 역시 이미 제약된 가능성 하의 자유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사르트르가 주장하는 자유는 절대적 자유로서, 페터가 이야기했던, 모든 곳이 출구였던 원숭이 시절의 자유와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가 기대고 있는 바탕이 후설의 현상학이기에 어쩔 수 없기도 하겠지만 그의 자유 개념은 후설의 선험적 초월이라는 지위를 그대로 안고 있다. 사르트르의 자유는 지식인의 실천적 행동의 근거로서 사회 참여를 독려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기에 그는 단순한 방종으로서의 자유가 아니라 책임이 따르는 자유, 그것 때문에 오는 불안 등의 여러 제약 장치를 달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유는 인간 이전에 이미 주어진 절대적인 어떤 것이 되어 실존이라는 구체성을 저버리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이데거는 실존(Existence)의 동사형 'exist'의 어원을 분석하며 실존을 탈(ex)-존재(ist, Being), 즉 존재를 벗어나는, 초월하는 것으로 봤다. 이때의 초월은 기존의 존재 중심의 관념적이고 추상적 개념에서 벗어나 존재 자체에 의문 부호를 붙이는 인간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초월로서, 존재의 형이상학에서 인간 실존의 구체성으로의 되돌아옴이 된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자신의 철학을 펼치는 핵심 도구로 자유라는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그가 주창하는 실존주의에서의 실존마저도 초월한 듯하다. 하이데거처럼 초월했다면 그를 따라 인간의 실존으로 되돌아와야 함에도 사르트르의 자유는 그러지 못하고 인간 실존과 계속 멀어지기만 하는 듯하다. 그리하여 자유는 저 높은 곳으로 부양되어 마치 무언가 고귀하고 숭고한 어떤 것으로 떠받혀 지상에 발 딛고 사는 인간 세계와는 동떨어진 어떤 것이 되어버린다. 사르트르의 '자유'는 칸트가 정립한 무한한 가능성의 주체를 더 극단으로 밀어붙여 종국에는 절대적 자유를 담지한 주체라는 관념 철학으로 귀결되고 마는 듯하다. 그렇기에 그의 실존주의는 이와 반대의 극단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는 구조주의와의 충돌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정의된 사르트르의 자유는 결국 무한한 선택의 가능성이 주어진 자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실존이 본질보다 앞서겠지만 그 실존은 이미 다른 본질들의 제약 하의 실존이다. 인간은 자신을 스스로 근거지우는 본질 없이 태어나지만 그 순간 그는 이미 앞선 세대의 사회적, 문화적 세계 속에서 실존하게 된다. 무에서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갈 수 있는 완전한 자유가 아니라 이미 전승된 문화와 제도 하에서 순응하든 거부하든 그것과의 교감 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가야 한다. 즉, 선택의 무한한 가능성이 아니라 제약된 가능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르트르의 자유는 이미 지상을 떠나 천상계에 위치해버린, 그저 관념적인 자유가 될 수밖에 없다. 페터는 원숭이 시절의 전력을 기술하라는 학술원의 요구에 대하여 그때의 기억은 없노라고 거부한다. 원숭이의 세계와 떨어져 산 5년이란 시간은 달력으로 따지자면 짧은 시간일 수도 있겠지만 출구를 찾아 엄청난 노력을 경주했던 그에게는 무한히 긴 세월이다. 그 세월 동안 그가 원숭이 시절의 향수를 부여잡고 있었다면 지금의 그는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 시절을 포기하는 것, 그 시절을 잊는 것, 원숭이의 습성을 버리는 것, 즉 어떤 단절이 지금의 그를 있게 만든 것이다. 그는 그 시절을 자유로운 원숭이 시절이라고 한다. 그 시절은 사방이 출구였고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출구였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개념적으로 이해하는 자유가, 즉 본질에 선행하는 실존이 누릴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으로서의 자유가 만개한 시절일 것이다. 하지만 그때를 단절하고 잊었기에 그는 인간 세계로 올 수 있었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자 한다면 그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바로 개념적 자유가 사르트르식 자유로 펼쳐진 시절이었겠지만 원숭이 페터에게도, 아킬레스에게도 그저 뒤꿈치를 간질이는 미풍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인간이 이야기하는 자유라는 것도 그 시절의 향수일 뿐이다. 인간 역시 원숭이로부터 너무 멀어졌기 때문이다. 페터는 자유 대신 출구를 원했다. 인간의 자유라는 것도 개념상의 자유일 뿐 그것은 출구가 아닐까? 날실과 씨실로 얽힌 사회라는 관계망 속에서의 인간은 자유라는 의미 그대로의 자유를 결코 누릴 수 없다. 그렇기에 자유라는 것은 페터에게나 인간에게나 그 시절의 먼 이야기이자 추억일 뿐이다. 이미 인간을 떠나 저 하늘 위에서 부유하는 공허한 개념으로서의 자유일 것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오래전 이런 카피를 내세운 자동차 광고가 있었다. 멋진 말이다, 하지만... 과연 떠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원한다고 원하는 대로 우리는 행동할 수 있을까? 자유라는 진정 그 의미 그대로 사회 속에서 우리는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가족, 직장, 동호회 등등 수많은 다층의 관계망 속에 묶인 현대인이 취할 수 있는 자유는 제한적이다. 어찌 보면 결국 인간들이 이해하는 자유라는 것은 페터처럼 출구 찾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출구 찾기를 듣기 좋게 표현한 단어가 "일탈"일 것이며 거창한 표현으로는 "탈주"가 되겠지만 다르게 본다면 "체념"이라는 부정적 요소도 언제나 동반될 것이다. 어쩌면 인간화라는 과정 자체가 스스로 자유도를 줄여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것을 페터 식으로 표현한다면 무한한 출구의 수를 하나씩 줄여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회라는 관계망 속의 인간은 제한된 출구를 번갈아 선택하든지 아니면 페터처럼 존재하지 않는 출구를 만들기 위해 지금도 그렇게 야근을 밥먹듯이 하고 회합을 갖고 술을 마시며, 그렇게 늦게 귀가해서 여전히 원숭이 시절의 향수에 젖어 자유를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전문)

by 카프카


   고매하신 학술원 회원 여러분!

   여러분들께서는 원숭이로 살아왔던 저의 전력에 대한 보고서를 학술원에 제출하도록 요구하심으로써 저에게 영광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이런 뜻으로는 그 같은 요구에 응할 수 없습니다. 거의 오 년 가까이 저는 원숭이 세계와 떨어져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달력으로 재면 짧을 수도 있는 세월입니다만, 제가 그래왔듯이 달음질쳐 지나가기에는 무한히 긴 세월이었습니다. 구간에 따라서는 저는 유능한 인사들의 안내를 받았고, 충고, 박수갈채,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성원도 받았지만, 근본적으로는 혼자서 달린 셈입니다. 왜냐하면 저를 동반했던 모든 것들은 – 비유적으로 말씀드리지만 – 장애물 앞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약 저의 출신이나 어린 시절의 추억에 고집스레 집착하려 했다면, 이러한 성과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바로 모든 고집을 포기하는 일이 제가 제 자신에게 부과했던 최고의 계명이었습니다. 자유로운 원숭이였던 저는 이 멍에에 순응했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추억이 점점 저에게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인간들이 원했을 경우에, 내가 나의 과거로 되돌아가는 문은 처음엔 하늘이 지상 위에 세운 문 전체였는데, 그 문은 앞으로 앞으로 채찍질로 이루어진 저의 발전과 더불어 점점 낮아지고 옹색해졌습니다. 저는 인간 세상에서 한결 편안하고 동화된 느낌을 가졌습니다. 제 과거로부터 저를 뒤쫓아 불어오던 폭풍우는 가라앉았습니다. 오늘날 저의 발꿈치를 서늘하게 하는 것은 다만 한 점 바람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바람이 불어오고 있고 옛날에 제가 지나왔던 저 먼 곳의 구멍은 너무나 작아져 버려서, 그곳까지 되돌아가기 위한 힘과 의지가 아무리 충분하다 하더라도 그 구멍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내 몸에서 털가죽을 벗겨내어야 할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도 역시 즐겨 비유법을 택하고 있습니다만, 솔직히 말씀드린다면, 여러분의 원숭이 성질 말입니다. 신사 여러분, 여러분이 그러한 어떤 본능을 지니고 있는 한, 저의 원숭이 성질이 저에게보다 여러분들에게 더 먼 것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기 땅 위를 딛고 다니는 모두의 발뒤꿈치를 간질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작은 침팬지든 위대한 아킬레스든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들의 질문에 대하여 극히 제한된 의미에서는 물론 답변할 수 있을 것이며, 더구나 매우 기쁜 마음으로 이렇게 할 것입니다. 제가 가장 먼저 배웠던 것은 악수하는 일이었습니다. 악수란 마음을 터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제 생애의 절정에 서 있는 오늘날에야 비로소 저 첫 번째 악수에 대해 솔직한 말을 덧붙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학술원에 무언가 본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제시해주는 것도 아니며, 저에게 요구한다든가 또 제가 최선을 다해도 말할 수 없는 그런 것에서부터 훨씬 뒤져 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어쨌든 그것은 예전의 원숭이가 인간 세계에 들어와 어떻게 정착하게 되었는지 그 기본 노선을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물론 만약에 제가 제 자신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고 문명 세계의 커다란 버라이어티 쇼 무대에서의 저의 위치가 요지부동한 것으로 확립되지 않았더라면, 저는 분명히 다음과 같은 사소한 이야기조차 말씀드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황금 해안 출신입니다. 제가 어떻게 잡혔는지에 대해서는 타인의 보고서를 따라야 하겠습니다. 제가 저녁 무렵 무리 한가운데에 섞여 물을 마시러 갔을 때, 하겐벡 회사의 사냥 원정대가 – 그 지휘자와 함께 저는 그 이후 좋은 붉은 포도주를 여러 병 비웠습니다 - 해안 숲 속에 매복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총을 쐈는데, 제가 총에 맞은 유일한 놈이었습니다. 저는 두 방을 맞았습니다.

   한 방은 뺨에 맞았는데, 그것은 가벼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털이 싹 밀어진 크고 붉은 흉터가 남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불쾌하고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틀림없이 어떤 원숭이가 생각해냈을 빨간 페터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마치 제가 얼마 전에 죽은, 널리 알려진, 길들여진 원숭이 페터와 단지 뺨 위에 난 붉은 점으로만 구별된다는 듯이 말입니다. 이것은 그저 가외로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두 번째 총알은 엉덩이 아래에 맞았습니다. 그것은 심해서, 제가 오늘날 아직도 약간 절룩거리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최근에 저는 저에 대한 의견을 신문에 내고 있는 수만의 경솔한 사람들 중 어떤 한 사람의 글을 읽었습니다. 제 원숭이 본성은 아직 완전히 억제되지 않았으며, 방문객이 오면 총알이 관통한 그 자리를 보여주기 위해 제가 바지 벗기를 아주 좋아하는 것이 그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런 녀석의 글 쓰는 손가락은 모두 하나씩 분질러놓아야 마땅합니다. 저는 말입니다, 제 마음에 드는 사람 앞에서는 바지를 벗어도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잘 손질된 털과 흉터 – 여기서 하나의 특정한 목적을 위해 하나의 특정한 단어를 선택하기로 합시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포악한 사격에 의한 흉터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환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숨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진실이 문제가 된다면, 너그러운 사람들은 누구나 극히 세련된 매너 따위는 내팽개쳐버립니다. 그러나 방문객이 찾아올 때 저 필자들이 바지를 벗는다면 이것은 물론 달리 보여질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이것을 그가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는 이성의 표시로 간주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는 자신의 섬세한 감각으로 저 역시 괴롭히지 말고 내버려 두시기를 바랍니다!

   그 사격 이후 저는 깨어났는데 – 여기서 제 자신의 기억이 차츰 살아납니다 – 하겐벡 증기선의 중간 갑판에 있는 우리 안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면이 쇠창살로 된 우리가 아니라, 오히려 삼면이 하나의 궤짝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궤짝이 네 번째 벽이 되는 셈이었습니다. 그 전체는 똑바로 일어서기에는 너무나 낮고, 주저앉기에는 너무 협소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릎을 굽히고 한없이 떨면서 쪼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것도 처음에는 아마 아무도 보고 싶지 않고 그저 어둠 속에만 있고 싶었기 때문에, 궤짝 쪽을 향해 돌아앉아 있었는데, 그러고 있는 동안 뒤에서 쇠창살이 살 속으로 파고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은 우선 야생 동물들을 그런 식으로 보관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하는데, 오늘날 저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인간적인 의미에서는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난생처음으로 출구가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최소한 정면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제 앞에는 궤짝이 있었고, 그것은 판자를 서로 단단하게 붙여 만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판자들 사이에는 길게 틈이 하나 나 있었는데, 제가 그것을 처음 발견했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기쁨에 차서 소리치며 환영했지만, 이 틈새는 꼬리를 들이밀기에도 전혀 충분치 않았고, 원숭이의 온 힘을 다해도 넓혀질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훗날 저에게 말한 바에 의하면, 저는 이상할 정도로 거의 소리를 내지 않아서, 사람들은 제가 머지않아 죽게 되거나 아니면 제가 최초의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게 될 경우 아주 잘 길들여질 수 있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저는 이 시기를 넘기고 살아남았습니다. 소리 죽인 흐느낌, 고통스러운 벼룩 잡기, 피로하게 야자를 핥는 일, 머리로 궤짝 벽을 두드리는 일,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면 혀를 내보이는 일 – 그것이 새로운 생활에서 처음 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단지 한 가지의 느낌, 즉 출구가 없다는 느낌뿐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 당시 원숭이로서 느꼈던 것을 오늘날에는 인간의 언어로 그릴 수 있을 뿐이며, 그에 따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옛 원숭이의 진실에 더 이상 이를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저의 진술 방향에는 그 진실이 들어 있습니다. 그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저는 이전까지는 그렇게도 많은 출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는 옴짝달싹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못박아 놓았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제가 움직일 수 있는 자유가 더 줄어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너의 발가락 사이의 살을 할퀴어보아라. 그래도 너는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을 거다. 쇠창살이 너를 거의 두 동강 낼 때까지, 네 등을 거기 대고 눌러라. 그래도 너는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을 거다. 저에게는 출구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것을 마련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 없이는 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나 이런 궤짝 벽에 갇혀 있다면 – 저는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겐벡 회사에서는 원숭이들은 궤짝 벽에 갇혀 있어야만 합니다 – 그러니 이제 저는 원숭이이기를 그만두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어떻게 해서든지 틀림없이 배(腹)로 짜내었을 명석하고 멋진 사고의 과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원숭이는 배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출구라는 말로 뜻하는 바가 제대로 이해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됩니다. 저는 이 단어를 그것의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완전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자유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사방으로 열린 자유의 이 위대한 감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숭이였을 때 아마도 저는 그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러한 자유를 동경하는 인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그 당시에도 오늘날에도 자유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가외로 말씀드린다면, 인간들 사이에서는 너무도 자주 자유라는 말로써 기만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유가 가장 숭고한 감정에 속하는 것처럼, 그에 상응하는 기만 역시 가장 숭고한 감정에 속합니다. 자주 저는 버라이어티 쇼에서 저의 등장에 앞서 어떤 곡예사 한 쌍이 저 위 천장에서 공중 그네를 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훌쩍 그네에 뛰어올라, 그네를 구르고, 도약하고, 서로 상대방의 품 안으로 날아들고, 한 사람이 입으로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을 물어서 그를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그것 역시 인간의 자유로구나’ 하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안하무인 격인 동작이다’라고요. 성스러운 자연을 우롱하는 자여! 이 광경을 보는 원숭이의 너털웃음 소리에는 어떤 건물도 지탱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자유를 원치 않았습니다. 단지 하나의 출구만을 원했습니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어디든 관계없이. 저는 그 밖의 다른 요구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 출구가 하나의 착각일지라도 말입니다. 요구하는 것이 작으니 착각 역시 그보다 더 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전지, 전진! 궤짝 벽에 몸을 밀착시킨 채 팔을 쳐들고 가만히 서 있지만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지극히 큰 내적 안정이 없었더라면 저는 결코 벗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오늘날 제가 이렇게 된 것은, 모두가 그곳 배 안에서 지낸 며칠 후부터 나에게 엄습한 안정감 덕분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안정감은 다시금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 덕분이었을 것입니다.

   어찌 됐건 그들은 좋은 사람들입니다. 오늘날도 저는 제가 반쯤 잠들었을 때 울려오던 그들의 무거운 발걸음 소리를 즐겨 회상해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아주 천천히 시작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가 눈을 비비려고 한다면, 그는 늘어진 추를 들어 올리듯 손을 올렸습니다. 그들의 농담은 거칠었지만, 정다웠습니다. 그들의 웃음소리에는 언제나 위태롭게 들리기는 해도 별거 아닌 기침이 섞여 있었습니다. 항상 그들은 입 안에 뱉어낼 것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이 그것을 어디로 내뱉는가 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항상 그들은 내 벼룩이 자기들에게 튀어 오른다고 불평했지만, 그 때문에 나에게 진정으로 화를 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물론 내 털 속에 벼룩이 자라고 있고, 또 벼룩이 튀어 오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그것을 감수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비번일 때면, 몇몇 사람들은 가끔 내 주위에 반원으로 둘러앉아서, 말은 거의 하지 않고 다만 서로 구시렁거리기만 했습니다. 궤짝 위에 앉아서 다리를 쭉 편 채 파이프 담배를 피웠고, 제가 조금만 움직여도 곧바로 자신의 무릎을 쳤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어떤 이가 나뭇가지를 들고 와서 제가 기분 좋아하는 곳을 긁어주었습니다 오늘날 제가 이 배를 타고 함께 항해하자는 초대를 받는다면, 저는 분명히 거절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거기 중갑판에서 되살리게 될 추억은 다만 불쾌한 것만이 아니라는 것 또한 분명합니다.

   제가 이 사람들에게서 얻었던 안정감은 무엇보다도 모든 도주의 시도로부터 저를 막아주었습니다. 오늘날 생각해보아도, 제가 실기를 원한다면 어떤 탈출구를 찾아내야만 한다는 것, 하지만 이 탈출구는 도주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적어도 느끼고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도주가 가능했었는지 이제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원숭이에게는 언제나 도주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제 이빨로는 이미 일상적인 호두까기에도 조심해야 합니다만, 그 당시에는 틀림없이 시간이 지날수록 문의 자물쇠를 물어뜯는 데 성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들 무엇이 얻어졌겠습니까? 제가 머리를 내밀자마자, 사람들은 저를 다시 잡아서 더 고약한 우리 안에 가두었겠지요. 아니면 저는 눈에 띄지 않게 다른 동물들, 예컨대 제 맞은편에 있었던 구렁이들에게로 도망칠 수 있었을 것이고, 그것들에게 칭칭 감겨 숨을 거두었을 것입니다. 그도 아니면 갑판 위에까지 몰래 기어 올라가 뱃전에서 뛰어내리는 데 성공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는 얼마 동안 대양에서 흔들리다가 익사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절망의 행위들입니다. 저는 인간들처럼 그렇게 계산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제 환경의 영향에 따라 마치 제가 계산이라도 했던 것처럼 처신했습니다.

   저는 계산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주 침착하게 관찰을 했습니다. 저는 이 사람들이 언제나 같은 얼굴, 같은 동작으로 이리저리 걸어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에게는 자주 그들이 단지 한 사람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람, 아니면 이 사람들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걸어 다녔습니다. 하나의 높은 목표가 저에게 어렴풋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그들처럼 된다 하더라도 아무도 저에게 쇠창살이 올려질 거라고 약속하지는 않았습니다. 이행 불가능해 보이는 그러한 약속들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약속들이 이행된다면, 그 약속들은 예전에 헛되이 추구되었던 바로 그곳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 자체에는 제 마음을 특히 사로잡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위에서 언급했던 저 자유의 신봉자라면, 저는 분명히 이 사람들의 흐릿한 눈길 속에서 저에게 보여진 탈출구보다는 대양 쪽을 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거나 저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기 오래전부터 이미 그들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쌓인 관찰들이 저를 비로소 특정된 방향으로 밀어 넣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을 흉내 내는 일은 아주 쉬웠습니다. 침 뱉는 것은 처음 며칠 동안에 벌써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상대방의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차이점이라면 그 후에 저는 저의 얼굴을 깨끗하게 핥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는 것뿐이었습니다. 머지않아 저는 영감처럼 파이프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런 다음 엄지손가락을 파이프 구멍에 넣고 놀러 대면, 중갑판 전체가 환성을 올렸습니다. 다만 담배가 채워진 파이프와 빈 파이프의 차이만은 오랫동안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독주병이 저를 가장 힘들게 했습니다. 그 냄새가 저를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겨내기까지는 여러 주일이 걸렸습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이 내적인 투쟁을 저의 그 어떤 다른 면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기억 속에서도 저는 그 사람들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떤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혼자서나 동료들과 함께, 낮이나 밤이나 일정치 않은 시간에 자꾸만 찾아와서, 술병을 들고 제 앞에 서서는 저를 가르쳤습니다. 그는 저를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제 존재의 수수께끼를 풀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천천히 술병의 코르크 마개를 빼내고 나서, 제가 알아들었는지 시험하기 위해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고백하건대, 저는 항상 그를 거칠고 성급한 주의력으로 주목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인간 교사도 그러한 인간 학생을 찾지는 못할 것입니다. 병에서 코르크 마개를 빼내고 나면, 그는 그것을 입가로 들어 올렸습니다. 저는 시선으로 목구멍까지 그를 쫓았습니다. 저에 대해 만족스러워하며,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병을 입술에 댑니다. 저는 점차 알아가는 데 매료되어 낑낑거리며 제 몸을 이리저리 닿는 대로 마구 긁어댑니다. 그는 기뻐하면서 술병을 가져다 대고 한 모금 들이킵니다. 그러면 저는 초조해하며 필사적으로 그를 쫓아하고 싶어서 제 우리 안을 더럽혔습니다. 그것은 다시 그에게 커다란 만족감을 주었습니다. 이제 그는 술병을 앞으로 쭉 내밀다가 단숨에 다시 쳐들면서, 시범을 보이느라 과장되게 몸을 뒤로 젖히면서 단숨에 그것을 비워버립니다. 저는 너무나 과도한 요구에 지쳐 더 이상 따라 하지 못하고 쇠창살에 힘없이 매달립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자기 배를 쓰다듬으며 히죽히죽 웃는 것으로 이론적인 수업을 마칩니다.

   이제 비로소 실습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이미 이론적인 연습으로 너무 지쳐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아마도, 너무 지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제 운명에 속하는 일입니다. 그래도 저는 건네준 그 술병을 제가 할 수 있는 한 잘 잡아서, 떨면서 코르크 마개를 빼냈습니다. 그 일이 잘되자 차츰 새로운 기운이 생겼습니다. 저는 벌써 원래 모습과 거의 다름없이 술병을 들어 올리고, 그것을 입에 가져다 대고는 – 그리고는 역겨워서, 역겨워서 던져버렸습니다. 그것은 비어 있고 아직 냄새만 가득 차 있었는데도, 저는 그것을 역겨워하며 바닥에 내던졌습니다. 저의 선생님으로서도 애석하게, 제 자신으로서는 더욱 애석하게도 말입니다. 술병을 던져버린 뒤에는 훌륭하게 배를 쓰다듬고는 해죽이 웃는 일을 잊지 않았는데, 그것으로는 그도 저 자신도 달랠 수 없었습니다.

   너무도 자주 수업은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존경스럽게도 제 선생님은 저에게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이따금 불이 붙여져 있는 파이프를 제 털에 갖다 대었는데, 제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이 타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는 몸소 자신의 크고 훌륭한 손으로 그것을 다시 꺼주었습니다. 그는 내게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우리가 같은 편이 되어 원숭이의 본성과 투쟁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보다 힘든 몫을 제가 맡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제가 많은 구경꾼들 앞에서 한 일은, 저에게나 스승에게나 정말 얼마나 멋진 승리였던지요. 아마 무슨 축제였는지, 축음기 소리가 나고, 장교 한 사람이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 저는 이날 저녁,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가운데, 제 우리 앞에 세워진 채 실수로 방치되어 있던 독주병 하나를 손에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점차 주목하는 가운데, 배운 대로 그것의 코르크 마개를 뽑아 입에다 대고는 서슴없이, 입도 찡그리지 않고, 눈을 데굴데굴 굴리고 꿀꺽꿀꺽 소리를 내면서, 전문적인 술꾼처럼, 정말이지 맹세코 남김없이 마셔버렸고, 더 이상 절망하는 자가 아니라 예술가처럼 술병을 내던졌습니다. 비록 배를 쓰다듬는 일은 잊어버렸으나, 그 대신 저는 다른 것은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충동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정신이 몽롱해졌기 때문에, 각설하고 “헬로우!” 하고 소리쳤습니다. 인간의 소리를 터뜨린 것입니다. 이 소리로 인간 공동체 속으로 뛰어들게 된 셈이지요. 그러자 “들어들 봐, 저게 말을 해!”라는 그들의 메아리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제 온몸 위에 입맞춤처럼 느껴졌습니다.

   되풀이하겠습니다만, 인간들을 모방하고 싶다는 유혹도 없었습니다. 저는 출구를 찾으려고 했기 때문에 모방했을 뿐입니다. 어떤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저 승리도 별로 소용이 없었습니다. 소리는 금방 다시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몇 달이 지나서야 비로소 다시 나왔습니다. 독주병에 대한 거부감은 오히려 더욱 강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일단 저에게 방향은 주어졌던 것입니다.

   제가 함부르크에서 첫 번째 조련사에게 넘겨졌을 때, 저는 곧 제게 열려 있는 두 가지 가능성을 알아차렸습니다. 동물원 아니면 버라이어티 쇼 극장이었습니다. 저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버라이어티 쇼 극장에 가도록 있는 힘을 다하자. 그것이 출구다. 동물원은 새로운 우리일 뿐, 그 안에 들어가게 되면, 너는 끝장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배웠습니다. 여러분, 반드시 배워야 한다면, 배우게 됩니다. 출구를 원한다면, 배우는 법입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배우게 됩니다. 회초리로 스스로를 감시하고, 아주 사소한 반감에도 살을 짓찧게 됩니다. 원숭이의 본성은 저로부터 미친 듯이, 전도(顚倒)되면서 빠져나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제 첫 번째 선생 자신이 거의 원숭이처럼 되었고 곧 수업을 포기하고 요양소에 보내져야만 했습니다. 다행히도 그는 곧 거기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많은 선생들을 힘 빠지게 했습니다. 네, 심지어는 한꺼번에 몇몇 선생들을 말입니다. 제가 제 능력에 자신을 갖게 되고, 세상이 제 진보를 주시하고, 제 미래가 빛나기 시작했을 때, 저는 제 자신이 선생들을 초청해서, 그들을 나란히 붙어 있는 다섯 개의 방에 눌러앉게 하고,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계속 뛰어다니면서 그들 모두로부터 동시에 배웠습니다.

   이 진보! 깨어가는 두뇌 속으로 사방에서 밀려드는 이 지식의 빛들! 그것이 저를 행복하게 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또한 한 가지 고백하자면, 저는 그것을 과대평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도 이미 그랬고, 오늘날은 더욱더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이 지상에서 되풀이된 적이 없는 그런 노력으로 저는 유럽인의 평균 교양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서는 아무것도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를 우리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었고, 이 특별한 탈출구를, 인간 탈출구를 제게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는 물론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슬그머니 달아나라’라는 멋진 독일어 표현이 있습니다. 거는 그렇게 했습니다. 저는 슬그머니 달아났습니다. 자유란 선택될 수 없는 것을 언제나 전제로 한다면, 저에게는 다른 길은 없었습니다.

   저의 발전이나 지금까지의 목표를 개관해볼 때, 저는 불평도 만족도 하지 않습니다.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찌르고, 탁자 위에 포도주병을 놓고, 저는 제 흔들의자에 반쯤은 눕고 반쯤은 앉아서 창 박을 내다봅니다. 손님이 오면 저는 그에 합당하게 환대합니다. 제 매니저는 문간에 앉아 있습니다. 초인종을 누르면 그가 와서 제가 명하는 바를 듣습니다. 저녁에는 거의 언제나 공연이 있는데, 저는 분명히 더 이상 높아지지는 않을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제가 밤늦게 연회에서, 학술 모임에서, 유쾌한 회합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반쯤 조련된 작은 암컷 침팬지가 저를 기다리고 있어, 저는 원숭이 식으로 그녀 곁에서 편안함을 취합니다. 낮에는 그녀를 보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녀의 눈길에는 어찌할 바 몰라하는 조련된 동물의 착란 증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점을 오직 저만이 알아보는데, 저는 그것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저는 도달하려고 했던 것에 도달한 셈입니다. 그것이 애쓸 만한 가치가 없었다고는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덧붙인다면, 저는 인간의 판단은 원치 않습니다. 저는 단지 견문을 넓히고자 할 뿐입니다. 저는 다만 보고할 따름입니다. 고매하신 학술원 회원 여러분들께도 저는 다만 보고를 드렸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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